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와 빨리빨리, 카드와 현금, 은행과 금고의 다른 문화
“뜨뜨(천천히) 자꾸 서두르면 안 됩니다. ‘천천히 천천히’ 해요.”
2군 타오디엔의 새집으로 이전을 하고 나서 일이다.
흙으로 된 정원이 보기엔 좋았지만 사실은 모기농장이었다. 파라솔 아래 앉아 있으면 모기가 한꺼번에 40~ 50마리가 날아들었다. 전자 모기 채를 휘둘러도 역부족이었다. 엄청난 모기떼의 공격으로 코로나 기간 중에 뎅기열에 걸리고 말았다. 열대지방의 뎅기열은 5가지 바이러스로 구분된다. A급부터 E급까지로 그 강도가 달라진다.
내가 걸린 뎅기열은 최소 B급의 초강력 바이러스였다. 게다가 코로나까지 함께 걸려 초주검 상태가 되었다.
무려 14일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사경을 헤맸다. 당시 한국인이 몇 명이나 죽어나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는 병원에 가지 않고 이 두 가지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치료했다.
그 끔찍한 일 때문에 나는 코로나 봉쇄가 풀리자 말자 집안에 화강암을 깔기로 했다.
흙으로 된 정원은 모기들의 융단 폭격으로 위험성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그때 베트남 인부들을 불러 일을 할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오후에 더워지기 전에 오전에 빨리빨리 일 합시다.”
그 당시의 대답이 ‘뜨뜨(천천히)’다.
그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이 말부터 앞세운다. 이 말은 한국의 ‘빨리빨리’와 정면으로 충돌되는 의미가 들어 있다. 베트남인들보다 더 느리고 게으른 말레이시아인들도 사용하지 않은 말이다.
처음에 그 말을 들을 때는 속으로 짜증이 났다. 왜 천천히라는 말을 일을 할 때마다 할까?
그들을 데리고 옥상의 지붕공사와 바닥 화강암공사, 알프스마 카페 공사 등등을 하며 그 말을 이해했다.
베트남의 천천히 문화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충돌되는 말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일리는 있었다. 그들은 더운 날씨에서 빨리빨리 해서 힘 빠지면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말하는 천천히는 확실하게 일한다는 의미와 무리하지 않는다는 뜻이 있다.
나는 그들이 ‘뜨뜨(천천히)’ 일하는 사이에 혼자 열심히 감독을 했다.
그들은 일하는 틈틈이 물을 마시며 그늘에서 쉬기도 하며 ‘뜨뜨(천천히)’ 일했다. 하지만 나는 물을 많이 마시지도 않고 그들에게 일지시를 했다. 그 결과 바로 더위를 먹고 오후엔 머리가 아파서 일을 할 수 없었다. 베트남에서 ‘빨리빨리 문화’가 창피하게 느껴졌다.
왜 그들이 ‘뜨뜨(천천히)’를 외치는지 이해가 되었다. 열대지방의 날씨가 35도를 넘어가는 한낮에 빨리빨리는 아닌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하다간 최소한 더위를 먹거나 일사병에 걸리기 딱 쉬운 것이다. 한 나라의 문화는 오랜 역시와 문화, 환경의 영향으로 형성된다. 빨리빨리와 천천히는 문화충돌이 아니었다. 서로의 환경적 조건이 달라서 생긴 신토불이 문화인 것이다.
코리안 타임과 베트남 타임의 차이
불과 40년 이전 시절엔 코리안 타임이 있었다.
한국인의 약속 시간 개념이 희미한 것을 빗대어 코리안 타임이라고 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 코리안 타임은 대단히 일반적이었다. 대개 30분에서 1시간까지 늦는 것이 다반사였다.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늘 코리안 타임 시계를 찬 사람이 꼭 있었다. 늦을 거라고 상대방에게 미리 연락을 할 조건이 충분하지 않았다. 휴대폰이나 공중전화 부수가 많지 않았던 탓이다.
