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숙사 생활 (2021.07.03.토) *
처음 유럽여행은 음악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했던 서유럽 여행이었다. 음악과 유럽의 결합은 놀라운 마케팅이었고 처음 가는 유럽 여행준비로 몇 달 전부터 한참 들떠 있었다. 처음 접하는 다른 사람과 방을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전.혀.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잠자리와 먹는 것이 좋아야 한다는 것인데, 모두 만족스러웠다. 나름 좋은 호텔에서 숙식을 했으며 때마다 룸메이트가 바뀌었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십여일을 여행하는 동안 낯을 많이 가리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같이 다니면서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었다. 친해진 선생님들과 함께 방을 썼으면 나았을지 모르지만 가이드는 새로운 멤버들로 방을 엮어 주었다.
잠깐씩 방을 같이 사용하는 것이기에 별 어려움은 없었지만 사실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욕실을 나오면서도 몇 번이나 돌아보며 물기를 다 닦았고 이불을 잘 개어 놓았으며 내 짐들을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느라 신경을 썼다.
기억에 남는 일 중의 하나는, 연세 있으신 어떤 선생님과 함께 방을 쓰게 되었던 일이었는데, 그 선생님은 나의 개인적인 것들을 너무도 꼬치꼬치 물으셔서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다른 방에 가서 한참 놀다가 들어갔던 일이었다. 선생님은 좋으신 의도였겠지만 나는 불편하였고 결국 마지막에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헤어진 것이 못내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다.
오랫동안 알고 있던 학교 선생님들과도 며칠 동안 여행을 하게 될 때면 조금 긴장하게 된다. 직장에서 아무리 오랫동안 함께 지내더라도 숙식을 함께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니까 말이다.
성격이 차갑고 냉정했던 - 지금도 차갑고 냉정한.. - 나는 누군가 내 옆에 붙어 있는 것이 싫었다. 오죽하면 가족들은 나에게 ‘냉혈인간’이라는 말을 해 주었다. 내 방을 갖기 전까지 여동생과 함께 지냈었는데, 여동생이 내 옆에서 닿는 것이 정말 싫어서 닿기만 하면 밀쳐냈고 항상 잠자기 전에는 싸웠던 것 같다.
- 저리 가!
- 네가 더 옆으로 가!
이러면서 말이다.
또 나는 공부해야 하는데 불을 끄라는 둥, 나는 자야 하는데 불을 켜라는 둥, 온갖 실랑이를 벌이면서 지냈던 그 옛 시절이 생각난다.
내 방을 갖게 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내 마음대로 뒹굴어도 되고 옷을 여기저기 펼쳐놓아도 되며, 마음껏 불을 켜고 끌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옆에 그 무엇도 닿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도 좋았다.
대학교 때까지 학교는 항상 집에서 가까운 곳이었고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함께 방을 사용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생각도 해 보지 않은 일’이다. 집에서 가족과 같은 방을 써도 저렇게 힘들었는데, 가끔씩의 여행에서 낯선 사람과의 숙식도 힘든데, 하물며 함께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끔찍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우리 학교 아이들을 보면 정말 놀랍고 놀랍고 놀라울 뿐이다.
- 어떻게 다른 사람과 함께 생활을 할 수 있는가....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이들과 상담을 할 때 묻는 가장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 기숙사 생활은 괜찮아?? 견딜만 해?? 힘들지는 않아??
거의 90%의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 힘들어요...ㅠㅠㅠ
아주 가끔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이 있다.
- 네! 아주 재미있어요! 아이들도 아주 좋구요!!!
그럼 나는 그 말을 믿지 못해서 다시 묻는다.
- 진짜???? 정말?????
아이들에게 항상 말한다.
- 선생님은, 절대로 기숙사 생활을 할 수가 없는 사람이야.
- 그래서 너희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이 돼.
- 얼마나 힘들겠니....
- 그래서 기숙사 생활을 했다고 하면, 그건, 진짜로 대단한 ‘인격적인 성숙’을 말해주는거지...
- 꼭 잘 견디기를 바라..
- 기숙사를 나온다고 해도, 절대 말리지 않아..
