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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비늘 Oct 05. 2021

외국인의 음식

New York의 식당들을 탐방하며

나는 홍어무침처럼 재료를 구하기 어렵거나, 집에서 요리하기 번거로운 음식 외에는 한인타운을 찾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몇천원에 불과한 김밥과 떡볶이가 New York에서는 15불은 족히 넘는 식사가 되어있으니, 사치스럽게 쓰던 식비도 이 앞에서는 아까워진다. 미국 친구들이 20불에 팁을 얹어 과일맛 소주 칵테일을 시킬 때, 나는 한국에서 3만원으로 둔갑해있을 10불짜리 와인을 시킨다. 그리고 치킨과 함께 나오는 절인 무 조각들이 손가락 세 마디 지름의 종지에 담겨나오는데, 이 또한 3불 추가라는 소식에 또 한번 당황한다.


이런 경험은 이민자라면 충분히 겪는 일일 것이다. 인도 친구들과 함께 전통 음식점에 가면, 길거리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Lassi라는 음료가 훨씬 더 비싼 가격에 달라진 맛으로 팔리는 것에 불만을 표한다. 요즘 한국 문화가 더 알려져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 또한 우후죽순 생겨난 한국 맛 타코, 한국 맛 파스타를 보면서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미국에 있는 동양 음식점을 가보면, 적지 않게 탕수육, 초밥 그리고 비빔밥이 같은 메뉴에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기묘한 한중일의 조화를 어디서 또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쌈밥과 비슷하게 이것저것 능숙하게 곁들여 먹는 현지 출신 사람들을 곁눈질하여 따라해본다. 비싼 가격에 대한 하소연도 종종 들린다.

사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반대로 한국도 크게 다를게 없다. 아메리칸 스타일이라는 문구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과연 그게 무슨 뜻인지 미국인들이 알 모르겠다. 남부 출신 친구들이 New York에 있는 바베큐 전문점이 가짜라 하듯이, 서울 택시기사분들에게 여쭤보면 서울에서 하는 고향음식은 비싸기만 하고 맛은 없다고 하신다. 마음 같아서는 그 모든 지역을 돌아보며 진정한 음식 본연의 맛을 즐기고 싶지만, 무턱대고 그 하나 맛을 보기 위해 돌아다니기도 어려운 일이다. 대도시에서 맛보는 세계의 맛이 원본과는 다르게 화해온 것일 수도 있겠다.


인류학자도 역사학자도 아니지만, 음식이라는 것은 유기적인 개념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서구권 노동자들에게 고열량의 단백질을 제공하기 위해 생겼던 닭고기 튀김이, 다른 요리방법에 익숙했던 한국에 들어오면서 양념이 더해지고, 그 요리가 다시 미국으로 넘어가 한국음식으로 알려지는 과정까지. 한, 란젓의 원조는 한국이지만 오늘날의 소비는 일본인들이 가장 많다. 하루를 시작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커피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시작되었지만, 브라질과 베트남이 가장 많이 생산하고, 1인당 소비량은 유럽국가들이 많다. 이를 보면 누가 원조인지를 떠나서, 인간의 요리 임없이 변하고 주고받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Chinatown의 한 음식점. 건너편 길에는 로마 카톨릭 성당이 있다.

New York 도심에서 걸으면서 느끼는 점도 이와 비슷하다. 간판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어느 순간부터 글자가 바뀌어있고, 주로 보이는 인종과 들리는 언어도 바뀐다. 간간히 맡게 되는 음식 냄새도 차이가 있으며, 진열된 재료나 상품도 달라진다. 예로 Chinatown과 Little Italy는 맞닿아 있는데, 이 경계선이 모호한 것 같으면서도 젤라또와 카놀리가 놓여진 카페 건너편의 훠궈 전문점을 보면 구분이 간다. 이태원에서 받았던 이국적인 색채와 분위기가 New York 안에서는 더 강하게 느껴진다. 마치 작은 지구를 맛보는 것 같은 기분이 기도 한다.


이처럼 미국인의 유전자는 세계 곳곳에서 온 이민자들로 색이 입혀져있다. 최근 유행했던 유전자 테스트를 해본 친구들의 원형 그래프를 보면 알록달록하다. 영어가 서투른 부모님을 둔 친구들도 흔하고, 그로 인해 생기는 재미있는 일화도 많다. 사이가 좋지 않은 국가 출신일지라도 미국에서 만나 가정을 꾸린 사람들도 있다. 흑백으로 나누기에 너무나도 많은 인종과 문화가 뒤섞여있는 것을 점점 느끼게 된다. 미국 북동부에서 가족의 3대가 살아온 친구도, 팝송을 좋아하고 미국 맥주를 즐겨 마시지만, 할머니께 배운 라흐마줌 해먹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르메니아의 모습이 엿보인다.

아르메니아인 친구 할머니께서 직접 차려주신 저녁상

미국 친구들에게 흔히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부대찌개는 어느 나라 음식이냐는 것이다. 100년도 안된 음식지만, 치와 사골 국물에 담긴 구운 콩, 소세지와 스팸 젓가락으로 집어 밥 한숟갈과 함께 먹는 장면에 많은 역사가 담겨있다. 전쟁을 겪어야했던 한국인의 아픔도 있지만, 서유럽의 식단과 미국의 가공육 역사도 가미가 되어있다. 굶주림을 달래기 위해 있는 재료를 다 넣어 만든 국물 요리였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먹고, 심지어 프랜차이즈화된 요리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라면을 건져 때로는 치즈도 곁들여먹는 현지인 친구들을 보면, 요리의 유래를 넘어 맛은 만국 공통의 언어인 것 같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부대찌개는 어느 나라 음식일까. 오늘은 한국 음식이라 하겠지만, 내일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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