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배이야기 *

by clavecin

* 선배이야기 (2021.01.31.일) *


7세에, 다시 말하면 만 5세에 초등학교를 들어갔다. 믿지 못하겠지만, 어렸을 적에는 나름 똑똑했었다고 한다. 유치원도 패스했다. 물론 다닐 형편이 되지 못한 것이었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께서 담임 선생님께 나를 신신당부하셨던 것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너무 어리니 잘 좀 부탁한다는 말씀을 하셨겠지.

하지만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별 어려움 없이 다녔다. (지적인) 차이를 전혀 느끼지 못했고, 학교에서는 굳이 내가 한 살 어리다고 말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어렸을 적부터 다녔던 교회에서는, 나랑 동갑인 아이들이 일찍부터 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학년이 위라는 것 때문에 그냥 ‘언니’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사실은 내가 자기네와 동갑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으면서도 입에 붙어 버린 그 단어를 쉽게 바꾸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도 ‘언니’로 불린다.


대학교에 와서 보니, 우리 과에서는 학번과 상관없이 나이로 호칭을 붙였는데, 그럼에도 나는 계속 나보다 한 살 많은, 같은 학번 아이들과 동갑으로 취급되었다. 즉 학번이 낮아도 나이가 많으면 ‘언니’로 불렀고 ‘오빠’로 불렀지만, 나는 그냥, 나보다 한 학번 낮은, 즉 나와 나이가 동갑인 아이들에게 ‘언니’ ‘누나’로 불렸다.

어떤 경우에는, 재수했다고 하는데, 나보다 두 학번이나 낮은 동년배도 있었다. 나는 1년을 일찍 들어갔고, 그 사람은 1년을 늦게 들어왔으니 그럴 수 밖에. 경험자로서, 8세에 초등학교 입학은 너무 늦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말에 L선생님은 반기를 들었지만.

고등학교 때까지는 어려움이 없던 나이차가, 대학교 때부터는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아주 미묘한 차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나는 항상 나와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왔던 것 같다. 우리 학번에는 7세에 입학한 아이들이 2~3명 있었지만 생일이 대부분 1, 2월이었고 재수생 언니가 1명 있었고 모두 일명 ‘현역’이었다.

같은 학번이지만, 실제로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무언가 의지가 되었고, 그 친구들도 나를 동생처럼 잘 챙겨주었다. 내가 뭔가 어리버리해 보였던 것 같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누군가에게 ‘챙김을 받는 것’은 익숙한데, 내가 누군가를 ‘챙겨주는 것’은 어렵고 아쉽게도 잘 할줄 모른다. 항상 ‘챙김을 받으며’ 살아온 탓이다. 집에서도 그렇다. 동생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직장생활도 그랬다. 아주아주 먼 옛날, 동산고등학교에 왔을 때부터 꽤 오랜 시간, 나는 늘 막내였다. 같은 해에 학교에 온 선생님들을 같은 동기로 하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막내며, 서술한 것과 같이 같은 학번 내에서도 나는 한 살 어리다. 물론 지금은 까마득하게 어린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지만 말이다.


‘내가 좀 어리다’는 느낌은 세상을 살아가기에 좀 편한 것 같다. 실수를 해도 용서가 되는 느낌이고 잘 받아들여진다는 생각이다. 조금 생각 없이 말을 해도, 조금 함부로 행동해도, 다들 잘 받아주는 사람들이 늘 내 주변에 있었고 지금도 내 주변에 한가득이다. 직접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늘 고마운 마음이다.

그래서 후배들을 잘 못챙기고 생각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 나의 많은 단점 중의 하나다. 나는 선배들에게 챙김을 잘 받았으면서 받은 대로 잘 못해준다고나 할까.


