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2021.08.28.토) *
발표하는 A를 위해 (나름 보이지 않게) 뒤에서 무릎을 세워 앉아 두 팔을 높이 들어 우산을 받쳐 주고 있는 사진. 내가 지금 무언가 잘못 보고 있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깜짝 놀랄 사진을 보게 되었다. 내 생각으로는, A나 주관 부서나 이 일이 이 정도로 이슈화가 될 것이라고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 같다. 어쩌면 무엇이 잘못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항상 해 왔던 일인데 뭐가??
사실 어떤 일을 진행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내가 저 사진에 있는 A와 다를 것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내가 맡은 일에 온통 신경을 쓰다 보면 다른 주변 일들은 놓치게 되니, 다른 사람들이 나머지 부분을 맡아 주어야 한다.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보아주었어야 하고 이것은 아니라고 말해 주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누군가는 저것은 아니라고 보았을 것이고 생각도 했겠지만, 어쩌면 차마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발전하지 못하는 팀의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학급에서 무언가 일이 있을 때 나는 나머지 아이들에게 말했었다.
- 너희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 있잖아. 왜 그것을 바라만 보고 있는거지.. 당사자는 그것을 모를 수 있어. 하지만 이 문제를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들이 있었을텐데.. 분명 한 명은 보았을텐데.. 왜 바라만 보고 있고 침묵하고 있는거지..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바라만 보고 있고 침묵하고 있는 대중, 너희가 더 나빠.
- 어리석은 엄석대(이문열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속 인물 – 학급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바꾸려는 ‘의지’가 있었어야지.. 반 아이들이 엄석대라는 괴물을 만들어 낸 거잖아.
아쉽게도 우리는 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 우리가 속한 모든 곳에는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암묵적인 불문율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콕 집어서 사실적으로 나열하기에는 낯부끄러운 어떤 관례가 있을 것이고 누구나 아무 말 없이 그 관례를 좇아간다.
무언가 불합리하게 생각되더라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데 그것을 굳이 ‘내가 먼저’ 말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다. ‘내가 말해서 바뀔 수 있는 일인지, 바뀌지도 않을 일을 내가 말해서 주목받을 필요가 있는지, 다른 사람들도 모르는 일은 아닐텐데.. 아직까지도 이것이 이대로 진행되는 것이라면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등등 수만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헤집고 다니지만, 어설픈 신참내기일 수록 그 생각을 차마 참지 못하고 이내 발설해 버리고 만다. 그리고는....후회하는 것이 일상적인 (아직도 여전히 신참내기 같은) 나의 사회생활이었다. 그리고 생각한다. 항상.
- 그 때 그냥 참았어야 했어..
- 왜 그 말을 한 거지..
- 괜히 말해서 분위기만 이상해졌잖아.. 어차피 바뀌지도 않는데...
그런데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이렇게 생각한다.
- 차라리 말하고 나중에 사과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 말하지 않아서 아쉽다고 후회하는 것 보다, 말하고 후회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개교한지 27년이 되어가는 우리 학교에 6분의 교장선생님이 계셨었고 이번 주에 7대 교장선생님이 취임하셨다. 처음 개교했던 어설픈 학교에 필요했던 일들과 청년기를 넘어가고 있는 지금의 학교에 필요한 일들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확실한 것들을 표방했던 개교 초기와 내실을 채워 넣어야 하는 지금은 지향점이 달라야 할 것 같은데, 밖에서의 요구는 이전보다 더 확실한 것을 원하고 그래서 표현이 더 세졌고 더 실질적이 되었다.
요즘의 MZ 세대와 더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고 안전하게 가는 직업관을 선호한다. (월급이 더 많은 것도 아닌) 부서장을 맡아서 직함 하나 다는 것보다, (월급이 조금 적더라도) 개인 시간을 침해받지 않는 것을 더 원한다. 누군가는 맡아야 되는 일이지만, 나와는 맞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 나의 오랜 철학이었고 지금도 유효한 생각이다. 그래서 지금의 이 시대에 어떤 기관의 ‘Chief – Leader - Pricipal – Headmaster’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각각 개별적인 개인의 생각을 하나로 모은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끔찍한’ 일이다. 왠만한 각오와 ‘소명의식’이 있지 않고서는, 굳이? 라는 생각을 할 만한 선택이다.
일반인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교사들의 방학이지만, 학교의 교장과 교감은 방학에도 학교에 계속 출근해야 한다. 또 학교의 온갖 일들에 모든 책임을 져야 하고 순간순간 큰 결정을 해야 하며, 학부모들의 온갖 민원을 몸으로 받아내는, 정말 힘든 일이다. 단순한 명예로 맡기에는 굉장히 큰 직책이다. 정말 굳이?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일이다.
정말 어떤 리더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계셨던 6분의 교장선생님과 그와 함께 했던 교감선생님들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와 개인적인 소견은 각각 다르지만, 분명하게 짚고 싶은 것은, 6분(12분) 모두, 개인의 욕심은 내려놓고, 그 때 그 시기에 맞는 결정과 선택을 위한, 수많은 고민으로 자기 시간을 할애했다는 것이며, 그로 인해 자기의 가족은 내팽겨쳐 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며, 그로 인해 칭찬보다 욕을 더 많이 받았다는 것이며, 그로 인해 온갖 억울한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며, 어떤 분은 직을 내려놓자마자 인연을 끊어버린 분도 계시다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이 직을 위해서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며, 때마다 남모를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나타난 현상과 이면의 여러 가지 감정적인 것들을 차치하고, 모두들 고생하셨고 수고하셨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안타까운 것은 본인의 젊음을 불태우고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부은 곳에서 마지막까지 존경과 감사를 한 몸에 받고 박수받으며 내려가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내내 속쓰리고 아쉽다.
6대 교장 선생님을 보내며, 7대 교장 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을 맞이하며 2021학년도 2학기를 시작한다. 새로운 리더들과 함께 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자기의 우산은 자기가 들 줄 알고, 아님 아예 비를 맞는 용기를 보일 줄 알고, 그리고 그게 더 멋있을 것이라는 지혜로운 판단도 할 줄 알고, ‘그것은 잘못되었습니다’라는 말을 아무런 개인적인 감정 없이 받아들일 줄 알고, 그런 말을 서로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해 줄 줄 아는 분위기를 만들 줄 알고, 중요하지 않은 일은 거를 줄 알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끝까지 사수할 줄 알고, 무엇보다도 교사를 향해 쏜 화살을 대신 받아낼 줄 알고 학교의 자존심은 끝까지 지켜낼 줄 알았으면...하는 마음이다.
내가 감동 받은 어떤 선생님의 기도문 마지막 부분이다.
- 우리의 가정과 동산과 안산과 민족과 열방 위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새로운 리더들의 새로운 시작에 이렇게 기도해 본다.
- 그 길에 몸과 마음이 합하는 동행자가 많기를
- 생각이 맞지 않더라도 쉽게 판단하지 말기를
- 걸림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잘 넘어가기를
- 어떤 순간에도 당황하지 말기를
- 여유 있게 걸어가기를
- 함께 하는 과정들에 생각과 열정이 넘치기를
- 출근하는 길이 즐겁기를
- 따뜻한 시선과 미소를 잃지 말기를..
- 환호받지 못하더라도 실패한 것이 아님을 기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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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d,
Give us grace to accept with serenity the things that cannot be changed,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that should be changed,
And the wisdom to distinguish the one from the other.
- Reinhold Niebuh
- 신이시여,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 라인홀트 니버(1892~1971, 미국 신학자)의 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