바쁜 시간에 공중전화로 달려가서 줄을 서기도 애매했다. 약속 시간에 대한 개념이 희미해서 늦으면 코리안 타임이라고 둘러댔다. 그 당시엔 핑계가 교통체증이었다.
사실은 늦잠을 자거나 30분 미리 출발하지 않은 자신의 탓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엔 미안하다는 말보단 핑계가 앞섰다. 미안하다면 될 것을 교통체증을 탓하고 집안에 일이 생겼다고 변명을 했다.
코리안 타임은 외국인들이 지어낸 말이다. 한국인들이 약속시간을 잘 안 지키거나 번번이 지각하는 것을 빗대어 그렇게 표현했다. 그 시절을 살지 않은 사람은 설마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개발도상국 타임이라 생각한다.
베트남에도 그 시절 한국과 거의 유사한 베트남 타임이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약속을 하면 20분에서 30분 늦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옛날 한국의 코리안 타임에서 한국인이 그랬듯 유사한 핑계가 많다
그들이 변명하는 주요 이슈는 교통체증이다. 또 집안에 갑자기 일이 생겼거나 오토바이가 고장 났다는 식이다. 그들은 대부분 변명을 진짜처럼 한다.
시대는 다르지만 코리안 타임의 변명과 ‘오십보백보’ 차이다.
코리안 타임과 차이는 있다면 그들의 ‘뜨뜨(천천히)’ 문화가 약속시간에도 적용이 된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베트남 타임으로 늦게 와서도 ‘씬로이(죄송해요.)’를 말하지 않는다.
오래 베트남 전쟁 통에 ‘씬로이(죄송해요)’라는 자기 실수에 대한 인정은 생명의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한국과 같은 동족상잔을 겪으며 그들은 즉결처형을 많이 했다. 전쟁통에 잘못한 사람을 감옥에 가두지는 않는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 즉결처형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씬로이(죄송해요.)를 하지 않는다.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이다. 오히려 딴짓을 하며 눈길을 피한다.
나는 시골출신으로 코리안 타임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따지지 않는다. 다만 직원의 지각에는 명확히 선을 긋는다.
“만약 10분이라도 늦으면 1시간의 일당을 제할 것이다. 30분 이상 늦으면 2시간의 일당을 제하겠다. 이점에 대해서 동의를 하겠는가?”
순박한 베트남 젊은이들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한다. 신기한 것은 그다음부터 베트남 사인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진다. 오히려 20분, 30분 빨리 출근한다.
그들은 시간의 경제적 가치를 그렇게 배우고 인식한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면서 까마득히 코리안 타임을 잊은 것처럼 베트남 타임도 곧 사라질 것이다. 코리안 타임과 베트남 타임은 재미있는 발전과 변화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문화현상일 뿐인 것이다.
한국의 은행문화와 베트남의 금고와 현금문화
과거 한국에는 저금통 문화가 있었다.
가난한 집안에는 대부분 돼지저금통이 있었다. 잔돈은 저금통에 넣고 조금 큰돈은 따로 모르게 숨겨서 모으는 사람들도 많았다. 은행이 보편화되기 이전에 저축을 그렇게 해야 했다.
베트남은 그 유사한 문화가 금고문화라는 것이 있다. 거리를 가다 보면 개인형 금고를 파는 가게가 참으로 많다. 왜 그들은 현금을 선호하고 금고를 좋아할까?
베트남은 외세침입과 전쟁, 통일 이후까지 화폐개혁을 너무나 많이 했다. 현대 화폐로 변화를 한 1945년부터 1985년까지 무려 6번의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그 과정에서 돈의 가치변화나 손실을 다양하게 경험했을 것이다. 또 베트남 전쟁 이후 재산몰수와 은행 예금의 몰수 등을 많은 사람이 겪었다.
