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파 20줄 (2021.09.11.토) *
대학교 때 동아리 2개를 들었었는데 1학년 때는 혼성합창단 이라는 곳에서 활동을 했었다. 정.말. 좋았다. 음대 학생이었던 나는 음대 이외의 활동에 더 관심이 많았고 다른 과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더 흥미를 가졌었다. 음악을 전공하면서도 합창을 특히 더 좋아해서 합창동아리에 들어가서 활동을 한 것이었는데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공강 시간마다 학생회관에 있는 동아리방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피아노 치면서 노래하고 놀았는데 나 또한 음악이 이토록 좋을 수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었다.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었는데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모두들 자기가 전공한 과보다 음악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었고 음악을 전공해도 될 정도의 전문가적인 실력과 식견이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는 것이다. 노래를 잘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작곡에 대한 관심도 많았으며 피아노를 잘 치는 것을 넘어서, 피아노를 가지고 온갖 전문적인 장난(?)을 하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그것도 남자들이 말이다. 나는 음대생이 아닌 일반 남자들이 그렇게 피아노를 잘 치는 것을 처음 보았었다. 시간마다 동아리방에 가면 항상 즐거웠고 재미있었고, 동아리 활동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거기에 모였던 사람들 대부분 그런 생각들이었다.
약대를 다니는 아주아주 예쁜 언니는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는데 피아노과를 가고 싶다고 했었고, 어떤 오빠는 농대를 다니는데 노래를 하고 싶다고 했으며, 원자핵공학과 어떤 오빠는 고등학교 때부터 피아노 반주와 편곡을 해 온 실력가였다. 나중에 보니, 유관순 기념관에서 했던 전국 고등학교 합창발표회에 나도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 학교 합창단과 함께 반주자로 참여했었는데, 그 오빠도 남자고등학교 반주자로 참여했던 것을 가지고 있던 팜플렛에서 발견해서 서로 놀라워했었다. 그 중에 수업도 빠지고 동아리방에서 내내 노래만 부르던 종교학과 어떤 오빠는 아예 가수로 데뷔까지 했으니, 정말 음악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로 넘치는 곳이었다. 졸업한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합창단의 모임은 계속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나는 2학년 때 종교 동아리로 갈아타면서 흐름이 바뀌기는 했지만 그 시절의 그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만약 음악을 ‘주업’으로 삼았다면 힘들 수 있었을 일들이, ‘부업’으로 삼았기에 더 즐겁고 황홀했던 기억이 아니었을까 싶다.
박사학위 논문을 받은 것들이 많이 있는데 어떤 학위논문은 냄비 받침으로 쓰고 있기도 하다. 적당하게 두툼한 받침이 없기 때문인데 책장에 장식용으로 꽂혀 있어서 펼쳐도 보지 않을 수 있는 공학박사 논문이 이렇게라도 가끔 펼쳐지고 있기도 하다는 것, 그래서 가끔 기억을 한다는 것을 K는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출근 시간은 1시간 20분 정도, 퇴근 시간은 1시간 40분 정도의 길을 다니려면, 운전을 엄청 좋아하는 나로서도, 직장과 집, 출근과 퇴근이라는 정형화 된 테두리를 벗어나야 매일 즐겁게 다닐 수 있다. 출퇴근길에 보이는 사람들 구경, 오늘따라 잘 맞아떨어지는 신호등, 다양한 차량 구경, 특히 요즘 부쩍 많아진 온갖 색상과 디자인의 수입차들, 깜박이의 ‘찰칵찰칵’ 시원한 소리, 조금씩 완성되어서 올라가고 있는 아파트들 등등 나름 즐기는 순간들이 있다.
그 중에 제일 기쁜 순간은, 텀블러에 내려온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잘 안열리는 커피 뚜껑을 낑낑거리며 열려고 애쓰고 있는데, 갑자기 ‘펑’하고 열릴 때이다. 내가 운전하고 오는 어느 지점에서 열리느냐에 따라 오늘은 커피를 다 마시고 학교에 도착할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가끔 정차하는 순간에만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운전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학교의 주차장이다. 학교에 출근을 하기는 하지만, 커피를 마시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 그래서 이 지점에서 권해 본다. 출퇴근 시간이 30분 안팎인 다른 선생님들에게, 학교를 벗어나서 좀 멀리에서 다녀보라고...아마도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면서, 몸과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다는 것을...
