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없는 도시 호찌민에서 등산은 어떻게 해야 할까?
"호찌민에 산은 없나요?"
산을 좋아하시는 분은 가끔씩 내게 그렇게 묻는다.
나 역시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처음 호찌민 이전 이후 참으로 아쉬웠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에서 살 때, 산에 갔다가 산 거머리의 공격을 받은 이후 동남아 산에 대한 환상이 깨쳤다. 독초들과 독사들, 심지어 산 거머리까지 살피며 산을 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호찌민 근처에 산은 없습니다. 그러나 약 2시간 전후로는 산이 더러 있습니다. 올라가시면 한국의 산과 거의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느낌이 같습니다."
나는 그렇게 설명해 준다. 처음 산이 없는 호찌민에 와서 산에 대한 향수를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산은 고향과도 같다. 특히 나는 일반 산행보다 야간산행을 즐기고 산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는 것을 좋아했다. 산에 텐트를 치고 새벽에 깨어나면 별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름 모를 산새들의 노랫소리와 맑은 공기들, 햇볕이 서서히 드러나는 일출 직전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너무 좋다. 산에 대한 그리움은 자연인들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
호찌민에 산은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베트남은 산악국가이다. 중부지방과 북부지방은 켭켭히 산으로 둘러 쌓여 있다. 호찌민시는 예외적으로 산이 없고 사이공강만 넓게 흐르고 있다. 사이공강은 캄보디아의 남동쪽 펌다엉 근처에서 발원하여 225km의 길이로 베트남의 남부로 흐른다.
"樂山樂水(요산요수).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이 구절을 떠올리며 처음엔 사이공강변으로 자주 놀러 나갔다. 하지만 요산을 원래 더 좋아해서 하는 수 없이 호찌민 근교의 산을 찾았다. 호찌민 근교의 산은 캄보디아 국경 근처의 누이 바덴과 누이 수오이다, 누이 박번디엔 이렇게 3개의 산이 유명했다. 누이(산)는 산이라는 뜻으로 한국어와 달리 베트남어는 산(누이)이 앞에 붙는다.
코로나19 이전까지 나는 이 세 산을 번갈아 한 달에 한 번씩 다녔다. 그중에서 산과 바다가 기막히게 어우러진 산은 누이 박번디엔(백운대)이다. 나는 보통 호찌민 근처의 산은 백운대(백번디엔)를 소개해준다.
백운대는 호찌민 7군에서 출발하면 대략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그곳은 산의 7부 능선까지 차가 올라간다. 그 근처에 유명한 절이 있어 주차장엔 차가 많이 주차해 있다. 그곳에서 산 정상까지는 약 20분에서 30분 정도 도 걸린다. 정상인 백운대에 있는 큰 돌은 한국의 망부석처럼 우뚝 솟아 있다.
돌이 웅장해서 가까이서 보면 멋이 있다. 그 돌 틈 뒤에는 까오다이교의 사원이 있다. 베트남의 신흥종교로
세계 5대 주요 종교(유교, 불교, 기독교, 도교, 이슬람교)의 신앙을 절충하여 만들어졌다. 그곳에는 흰 옷을 입고 머리를 기른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가끔씩 그곳에 가서 앉으면 그들이 차도 내어주고 과일도 주며 환대했다. 나는 그들과 여러 차례 만나서 대화를 나누곤 해서 그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들은 자리를 내어주고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친근하게 건넸다. 그들은 언어만 다를 뿐 외양이나 분위기는 한국의 자연인과 흡사했다.
백운대의 바위와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은 조화롭다. 보통은 원숭이들이 등산객의 과자나 음식물을 호시탐탐 노린다. 근처의 바위에 앉아서 한적한 숲을 바라보면 마음이 그렇게 평화울 수가 없다. 이 사진만으로 과연 한국의 산과 베트남의 산을 구별할 수 있을까?
직접 가서 산을 오르면서도 가끔씩은 혼동을 한다. 한국의 산과 너무나 유사해서 구별하기가 힘들다.
한국의 산과 다른 점은 소나무나 전나무 등 침엽수가 없다는 것 정도이다. 하지만 중부지방 가까이의 달랏만 가더라도 온 산에 소나무가 자리 잡고 있어 더욱 한국의 산과 구별이 어렵다.
백운대 정상에서 보면 산등성이와 바다가 이어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멀리 붕따우의 리조트가 보인다. 한국의 산과 다를 바 없는 나무들과 바위들이 정겹다. 나는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이 풍경이 좋아서 코비드 19 이전에는 이 산을 자주 찾았다. 아무리 봐도 정겨운 산등성이와 긴 능선이다. 멀리 바다의 수평선이 물감으로 색을 한 듯 보인다. 호찌민의 동쪽 바다 붕따우 지역의 해안선이 펼쳐진 모습도 보기에 좋다.