그렇기에 기숙사생들에 대해서 생활기록부에 반드시, 넘치도록, 좋은 이야기를 많이 써준다. 기숙사생활을 통해서 공동체 의식을 얼마나 잘 배웠고 갖추었으며, 배려심이 넘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을 잘 배웠는지....
그.러.나.!!!
어느 사회에나 있듯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은 법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힘들어 하는 것은, 잠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엎드려 자는 아이들을 보면 대부분 기숙사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학교 초반에는 그렇게 알려졌을 정도였다.
이유는 서로의 잠자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자고 싶은데 옆에서 웃고 떠든다든가, 스마트폰을 한다든가, 게임을 한다든가 하는 것 때문에 잠이 모자란 경우가 많았다. 그 방에 규율 부장이 있으면 그 방은 밤 12시에 잠들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친구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고 꾹 참다가 부모님께 말씀드려서 민원이 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일단, 다른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며, 그렇기에, 집에서처럼 내 마음대로 활보하며 지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왜냐하면 기숙사는 내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공간인데 마치 내 집인양 지낸다면, 차라리 기숙사를 나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기숙사는 생판 모르는 다른 사람과 지내는, 공동의 공간이니, 예의와 배려를 갖추어야 하고, 만약 그것이 안된다면, 자유롭게 나와서 자취를 하든가 집에서 다녀야 할 듯 하다.
‘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얼마나 큰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장점인지!!!
- 아마 공동체 의식이 있겠지?
- 아마 배려심이 깊을거야!
- 협동의식을 배우지 않았을까?
-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잘 해결하는 성격일거야!
- 무엇보다 리더십이 있을거야!
- 성격이 원만하고 둥글둥글하겠지?
- 규칙이나 규율을 잘 지키겠지?
이런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내 경험상, 이 단어들과 절대 어울리지 않는 기숙사생들이 많았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가 맡았던 우리 반 아이들 중 기숙사생의 생활기록부 내용에는 이런 단어들은 함부로 사용되지 않았으며 고르고 골라서 들어갔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다.
- 이 학생은 기숙사 생활을 하며~~~
예전에는 1년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2학년 때 ‘사생단’이 되어서 기숙사를 제대로 잡아보겠다고 포부를 갖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의 추천을 받아서 사생단, 사생장이 되어서 기숙사를 위해서 밤새도록 토론을 하고 회의를 하고 고민하는 아이들이 많았었다. 그 사생단, 사생장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내가 말렸던 녀석도 있었다. 요즘은 어떤지......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와 격주로 등교하는 아이들로 인해 무언가 규율을 잡고 학교의 오랜 전통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새벽 2시에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다닌다는 기숙사 아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 아이들을 지도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 손을 거쳐간(내가 담임했던) 아이들은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된다. 그럼에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해 본다.
- 왜, 그 잘못된 것을 스스로 바로잡지 않는가..
- 왜, 그것이 용인되고 있는가..
- 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서로에게 말하지 않는가..
- 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만 있는가...
- 왜, 그곳이 그렇게 변했는가...
- 왜, 바꾸려는 이가 없는가.........
- 왜, 모두, 눈 감고, 귀 닫고, 입을 닫고 있는가......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무언가 느끼고 볼 수 있는, 행동하는 한 명은 있지 않을까....
- 교실 대걸레를 거는 S자가 자꾸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누군가 엮어 놓은 고무줄....
누군가는 S자가 없어져서 혼자 나뒹구는 대걸레를 바라만 보았을 것이고,
누군가는 S자를 바닥에서 찾아서 다시 걸어 놓았을 것이고,
누군가는 S자를 가지러 나에게 왔겠지만..
아마 대부분, 혼자 굴러다니는 대걸레를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 어떤 학생은,
반복되는 이 현상에 주목했을 것이고,
고민을 했을 것이고,
자꾸 떨어지는 S자를 고정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것이 고무줄로 엮는 것이었을 것이고,
그래서 집에서 고무줄을 가져오겠다고 마음 먹었을 것이고,
아마도 몇 번은 까먹었을 것이고......
이런 행동을 하는 학생이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