문서에 시간을 쏟지 않기로 다짐을 했으면서도 올해 내가 제일 많이 하고 있는 일은 문서를 작성하는 일이다. 힘든 일은 아니지만 색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새로 찾아온 즐거움은, 무채색 표에 다양한 색상을 채워서 컬러풀하게 만드는 일인데, 그 문서를 컬러 인쇄하여 쭉 훑어보는 일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원래의 문서 작성 의미는 그게 아니었지만 뭐 어떤가.. 활자보다 전체적인 컬러가 중요하고 그것이 나의 머리회전 속도를 빠르게 해 주고 있는데...
선생님들에게 다양한 문서를 보낼 일이 많은데 특히 일주일에 한번씩 하는 협의회를 위해서 협의회 파일과 함께 추천 음악을 함께 보낸다. 그런데 사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협의회 내용보다 추천 음악이라는 것이다. 클릭해서 듣지 않을 수도 있지만 추천 음악을 선곡하는 일과 그 링크를 보내는 일이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이다. 마치 추천 음악만 보내기에는 머쓱하니까 협의록을 함께 보내는 것 같은 마음인데 아실지 모르겠다.
켄 가이어의 ‘묵상하는 삶’에 나오는 글이다.
멕시코시티의 대형 시장 그늘진 한 구석에 ‘포타라모’라는 인디언 노인이 있었다. 노인 앞에는 양파 스무 줄이 걸려 있었다. 시카고에서 온 미국인 한 명이 다가와 물었다.
- 양파 한 줄에 얼마입니까
- 10센트라오.
- 두 줄에는 얼마입니까?
- 20센트라오.
- 세 줄에는요?
- 30센트라오.
- 별로 깎아 주시는 게 없군요. 25센트 어떻습니까?
- 안되오.
미국인이 물었다.
- 스무 줄을 다 사면 얼마입니까?
- 스무 줄 전부를 팔 수 없소.
- 왜 못 파신다는 겁니까? 양파 팔러 나오신 것 아닙니까?
그러자 인디언이 대답했다.
- 아니오. 나는 지금 인생을 살러 여기 나와 있는 거요.
나는 이 시장을 사랑한다오.
북적대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햇빛을 사랑하고,
흔들리는 종려나무를 사랑한다오.
지나가던 친구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
자기 아이들이며 농작물 얘기를 하는 것을 사랑한다오.
그것이 내 삶이오.
바로 그걸 위해 하루 종일 여기 앉아 양파 스무 줄을 파는 거요.
한 사람한테 몽땅 팔면 내 하루는 그걸로 끝이오.
사랑하는 내 삶을 잃어버리는 것이오.
그렇게는 할 수 없다오
양파 20줄을 파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팔기 위해 펼쳐지는 고단한 삶의 여정들, 그 과정들을 사랑한다는, 그것이 삶이고 인생이라는 노인의 말은 굉장히 감동적이다. 이렇게 삶을 꿰뚫어 보는 혜안이 필요한데...
원래의 목적과는 맞지 않을 수 있지만, 목적을 이루어가기 위한 과정 중에 있는 작고 작은 순간들에 아무도 모르게 자기만의 즐거움과 의미를 둔다면, 걸어가는 과정이 힘들고 지치고 때로는 손에서 놓고 싶더라도, 나도 모르는 새 원래의 목적이 이루어져 있을 수도 있다. 이루어져 가는 과정이 티가 나지 않더라도 말이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의 해결 자체보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났었던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 과정을 즐겼었던 어느 때가 떠오른다.
- 이번 주 ‘주말 편지-23’에서 아이들에게 썼던 메시지 중..
학교에 공부하러 왔지만
하루 내내 가장 기쁜 순간은, 급식 먹으러 가는 시간..
수업을 앞두고는 설레기는커녕 더 피곤하기만 하겠지만,
급식 시간을 앞두고는 두 눈이 말똥말똥해지지 않나요??
수업내용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지만,
입에 맞았던 급식 메뉴와 그때의 그 만족감과 기쁨을 기억한다면,
여러분의 고등학교 시절은 성공입니다~
그러니 우선, 무엇보다 밥은 절대 놓치지 말고 맛있게 먹기를요~~~
반찬이 무엇이든 말이죠....
그러다 가끔, 공부하면 됩니다~~~
그럼, 티나지 않게 무언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 언젠가의 급식 메뉴 중..
우리는 밥먹으러 학교에 오는 겁니당~~*^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