산과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산을 오르고 내려가서 맛있는 해산물을 풍성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붕따우 해변이 한눈에 보인다. 실제로 산 위에서 보면 가슴이 열리는 느낌이 든다. 이 풍경만으로도 산에 오른 느낌을 만끽할 수 있다. 나는 이 바다로 이어진 한국과의 무수한 거리를 가로질러가면 포항 앞바다까지 갈 수 있을지를 상상해보곤 했다. 하지만 너무나 아뜩한 거리다.
만약 베트남 호찌민에 거주하는 사람이 바다가 그립다면 여기 이산에 오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거리도 가깝고 산행을 하면 한국과 유사한 느낌 때문에 친근감이 저절로 생긴다.
차에서 내려 약 5분간 올라가면 큰 바위가 있다. 그러나 누구나 작은 돌 위에 올라가면 큰 바위를 들 수 있다. 세상 그 어떤 어려움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어린 소녀가 두 손으로 바위를 번쩍 들고 있다. 누구나 슈퍼맨을 만드는 바위다. 나는 이 산에 올 때마다
처음 오시는 분들에게 바위를 들어 볼 것을 제안한다. 어른은 쑥스러워 하지만 어린애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이 큰 바위를 두 손을 들어 올린다. 재밌는 슈퍼맨 바위다.
백운대 산 정상이다. 약 20분 걸어올라 가면 이곳에 도착할 수 있다. 바닷바람과 산바람이 온몸을 휘감아 도는 멋진 곳이다. 사방이 훤하게 열려있고 열대의 햇살과 바다의 바람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이곳은 베트남 까이다이교의 제단이 갖춰져 있다.
먼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대단히 멋진 장소이다. 나는 이곳에서 여러 번 사진을 찍었고 단체 사진도 꼭 이곳에서 찍었다. 베트남 백운대에 오르면 꼭 사진을 찍어야 할 장소이다.
한국의 백운대같이 약간은 아찔하게 느껴지고 위험하게 느껴지는 그런 느낌은 없다. 서울의 삼각산에 위치한 백운대는 걸어가기도 힘들고 오르기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베트남 붕따우의 백운대는 비교적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다. 어린이나 노인이 걸어와도 별 부담이 안 되는 곳이다.
바위를 감싸 안고 자라나 나무뿌리가 멋진 나무다. 나무는 바위를 힘껏 안고 있다.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천년의 사랑이다. 이토록 견고하게 나무뿌리가 바위를 감싸 안고 있는 모습은 찾기가 쉽지 않다.
나는 백운대를 올 때마다 이 나무를 바라보곤 한다. 나무가 저렇게 바위를 감싸 안고 있으면 바위는 답답하지 않을까? 숨 막히게 포옹하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산을 내려와서 붕따우의 호젓한 해물식당으로 왔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2층에서 찍은 여러 컷 중의 한 컷이다. 바닷바람이 시원해서 에어컨이 필요 없었다. 강렬한 햇살 때문에 길가에 주차한 차의 차창은 천으로 감싸여 있다. 아마도 저 차 안에는 기사가 에어컨을 켜고 기다릴 것이다.
베트남은 외국인이 손수 운전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대개는 기사를 채용한다. 기사들은 대부분 차에서 에어컨을 켜고 기다린다. 주차장이 대부분 없는 관계로 길가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사뭇 다른 풍경이다.
즐거운 산행 후 바다의 진미를 맛보고 있다. 살아 있는 조개와 게, 굴, 오징어까지 풍성한 잔치다. 근처의 포구에서 막 건져 온 해산물로 만든 요리들은 산해진미이다.
산행을 하며 피곤했던 몸을 풀어주는 푸짐한 먹거리가 참 좋다. 대개 백운대 산행을 하면 점심식사는 근처의 바닷가 식당을 찾는다. 한국과 달리 저렴한 비용에 풍성한 먹거리여서 이 또한 산행을 더욱 즐겁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식당 앞의 작은 항구이다. 낚싯대가 오트바위 위에 걸쳐져 있다. 일요일의 한적한 오후를 낚시꾼들이 즐기고 있었다. 근처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잠시 휴식 시간 중에 포구에 정박한 배들을 보면 마음이 느긋해진다.
산행의 진정한 의미는 휴식과 충전이다.
정상의 바위 위에서 산의 정기를 충전하고 다시 영원한 생명의 바다에서 또 바다의 정기를 충전한다. 산행과 바다행이 어우러지며 뿌듯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호찌민에 바다가 없다고 해도 1시간 30분만 달려오면 이렇게 멋진 바다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