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식물을 보며 느낀 존재의 가벼움과 작고 소중한 행복에 관하여..
내 사무실에는 내 반려식물인 다육이 아이들이 몇 있다.
지하에서 근무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동료에게서 분양받은 '청옥이'를 머그컵에 담아 기르기 시작한 것이 인연이 되어 근무지를 옮길게 되었을 때, 이제 본격적으로 한 번 길러봐야 되겠다 싶어 기르기 시작한 아이들이다.
이름 부르며 대화도 나누는 사이다 우리.
문인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의 시구처럼, 그 존재의 가벼움이 나에게 또 하나의 '의미'가 되리라 믿고 각자 개성에 맞는 이름을 지어 부르고 있다.
김춘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셋은 합쳐서 9,900원에(쎗뚜쎗뚜), 나머지 하나는 2만원에 2마트에서 입양해 왔다.
한눈에 그 예쁜 외모에 매료되어 바구니에 담긴 '도끼', '에로해', '피청옥'이와 고급스런 자태의 '그랬씨야'..
도끼는 토끼 닮은 선인장 다육이로, 처음엔 토끼였는데 가운데 이마에 귀가 하나 더 나서 도깨비가 되어가나 싶다..(우리 보스는 이 가운데 귀를 다르게 해석하기도 했다)
알로에를 닮은 데다 토실토실 살 오른 '에로해'..
시름시름하길래 3,000원짜리 영양제 꼽아주었더니 토실을 넘어 살이 틀 것만 같아 급히 제거해 주었다.
지난날 지하 사무실에서 키우던 '청옥이'가 근무지 옮긴 뒤 지상의 낯선 공기 때문인지 무지개 다리를 건넌 후, 새로 들인 이 친구를 '청옥2'라 이름 지었다가 날이 갈수록 '피사의 사탑'마냥 편향된 모습을 보이길래 '피청옥'으로 개명한 아이..
수려한 자태에, 처음 듣는 고급스런 종명 '크루시아'.. 그래서 장모님과 처가 이모님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 떠올라 '그랬씨야'가 된 아이..
오늘 내 사무실에 보스께서 방문하시어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차 한잔 나누고 있을 때, 문득 든 생각이 있어 "00장님, 얘네들은 왜 사는 걸까요? 그냥 보기에 좋으면 그뿐인 건지.. 아니면 얘들도 무언가 느끼며 살고 있는 것인지.. 가끔은 얘들은 보기에 좋으라고 있는 존재인 것 같아요.. 왜, 주님께서도 천지 창조하시고 '보기에 참 좋았더라'하셨다면서요?" 라고 말했더니, 보스께서 '갑자기? 왜? 뭔 소릴?'하는 표정으로 "뭐.. 창세기에도 그렇게 나와 있잖아요.."하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사무실에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아까의 생각과 대화를 알사탕처럼 계속 오물거렸다.
신의 눈으로 보면 인간은 반려로 키우는 다육이 같은 존재들이 아닐까?
'이 친구는 배도 볼록 나오고 둥글둥글 하니.. 그래, '감자밭'이라 부르는 게 좋겠군'하고 말이다. 내가 우리 다육이 친구들에게 그리 했던 것처럼 말이다.
일면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이 문제는,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전제에서는 크게 위화감 없는 진리다. 성서에도 그리 나와 있는 것이니..
어쩌면 '보기에 좋은'것이 우리 존재의 의미 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평생 모르고 살수도, 알아도 부정하느라 애먼 시간 허비하게 되는 화두가 아닐까 한다.
'보기에 좋다'라는 것이.. 우리 생의 이유라면, 뭐 더는 망설일 것도 없는 것 아닌가..
우리 생의 이유에 부합하게 나의 생기를 유지하고, 이파리 시들지 않게 영양분을 성실히 채워가면 그뿐 아닌가 말이다. 적어도 왜 사는가 하는 고민 하나는 덜어낸 셈이니까..
그리고 남는 시간에, 다행히도 우리에게 허락된 '사유의 능력'과 '자유의지'를 십 분 활용하여 나를 즐겁게 하고, 행복감을 북돋아 주는 일들에 집중하는 것이 어떨까?
더 사랑하고, 더 웃고, 더 즐거운 것에 집중하는 것 말이다.
내 첫 반려식물 '청옥이'가 지상의 햇빛을 못 이겨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처럼, 나에게도 시간이라는 것은 똑같이 한정적이다.
시인 안희연 님의 '21년작 '단어의 집'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중으로 날아오른 풍선은 터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날아오른 풍선은, 날아가는 시간만큼 다른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대기권에서 바라본 지상의 모습이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지는 오직 풍선만이 알고 있겠지. 다행히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있다.
날아오른 풍선은 언젠가는 터지게 마련이지만, 이 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다행히 아직 시간이 있으므로 이 생이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지를 느끼는 것에 집중해야 함이 맞다 싶다.
다육이와 다름없는 존재일지언정, 언젠가 터지고야 말 풍선의 운명을 타고난 나일지언정, 생의 시계가 멈출 때까지 온 힘 다해 이 생의 아름다움을 느껴보려 한다.
다육이 녀석들이 얼마 안 되는 화분 속 영양분이 주는 작은 즐거움을 놓치지 않고, 그들의 생생함을 유지하는 노력을 개을리 하지 않는 것처럼..
그래.. 고민 없이 그리 살아보자.
행복하기에도 빠듯한 생이니까...
//F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