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 봐야 알 수 있는 '소중한 것을 지켜내는' 방법
아내와 나는 2005년 5월 15일 스승의 날에 중학교 은사님의 주례로 결혼했다.
96년 겨울에 만나 9년간의 연애를 했고, 그 시간을 지내며 나는 아내와의 결혼은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 당연스레 생각했다.
결혼했을 때 내가 육군항공학교에 조종학생으로 있었기 때문에 주말부부 (조종사 교육을 받는 동안은 영내 생활을 해야했다) 였고 애틋한 마음에 만남 자체가 소중했다. 주말마다 아내와 알콩달콩 지내는 것이 낙이었다.
군대 생활이, 조종사 생활이 한 해 두해 쌓여가고 내 계급이 대위가 되었을 무렵 나에게는 일종의 직업병이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직업병 내지 몰이해가 조금씩 내 결혼생활에 문제를 만들고 있었다.
퇴근하면 바로 저녁식사를 할 수 있길 바랬고, 집안은 정돈이 잘 되어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어찌 생각만큼의 만족을 다 누릴 수 있겠는가..
이사가 잦다 보니 미쳐 풀지 못한 짐이 다음번 이사 때 그대로 다시 짐이 되어 실리는 경우도 있었고 씽크대에 쌓인 설거지가 눈에 띄어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퇴근 전 미리 전화를 했음에도 제 때 차려지지 않는 저녁 상도 마뜩잖았다.
아내에게 잔소리를 하기도 하고 속으로는 '나는 밖에서 죽을 둥 살 둥 고생하는데, 이 사람은 도대체 하루 종일 무얼 하는 걸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모처럼 쉬는 날이면 마치 군대 내무검사 마냥 트집 잡으며 '집안이 정리가 안되었네', '전업주부면 어느 정도는 해 주어야 하지 않나?', '도대체 밥은 왜 정해진 시간에 주지 않는 거야?' 하며 그 아까운 시간을 언쟁으로 소모해 버리기도 했다.
감정의 골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나는 아내를 이해 못했다. 아내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휴일, 집에서 쉬고 있었음에도 설거지도 돕지 않고 쓰레기도 안 버려주고 빈둥대며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하다 우연히 이런 문구를 보았다.
'당신의 손 위에 너무도 소중한 두부 한 모가 있다고 생각해 보라. 남에게 빼앗기기 싫어서, 완전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손을 꽉 쥐어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두부는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 글을 처음 접했을 때, '뭔 호랑말코 같은 소리람'하고 넘겼다. 며칠이나 지났을 즈음 부대에서 비행훈련을 마치고 밀린 보고서를 타이핑하다 문득 그 문구가 떠올랐다. 뭔가 조금씩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내가 그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퇴근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만히..
아내는 둘째 녀석과 곤히 잠이 들어 있었고, 집안은 아이 장난감이며 저녁 식사였을 아이 음식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그 모습이 언짢지가 않았다. 딱했다.
'내가 무슨 영화를 보려 이러고 사나.. 가족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귀가가 늦고 집에 와서는 아무것도 안 하는 남편, 아빠를 어찌 바라보고 있을까? 나에게는 잘못이 없을까? 나는 지금 바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날 이후 한동안 가만히 지켜보았다. 내 손위에 놓인 소중한 두부 한 모를.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 내 눈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내가 하루하루 살아내는 나날은.. 낯선 타지에서 친구 하나 없이 외로이 내 아이를 키우고, 늦게 퇴근한 남편은 집안일을 지적해대고, 어떤 날은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인다고 새벽까지 집에 오지도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보이기 시작한 아내의 나날이 뒤늦게 가슴 아팠다.
살아온 타성이 있어 얼마간의 연습이 필요했지만, 조금씩 노력했다.
잔소리라도 줄이고, 아내 말을 들어주는 시간이 조금씩 생겨났다.
아이들을 안아주고 볼에 뽀뽀해 주었다.
지금도 뭐 딱히 자상한 남편은 아니라고 나 스스로 생각하고 있지만 설거지라도, 음식물 쓰레기(음쓰), 생활쓰레기(생쓰) 버리기라도 하고 있다. 정리가 안되어 있는 것이 있으며 한 번씩 내가 먼저 치운다.
너무 늦었고 너무 무심했지만 조금씩 조금씩 아내에 대한 몰이해를 걷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사랑한다 말하고(사실 너무 많이 한다고 가끔 핀잔 듣는다), 안아주고, 들어주려 노력한다.
남편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이해해 주고, 무엇보다 지치지 않고 내 곁을 지켜 준 아내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키 작은 아내 곁에 다가가 손 뼘 재기하며 "한치 두치 세치 네치 뚜꾸빵~ 뚜꾸뚜꾸 빵빵" 노래하다 혼나고, 옆구리 살 집으며 "그래도 나중에 살 집은 있네 허허.."하다 또 혼나고.. 뽀뽀 자꾸 하다 혼나는 오늘의 일상이 내무검사나 해대던 그때의 '이 대위' 삶보다 즐겁다.
웹써핑하다 본 그 글을 누가 썼는지도, 그 글의 앞 뒤 맥락이 무엇이었는지도 지금의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이제와 다시 찾아보니 찾을 수도 없다. 하지만 내 삶에 던져 준 성찰의 기회에 감사하고 있다.
오늘, 내 소중한 두부 한 모 손에 올리고 조심히 아끼며 살아간다. //F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