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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밭 Oct 15. 2023

스물

왜 이렇게 뭐가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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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1. 열의 두 배가 되는 수

2. (관념적으로) 스무 살, 성인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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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물'에 이런 대사가 있다.


"왜 이렇게 뭐가 없냐?"

극 중 경재(공부만 잘하는 스무 살, 강하늘 분)가 독백처럼 내뱉는 말이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이제 성인으로서 무언가 있을 줄 알았던 경재가 소주 한 잔을 쓰게 넘기며 한 그 말에 꽤나 울림이 있었다.  


'스물'이라는 단어는 숫자를 세라고 만들어진 단어일 텐데, 우리에겐 내포하는 의미가 남 다르다.

우리 사회에서는 관념적으로 '성인'이 된다는 의미이고, 그 성인이 된다는 의미는 이제 무언가 '할 수 있는' 때라는 의미를 갖는다. 

극 중 경재는 그럼에도 '뭐가 없는' 현실이 이상하기도, 낯설기도 했을 터다.


태엽을 감아 보았다.  스무 살이었던 그때로.

술, 담배 자유롭게 하게 된다는 것, 여자친구를 공개적으로 만나도 뭐라는 사람 없었다는 것, 강의실에 두문불출해도 부모님께 연락이 가거나 뭐라는 사람 없다는 것..

태엽 감아 도착한 그때의 나는 이전에 없던 자유로움에 싱글벙글이었다. 그저 몇 달.

오히려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날 것 상태로 집 밖을 나선, 뭐 그런 느낌에 오히려  공허했었던 것 같다. 

그 공허는 당장의 학비와 버스비, 그리고 취업 같은 먹고사는 문제에 기인했을 것이다. 

아니면 이루고 싶은 꿈에서 한 없이 멀리 떨어져 있는 나의 좌표였던 걸까.


다시 오늘의 나로 돌아와 주변을 휙 둘러보았다.

헛헛함에 왠지 무언가 진 것 같아 내 속 깊숙이 감춰둔 속내까지 살펴보았다.

진짜 뭐가 없으면 지는 거니까.  샅샅이.


마흔셋의 나, 다 뒤져봐도 '뭐 없다.'

사실 뭐가 있다는 것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 이제는..


새삼 주변 공기가 생경하기 그지없다.

오늘이 처음인 것 마냥 낯설다.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다를까? 

변화라는 것이 있긴 했을까?


벗들과 술잔을 기울일 기회가 있을 때면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난 아직 스무 살이야. 꼭 그렇게 느껴진다구.. 몸은 뭐 이리(어떻게?) 됐는데, 내 속에는 스무 살짜리가 살고 있다고.. 남이 나이를 물어야 그제야 내 나이가 떠오른다니까~"

아내는 "그래서 이모양인거구나~"하고, 벗들은 알 듯 말 듯한 미소 띠며 "뭔 개소리냐.." 한다.

그러면서 시작된 "야 그거 기억나냐?" 하는 옛날 얘기들로  술잔을 맛나게 비우곤 한다.


많은 일을 겪어내고 때로는 '살아내는' 힘겨움도 지났는데, 나는 왜 아직 스물일까..

내 자아가 버스시간 잘 못 맞춰 아직 버스정류장에 있어서, 자아라는 것이 성장하지 않아서 그런가 싶기도, 내가 지난 시간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난 아직 스물이다.

그때도 뭐 없었고, 지금도 뭐 없으니 그렇다.

이 글을 눈으로 따르고 있는 여러분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러하지 않은가 말이다.


스물은 아이와 어른의 경계다.


내가 정서적으로 아직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있다는 것의 의미는, 애초에 '어른'이라는 것이 관념적 표현일 뿐 실체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마치, "난 울지 않아. 어른이니까." 같은 웃픈 대사처럼말이다.

처음 하는 일과 처음 겪는 모든 것 그리고 아이 때도 무서웠던 모든 것들이 아직도 내심 무섭게 느껴지고, 특별히 당장 내일이 걱정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이 그 이유일테다. 

아니, 내일에 대한 두려움을 한결 더 크게 느끼게 된 것을 보면 오히려 스물만 못 한 것은 아닌지..


나는 오늘도 스무 살의 내 자아와 적당히 잘 타협하며 지낸다.


출근하기 싫어도 다리 질질 끌며 출근하고, 무서워도 내 등 뒤를 따르는 눈망울들이 있으므로 하나도 무섭지 않은 듯 헤쳐나가고, 때론 알아도 모르는 척 들려도 안 들리는 척 침 질질 흘리며.. 그렇게 적당히 타협하며 어른행세의 나날을 쌓아간다.


그러고 보니 고생은 참 많은 듯도 하다.


오늘, 내 스무 살 자아 토닥이며 맥주 한잔 기울여 볼까 한다.

뭐가 있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기도, 왜 아직 거기 스물에 머물고 있는지도 물어볼 참이다.


뭐, 이제 어른이니 술 한 잔 정도는 괜찮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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