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아지경(無我之境)
(2021.07.17.토) *

by clavecin

* 무아지경(無我之境) (2021.07.17.토) *


이제 우리나라에는 ‘여름’과 ‘겨울’밖에는 없다고들 하는데, 가장 처절한 여름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는 이번 주 숨쉬기도 힘들었던 어느 날, 원격수업을 마친 뒤 어떤 녀석의 기도 내용 중 일부..

- 하나님 아버지...

이건 인간이 살 수 있는 날씨가 아닙니다..

저희에게, 바람을 보내주세요.....


정말 푹푹 찌는 더운 날씨였고 햇볕은 쨍쨍했으며 학교는 조용했고 거리는 한산했다. 아이들은 밖에 나오지도 못하고 책상 앞에만 있을텐데 무언가 제대로 할까 싶은,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녀석만 이기겠구나 싶은, 그런 날들이었다.


모두들 집이 시원할리는 없겠고 또 짧은 점심시간에 제대로 밥은 먹고 있을까 싶어 걱정스러운 멘트를 날려 보았다.


- 5. 날씨가 무척 더웠을텐데..

6. 다들 잘 지냈는지 궁금..걱정...ㅠㅠ

7. 점심은 제대로 먹었?????


거기에 어떤 녀석은 이렇게 답을 달았다.


- 5. 더워서 계속 에어컨 틀고 있네용;;

6. 다들 잘 지냈답니다앙

7. 점심에 고기 먹었습니다!!


더운 선풍기 바람과 컵라면을 먹고 있을까 걱정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깜짝 놀랐다. 힘든 아이들도 있을텐데 걱정하면서...


잠잠해지는 것 같았던 코로나가 크게 유행하면서 등교수업이 1주일 더 있었음에도 급하게 원격수업으로 전환되었다. 실제적인 방학식은 다음 주 금요일이지만 사실 저번 주 금요일에 아이들이 교실정리를 하고 기숙사를 나가면서 방학과 다름없이 조용한 학교가 되었다. 4단계가 되면서 3일의 재택근무가 배정되었는데 처음 하루를 재택근무하다가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아서 학교에 출장을 하는 식으로 출근을 하여 원격수업을 하고 있다.


작년에는 모두 처음 겪는 일들이라 당황하고 규모없이 진행되는 일들이 많았지만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올해는 어떤 일들이 닥쳐도 사실 사람들이 작년처럼 놀라지는 않는 것 같고 지혜롭게 잘 대처해 나가고 있다는 것도 다행이다.


아이들과 직접 얼굴을 보면서 한 학기를 정리했어야 했는데 노트북 너머로 아이들을 ‘흐릿하게’ 보니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는지도 모르겠고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 들리지 않고 무엇보다 카메라를 켰으면 좋겠는데...... 안타까움이 한가득이다. 그래도 늦게 들어오는 횟수도 줄었고 빠지는 녀석은 없다는 것도 다행이다.


이번 주에는 A선생님의 개인 사정으로 A학급의 임시 담임까지 맡게 되면서 쪼금 바빴다. 40분씩의 단축수업에 이것저것 진행하기로 한 학교행사까지 중간에 들어가 있어서 조회와 종례를 하면서 전달사항을 챙기는 것조차 힘들었다. 분명히 올해 2월까지 아무 무리없이 담임을 해 왔는데 5개월만에 다시 담임선생님 일을 맡게 되니, 세상에서 가장 바쁘고 힘든 일이 ‘담임선생님’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금 깨닫게 되는 며칠이었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올해 담임을 하게 된다면 여자 학급을 맡으려고 생각했었기 때문인지 A학급 아이들이 많이 예뻤고, 날씨 때문에 지쳐있던 나에게 또다른 새로운 열정이 ‘뿜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낀다. 확실히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 무아지경(無我之境) : 내가 없는 지경이라는 뜻으로 정신이 한 곳에 빠져 스스로를 잊어버리는 경지..

많은 것을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많은 것을 할 수 없었던, 어쩌면 무언가 멈춰 버린 듯한 계절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올해는 더 그런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 하기로 했던 방과후수업도 모두 원격으로 전환되었으니까.


한 달이지만 결코 길지 않은 여름방학, 물론 다음 주 금요일부터 시작이지만 아이들이 무언가에 정신이 빠져서 집중하는 시기였으면 좋겠다. 본인의 모습, 성적, 가정환경, 걱정, 근심....모든 짐을 내려놓고 무언가에 집중하다 보면 커다랗게 보이던 그 짐들이 어느새 가벼워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힘을 다해 집중했던 그 무언가는 생각지도 못한 빛을 내고 있을지도...


정신이 한 곳에 빠져 스스로를 잊어버리는 경지에 도달해 본다면 이 더위도 잊게 될 듯..


정신이 한 곳에 빠져 스스로를 잊어버리는 경지에 도달해 볼까요, 우리???


어디에 빠져 볼까요???

추천해 보시죠...


27기 아이들에 빠져서 나 스스로를 잊어버리고 살아온, 무아지경(無我之境)의 2021학년도 1학기가 끝나가고 있다.


- 온갖 농사에 빠져 계시는 L선생님께서 나에게 주셨던 모종들..

작은 통에 하나하나 담아 주신 정성에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상추, 케일, 쑥갓 등등이었는데 욕심껏 받았지만 잘 자라고 있지 못하다..아쉽게도...

작은 꽃 하나, 풀 하나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감성 풍부한 L선생님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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