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강호의림 26. 한약과 침술치료는 뇌의 신경가소성을 조절한다.
“뇌의 신경가소성은 체질치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의산은 회장의 요청에 따라 특별한 그룹에 다시 초대되었다. 그 이유는 남성과 여성 그룹이 모두 특효제를 통해 큰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모두 왜 그토록 효과가 좋은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의산은 그들에게 효과적인 설명을 하기 위해 뇌의 신경가소성이론을 설명했다.
금테 안경을 쓴 회장의 보좌관이 질문을 했다.
“뇌의 신경가소성이 뭔가요?”
“중추신경계의 손상 후 뇌가 재구성(reorganize) 혹은 재배치(remodel)하는 능력을 신경가소성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주위 환경이나 병변에 맞도록 대뇌피질의 기능과 형태가 변합니다. 그것을 신경계의 적응(neural adaption) 과정이라고 합니다. 이는 체질을 통한 한약이나 침술치료의 경우에도 뚜렷하게 작용합니다.”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의산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의산은 이어서 말했다.
"체질치료를 하면 뇌의 신경가소성은 이를 기억하며 처방에 따라 몸의 메커니즘을 회복합니다. 한마디로 모든 치료는 뇌가 인지하고 그에 따라 신경가소성으로 인해 신경계의 적응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뇌의 신경가소성이 체질치료에도 적용이 된다는 뜻이오?”
“그렇습니다. 달리 말하면 질병에도 신경가소성으로 적응이 되며 체질치료 역시도 그렇다는 뜻입니다. 오랜 만성질환도 뇌의 신경가소성을 변화시켜 그 병이 낫지 않도록 고정시킵니다.”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소?”
“뇌의 가소성 변화는 대뇌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는 시냅스에서 일어납니다. 이를 통해 뇌 안의 네트워크가 새로이 구성되게 되며 행동학적 변화나 기능회복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체질치료를 통해 기능회복이나 강화가 되거나 만성질환이 고착되어 고통받게 하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뒤쪽에 앉아 있는 교수가 질문을 했다.
“재활치료의 측면에서는 뇌가소성의 변화가 기능 회복에 적응적(adaptive) 일 수도 있고 비적응적(maladaptive) 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기능회복과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꼭 변화나 기능회복이 된다고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의산은 진지하게 듣고 있다가 말했다.
"뇌가소성은 연습(practice)과 치료(intervention)에 의해 촉진될 수 있습니다. 특히 한약과 침술치료는 체질적으로 뇌가소성이 일어날 수 있도록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 그 위대함이 있습니다. “
“신경조절을 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체질로 병을 치료하여 난치병을 고치는 것은 그러한 신경조절로 뇌가소성을 증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난치병 치료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만성질환이나 난치병의 경우엔 뇌의 신경가소성이 기능회복이 아니고 고착에 더 가까워진다는 뜻입니다.”
교수는 관심을 가지고 다시 질문했다.
"체질치료로 신경조절을 하신다는 말씀이신가요?"
"맞습니다. 체질치료는 뇌의 신경가소성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신경조절을 할 수 있습니다. 한약과 침술치료는 경락을 통해 신경조절을 하며 몸의 메커니즘을 정상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산은 그들에게 체질치료를 통해 한약이나 침술의 과학성을 인지하도록 하려고 했다.
그들이 원하는 체질강화를 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만약 그들이 스스로 체질강화를 하여 잠재의식을 극대화할 수 있다면 그 힘은 엄청날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의산이 이렇게 앞에서 설명하지 않고도 그들은 세계를 움직일 잠재의식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강호의림(強豪醫林)
강호(強豪)는 실력이나 힘이 뛰어나고 강한 엘리트나 그룹을 의미한다.
의림(醫林)은 의학의 숲이라는 뜻으로, 의학계를 일컫는다. 중국의 무협소설에 나오는 강호(江湖)는 허구의 세계이며 판타지이다. 또 무림(武林)은 무술의 세계지만 그 역시 허구의 세계이다. 그러나 강호의림(江湖醫林)은 실제적 현실이며 최첨단 과학의 세계를 나타내며 동시에 판타지도 있다. 기적이나 마술, 놀라운 치료의 세계는 그 자체가 판타지인 것이다. 나는 누구나 절실히 알고 싶어 하고 찾는 진정한 강호(强豪)와 의림(醫林)의 길라잡이를 위해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