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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밭 Sep 06. 2023

영화 속의 나

저렴하게 다른 세상에 속해보다 우연히 마주한 '나'에 관한 이야기

어릴 적 생각했던 '나'는 늘 현실 속의 나여야 했다.

늘 몽상에 빠져 살면서도, 그 끝은 언제나 '이런 비현실에서 빨리 벗어나자. 정신 차리자. '였다.


직업을 가져야 했을 때, 내 마음속에서 무엇보다 우선한 것은 바로 그 '현실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말야.. 어디 그 현실을 좇는 삶이란 것이 이렇게 비현실적일 줄 누가 알았나..


그때는 노력이란 것이 나를 배신할 일은 영영 없을 것이고, 내가 오늘 흘린 피땀은 곧 내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내는 순도 높은 고급 잉크라 생각했다.


살다 보니 현실이 또 그렇게 비현실적이더라..

누가 그랬냐? 노력은 배신 안 한다고.. 암튼 카더라는 활자로 고급지게 쓰여 있어도 믿으면 안 된다.


노력에는 출발선이 달랐고,

인내에 대한 나의 투자는 그 인내 따위 필요하지 않은 이들을 멀찍이 서서 '바라보아야 하는 나' 이외에는 남는 게 없었다. 폭삭 망한 장사, 고점매수 저점손절이다.


신앙심이, 신에 대한 믿음과 신실함 만큼은 내게 인간적인 보상을 줄 줄 알았지만,

역시.. 신은 인간계에 존재하는 분은 아닌 터라 내가 바란 인간적이고 지극히 세상 이치에 부합하는 보상에는 관심을 보이시지 않으셨다.

가슴 치는 안타까움과 울분, 그 속에서 원망의 감정을 느꼈던 때도.. 그래, 솔직히 그런 때도 있었다.

나중에야.. 그러니까, 요즘에 와서야 '신앙을 무기로 현실적인 달콤함을 얻고자 하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불신자'라는 것 정도를 알게 되었다.' 어째 좀 돌아 돌아 알게 된 느낌이다.

그러니 이것도 '현실적'이라 믿었던 나의 모든 지향과는 또 맞지 않았던 게다.


이쯤 되니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비현실인지 아롱거린다.

머릿속은 혼란하고, '나'라는 존재가 과연 내가 생각하던 '나'인지도 의심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그런 거 없었는지도 모른다.


골인지점을 향해 달렸고, 그것밖에 관심 없었으며 그래야만 한다 하고 지내다 시나브로 다가와 나를 주저앉히는 무력감에 덧없이 발길을 돌렸다.


그래, 길을 잃었다.


요즘 누가 그러더라.. '누칼협?'

누가 나더러 그리 뛰라고, 그것만 바라보고 뛰라고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나..

생각해 보니 또 그것도 아니다.

억울하다. 하소연 없는 마른 갑갑함이다.


문득  봤던 영화를 돌려 보다 처음 보는 영화 같아 놀라고,  OTT 시리즈물 첫회 인물이 나중에 죽는지 사는지 정도는 하룻밤만에 알게 되고.. 또  재미없어도 꾹꾹 읽던 책들 던지고 손길 가는 책만 찾아 읽고, 유튜브 짧은 영상들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하염없이 보고 뭐 그러고 있더라..

발 디딜 곳 잊은 이에게 이만한 게 또 없다 싶어 입으로 '픽'하고 바람소리 한 번 내본다.


마음 한 구석 일종의 죄책감 같은 것이 들었다.

'한심하게 뭐 하고 있나.. 현실에는 언제 돌아올 텐가 친구?'


안 돌아갈랜다 그 현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무엇이 현실이고, 꼭 그래야만 한다 다그치는 삶을 이제 포기하려 한다.

정답이 없는데 답을 찾아왔고, 그래야만 하는 것이라는 것도 없는데 그래왔다.


남은 숨은 영화 속 '주윤발이 형님'도 되고, '톨스토이 형님'의 방탕했던 과거  삶 속 더 방탕한 배경인물도 되어보고, OTT 시리즈물 속 하늘 나는 고등학생도 되어보고 하다가 아침마다 죽겠다고, 당장 죽여달라고 아우성인 12년 된 케이 칠 타고 출근하는 이 모 씨도 '되어보는'데 쓸 참이다.


달리보고, 돌려보고, 느껴도 되는 것들에 맘도 열어보고 하며 '각각의 현실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현실적으로' 말이다.


야밤에 잠 안 자고 저렴하게 다른 세상에 속해보다 우연히 마주한 '나'에 관한 이야기 몇 자 적는다.

이제 잠들면 그 속 삶에 또 한 번 젖어보기로 하고.


선선한 기운에 돌아보니, 가을이네..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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