그런 나에게 작년에 가장 큰 ‘수확’ 중의 하나라면, 아주아주 젊은 여자 선생님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역시나 그 선생님들이 나를 잘 챙겨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요즘 세대의 감각과 사고방식, 깔끔한 일처리 방법, 다양한 스마트 기기 사용법 등을 배웠다. 그들이 나를 잘 참아준 결과라고나 할까.

몇 년 전까지는, 새로운 선생님이 오시면, 경력자 선생님들과 멘토링 관계로서 가르치고 배웠었는데, 요즘에는 젊은 선생님들을 가르치기는커녕, 그 분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배우는 시대다. 내가 고등학생 아이들에게 배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무 것도 없는 이 학교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정말 내 앞에 다른 선배 음악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마냥 했었다. 무슨 시설을 갖추어야 하는지, 이것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모두다 스스로 알아서 했어야 했다. ‘다른 사람이 다 많들어 놓은 걸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무언가 새로 만들어 가고 경험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담임 교사를 오랫동안 해 오면서 항상 이즈음에 하는 일이 있는데, 선배가 되는 아이들에게,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남길 ‘선배 이야기’를 쓰라고 하는 것이다. 1학년 생활을 돌아보며, 신입생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쓰라는 것인데, 다들 비슷비슷한 것 같지만 쓰는 아이들의 개성과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서 차이가 많이 난다.

3학년은 2학년에게, 2학년은 1학년에게, 자기들의 귀한 인생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인데, 3학년은 합격수기를 쓰는 것이 보통이다. 어떤 학생은, 1학년, 2학년, 3학년의 선배이야기가 모두 있기도 하다. 학급 카페를 보면, 11년 전의 선배이야기부터 탑재되어 있다.


올해 입학하는 27기 학생들을 위한 선배이야기를 제일 먼저, S대 수시 합격한 아이들에게 부탁을 했는데, 아이들이 모두다 정말 정성껏 작성해 주었다. 단 한명도 거절하지 않고 작성해 준 것에 깜짝 놀랐고 형식적으로 쓴 것이 아닌, 정말 3년의 인생이 담긴 귀한 이야기들을 작성해 주었다.

그에 힘입어서 1, 2학년 담임 선생님들께 학생들을 추천받아서 부탁을 하였더니, 26기(20명), 25기(14명)의 학생들이 공부 시간을 쪼개서, 그야말로 진심어린 이야기들을 담아 주었다.

중요한 것은, 겉으로는 까부는 녀석으로만 알았던 아이들의 글에는 공부에 대한 고민, 생활에 대한 지혜, 무엇보다도 후배들을 향한 사랑과 격려가 담겨 있었다는 것이고, 읽는 내가 가장 큰 도움과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학교 홈페이지와 음악수업 카페, 27기 카페와 학부모 카페 등에 탑재한 선배이야기를 후배들이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27기 신입생 뿐만 아니라 2학년에 올라가는 26기를 위한 글이기도 한 글들인데, 사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읽는 사람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마치 내가 지금 글을 쓰면서, 나의 지난 과거를 돌아보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처럼, 선배 아이들이 지난 2년, 1년을 돌아보며, 남아있는 시간들을 더 잘 보냈으면 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제발 그랬기를 바란다.


나이가 좀 어리다고 감히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 본다. 글을 썼던 18살, 19살, 20살의 아이들은, 인생을 깊이 생각하고, 고민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이었고 지금도 수많은 갈등 속에서 지혜로운 선택을 하려고 애쓰는 아이들이다.

선배이야기의 마지막 2편의 글을 오늘 올리며, ‘선배 이야기’ 프로젝트를 수행한 학생들과 그 글을 읽었던 학생들, 그리고 지금의 우리들 모두 오늘보다 조금은 나은 내일을 바라보며 또 하루를 살아간다.


후배들로 불려지는 아이들아, 선배들이 챙겨주려고 기다리고 있으니, 마음껏 ‘후배’의 시절을 즐기기 바란다. ‘챙김을 받는 시절’이 좋은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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