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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비늘 Oct 06. 2021

도약을 위한 후퇴

미식축구를 보면서

아직 한국에서는 단순 공을 들고 들이받는 운동으로 알려져 있지만, 나에게 있어 미식축구는 특별다. 에 관심이 별로 없던 내가 처음으로 진지하게 임했던 스포츠이기 하고, 그만큼 추억도 많 때문이다. 영화에서 얻은 짧은 지식 멋모르고 패기만으로 합류 고교 풋볼팀 경험이 찌하여 여기까지 오게  것 같다. 분한 준비없이 뛰어들었던 탓에 부러지고 멍든 곳도 많았고 목발 신세를 진 적도 있었지만, 시행착오가 많았던 유학생활 중 후회가 없는 선택이었다.


처음 팀 락커룸에 들어섰을 때 위압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패드를 벗는 선배들의 체격에 압도되어 태클을 당하면 정말 병원에 실려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몸무게랑 키가 몇이냐고 묻는 주장의 말에, 안그래도 영어도 서툴고 Pound와 Feet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키조차 자신이 없어 고개를 숙였다. 과장이 입혀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1군 선수들 대부분은 나보다  뼘은 더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거운 근육질의 선수들이 나를 앞질러 달리는 것을 보면 잔디 밭 위를 가르는 전차와 다를게 없었다. 그래봤자 서너살 차이였는데, 뒤에서 본 그들의 넓은 어깨가 더 어른같아 보기도 했다.

리그 최고 러닝백 중 한 명인 Saquon Barkley. 운이 좋게 뉴욕에서 열린 사인회에서 가까이 만날 기회가 있었다. 출처: Draft Kings

조금이라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매주 풋볼리그는 꼭 챙겨봤던 것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당시 최고의 선수는 Tom Brady였다. 고등학교가 있는 지역이라서 응원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존경했던 이유는 그의 이었다. 지금까지 2개 팀의 우승을 7번 이끌어낸 그였지만, 사실 드래프트에서는 6라운드 199번째 지명으로 거의 꼴찌에 가까보선수였다. 량 측정 당시에도 뒤에서 2번째였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주전 쿼터백이 부상을 당했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철저한 자기관리와 노력으로 이 자리까지 온 것이다.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달리기가 느린 Brady는 운동신경이 뛰어난 신인선수들과 계속 대결해야했고, 때로는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이 때를 틈 타 방송에서는 은퇴 가능성을 자주 논했고, 세대교체의 압박을 자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정확도가 높은 패스와 노련한 플레이로 위기순간을 넘겨오며, 좋은 성적을 유지해왔다. 필드에 떨어진  방향을  수 없듯이, 처럼 회와 위기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공을 잡고 혹은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땀흘리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그 후 잠깐 동안 득점에 기뻐하는 그들의 모습과 대조되어 보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팀인 New England Patriots에서 뛰었던 Brady 출처: Morning Consult

4년 내내 벤치선수 생활을 하면서, 수비 역할의 내가 세운 기록은 5분 남짓의 출전시간에 Fumble recovery 1번이 전부다. Fumble이란 공격팀이 공을 잃는 상황을 말하는데, 이를 다시 회수하거나 빼앗는 상황을 Recovery라고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공격권을 찾아오는데에 내가 기여를 했다는 뜻이다. Touchdown으로 대단한 점수를 낸 것도 아니었는데, 무언가 해냈다는 느낌에 나는 TV에서 봤던 득점 뒤풀이를 흉내내며 자리로 돌아왔다. 그날 원정경기에서 돌아오는 스쿨버스 내에서 웃음거리는 내 몫이었다.


비록 만년 후보선수였지만, 나한테 미식축구는 이제 내 일부가 되어있다. 미국 북동부 산 속에 있는 학교에서 영어 한 문장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하던 나는 무모하게 풋볼팀에 들어가고자 했다. 포지션 이름조차 몰랐고, 어리둥절해하는 내 모습을 보고 웃는 사람들 앞에서 바보같이 따라웃는 일도 많았다. 비속어와 은어가 난무하는 필드에서 상처를 받고 울기도 했다. 게 부딪한 후 씩한 척하며 벤치로 절뚝거리며 돌아오던 순간들도 아직 생생하다. 간이 흐르면서 그런 경험들로 인해 견고해지고 더 무거운 짐을 짊어질 큰 어깨를 지니게 되지 않았나 싶다. 어색한 첫 만남에서 미국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눌 주제가 생겼다는 것은 덤이다.

Philadelphia Eagles의 T.J. Edwards가 상대를 넘어뜨리고 Fumble을 만들어내는 장면이다. 출처: Dallas Cowboys

쿼터백이 공을 건네받은 후 서너 걸음 정도 뒤로 물러서는 것을 Dropback이라고 한다. 전진하기도 바쁜데, 후하는 이유는 그만큼 시야를 더 확보하고 정확히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달려드는 수비수들에게서도 벗어나기 더 쉽고, 안정감있게 플레이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야드를 양보하더라도 몇십 야드를 더 나아가는데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비장한 모습의 쿼터백은 몇초간 내주었던 영역에 대해 고민하고 후회하지 않는다.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누군가의 웅크리는 동작이 위축되어보여도, 사실은 비상의 준비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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