당연히 은행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불안감이 있다. 할아버지 혹은 부모 세대의 전쟁에서 겪은 그런 트라우마들은 자연히 젊은이에게도 전해진다. 젊은 사람들도 꼭 필요한 통장 외에 개인적으로 돈을 모으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나이 든 사람들은 은행을 전적으로 신뢰하기가 더 힘들 것이다. 당연히 그들은 개인 금고를 구입해서 돈을 보관한다. 그냥 돈을 장롱이나 집안에 숨겨 놓으면 도둑맞을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도둑은 ‘알리바바’라고 한다. 도둑을 칭하는 이름이 상당히 문학적이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서 영향을 받은 ‘알리바바’는 상상외로 많다.
길거리에서 2인조 오토바이 알리바바에서 좀도둑 알리바바 까지 종류도 많다. 빈민가의 알리바바는 수법도 좀 특이하다. 한 번은 베트남어 선생이 수업을 하다 말고 펑펑 울었다.
“갑자기 왜 울어요?”
그녀는 너무나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알리바바가 집에 들어와서 옷과 신발, TV, 휴대폰, 컴퓨터까지 싹 다 가져갔어요. 잠시 집 앞 편의점을 다녀왔는데, 집 앞에 차를 대고 다 가져갔어요.”
듣고 보니 쇼킹했다. 돈만 들고 간 것이 아니라, 싹쓸이를 한 것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돌아오는 길에 보니까, 집 앞에 이삿짐 트럭 같은 것이 있고 짐을 내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웃집이 이사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집안에 들어오니, 싹쓸이해간 거였어요.”
참 어이가 없었다. 그녀는 옷과 신발을 빌려 신고 휴대폰은 임시로 사서 겨우 왔다고 했다. 그녀는 아쉽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집에 금고가 있었다면 장롱에 숨겨둔 돈은 못 훔쳐 갔을 터인데, 너무 억울해요.”
베트남의 개인 금고는 열기도 힘들지만 바닥에 구멍을 뚫어 통째로 들고 가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서 개인주택은 개인 금고 설치를 위한 구멍이 뚫려 있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녀에게 딱히 위로해 줄 말이 없었다. 베트남인들이 왜 금고를 좋아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베트남 사람들이 왜 알리바바라고 하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은 싹쓸이 도둑들이기 때문이다. 무리를 지어 망을 보고 조직적으로 훔쳐가는 것을 의미한다.
나 역시 푸미흥 골목에서 ‘알리바바 2인조’에게 휴대폰을 뺏길 번한 적이 있었다. 한 번은 골목길을 걸으며 휴대폰을 보고 갔다. 그런데 2인조 오토바이를 탄 일행이 다가오며 갑자기 내 휴대폰을 낚아채어 가려고 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휴대폰을 꽉 잡았다. 하지만 뒷 자석의 ‘알리바바’가 워낙 강하게 힘을 주는 덕택에 휴대폰이 땅에 떨어졌다.
그들은 휴대폰 탈취에 실패하자 쏜살같이 달려 도망을 갔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1000만 도시 서울에도 소매치기, 좀도둑이 많듯 1000만 도시 호찌민도 마찬가지다. 서울에 비해 경제적 수준이 낮은 호찌민의 경우 생계형 알리바바가 어디든 도사릴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베트남 개인주택에는 디지털 도어록은 드물고 굵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디지털 도어 록도 못 미더워한다. 굵은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가지고 다닌다. 현관문에서부터 방문마다 굵은 자물쇠를 채우게 만들어져 있다. 또 그들은 은행을 못 믿듯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도 못 믿어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반면 그들은 현금 뭉치를 묶어서 지니고 다닌다. 고무줄로 묶어서 두툼하게 지니고 다니는 것이 마치 돈놀이 장사꾼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끔은 건물주들이 자랑스럽게 돈 묶음을 내 보이며 그들의 경제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문화들이 베트남의 금고 문화나 현금 문화를 나타낸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개인금고를 하나 구할까 말까 생각하기도 한다. 한국의 신한 은행은 차를 타고 가야 해서 좀 불편하고 베트남은행은 아직 신뢰가 가지 않으니, 고육지책을 그렇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