Manhattan의 북서쪽으로 5시간 정도 운전하면 손가락처럼 뻗어있는 11개의 크고 작은 호수들이나온다. Seneca, Cayuga와 같이 호수들의 독특한 이름은 유럽인들 이전에 터를 잡았던 Iroquois 족이 붙였다고 한다. New York 시보다 캐나다에 더 가까운 이곳은 이제 동부에 사는 미국 사람들이 자주 찾는 휴양지가 되었다. 호수 옆 비옥한 토양에서 자란 포도가 맛있는지, 주변에 와인 농장이 정말 많다. 이에 못지않게 치즈와 맥주를 파는 상점들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인근 호텔 로비에는마음껏 술을 맛볼 수 있게끔 차편을 제공하는 서비스 안내책자들까지꽂혀있다. 같이 갔던 친구가 우스갯소리로 호수 한 바퀴만 돌아도몸이 남아나질 않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운전면허가 없던 때, 답답한 마음을 다스리고 싶어 때마침 방학이던 친구를 구워삶아 급하게 떠난 여행이었다. 환기구로 들어오는 농장의 거름 냄새와 차멀미에 정신을 못 차렸던 것 같다. 그렇게 가는 동안 풍경을 충분히 즐기지도 못하고 오후 늦게 도착했다. 제대로 조사해보지도 않고 부랴부랴 예약했던 숙소는 알고 보니 퇴역 부사관분이 가족과 함께 지은 집이었다.일반인이 지었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잘지어져 있었고, 여기저기의 투박한 이음새들이 오히려 멋을 더했다. 문 앞에는 픽업트럭 2대와 트랙터가 주차되어있고, 옆 공터에서 아저씨와 아들이 함께 나무판자를 옮기는 모습이 보였다. 침대 옆의 정성스럽게 꾸민 바인더 안에는 집을 짓게 된 계기와 설계부터 가족들의 편지까지 정리되어 있었는데,내가그들의 삶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집주인 아저씨가 가족과 함께 직접 지으신 집이라고 한다. 창문으로 Waneta Lake가 보인다.
집주인 아저씨의 허락을 받고 앞마당의 부두로 나갔을 때, 호수에는 속도를 내며 좋은 날씨를 만끽하는 사람들도 있고, 엔진을 끄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낮잠을 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휴가임에도 불구하고 이메일을 계속 확인하는 나와 달리, 그들은호수 위에서 평온하게 휴식을 취하는 듯했다.괜히 심술이 나서 던진 물수제비는 매번요란하게 빠지기만 했다. 친구의 계속된 나무람에이따금씩 울리는 핸드폰을 일단 덮어두고, 부두에 앉아 맥주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남은 오후를 보냈다.
있는 걱정, 없는 걱정 모두 끌어모아 전전긍긍하는 동안, 호수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노을의 모습을 품고 조용히 머물러 있는 그 모습에, 이리저리 마음을 휘저었던 걱정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가라앉았던 것 같다. 해가 지는 하늘에는 나와는 다른 리듬으로 흘러가는 구름들이 보였다. 느리지만 흘러가고 있는, 그리고 무게가 늘어나면 털어내는 구름을 보면서, 서두르기만 하는 와중에무거워졌던 나를 다시 느꼈다. 숨이 차게 달리다 갑자기 멈춰 서면 어지러워지는 것처럼, 일상을 벗어나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바지를 털고 일어나던진 마지막 돌은저 멀리가볍게 띄웠다.
해가 지기 전에 찍은 공원 옆 호수의 모습이다.
다음날 아침은 일찍부터 숙소를 나서서 Watkins Glen 주립공원으로 향했다. Grand Canyon과 흡사하지만 풀과 나무가 가득한 협곡과 시원한 폭포로 꾸며진 돌계단을 따라 걸었는데, 그 주변의 선선한 공기가 초여름의 더위를 막아주었다. 굽이굽이 나있는 길 아래로 보이는 계곡은 부지런히 걷는 사람도여러 번멈춰 서게 할 만큼 그 절경이 대단했다. 물소리 외에 멀리 앞서 가는 사람들의 대화가 들릴 정도로 조용한 이 산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편안하고 넉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이제 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보통 성수기에는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인파에 떠밀려 가야 한다고 하니, 성급하게 결정한 여행 치고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등산을 마치고, 읍내를돌아다니다 보니 주변이 어느새 어둑어둑해졌다. 읍내를 벗어나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멀리서 보이는 대형마트의 간판을 제외하고는 깜깜했다. 가로등 하나 없이 라이트를 켜고 달리는 길에 낮에 봤던 풍경이 있음을 짐작할 뿐이었다. 주택가에 들어서서부터는달빛이 비치는 호수가 밝힌주변집들의 희미한 실루엣이 보였다.시동을 끄고 내려서 둘러본 주위는 고요했다. 자갈 위로 딛는 자박자박한 걸음과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는깨어있는 것은 우리밖에 없음을 느끼게 했다.짧은 찬물 샤워를 마치고 7시 정각에 맞춰두던 알람을 끄고 난 후에,나는소파에서 간만의 단잠을 청했다.
돌계단 길 중 폭포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젖지 않으려 뛰어가는 사람들도 있고, 여유있게 즐기며 걷는 사람들도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한용운 시인의 "알 수 없어요"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연약할지라도 "그칠 줄 모르고 타는" 열정만 있다면돌아와 계속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느껴진다. 나에게 있어 호숫가 여행은 타고 남은 일상의 부스러기들을 모아 불을 다시 붙이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하늘의 모습을 품고 그 흔적을 담는 호수처럼, 나도 내가 바라보는 곳의 모습을 품고자 노력한다.서두르지 않고, 잠깐의 휴식들에 감사하며 천천히 나아가고 싶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우직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