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산온도(積算溫度)와 꽃 피우는 일의 상관 관계
“너는 언제 꽃을 피울래?”
언제인가 모셨던 지휘관과 사석에서 술잔을 기울이다 들었던 질문이다.
나는 그 말 뜻이 무엇인지 몰라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내 그분은 “너는 어느 계급쯤 해서 소신을 펼칠거냔말야.. 너, 꽃은 한 번 피면 지는 거 알지?” 너무나도 신선하고 다소 충격적인 질문이었다. 군인이, 아니 어느 조직에 있든 ‘소신’을 밝히기가 그토록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그 ‘소신’이라는 것을 밝히려면 일정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말도 되고, 어느 선 까지가 너의 ‘임계점’이냐는 말도 되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했다.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뭐.. 기왕이면 너 이제 그만해야 될 때가 온 거 같다 할 때까지, 가급적이면 가장 늦게 꽃을 피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장 높은 계급까지 갈 수 있다면 그때, 아니 꽃이 피면 져야 한다고 하니 늦게 꽃 피운다 하면 꽤 높은 계급이 될 것이다라는 의지 표시도 될 수 있겠다 싶어 이렇게 답하려다 번득 무언가 떠올라 좀 달리 답했다.
“그런데.. 다년생 식물은 매년 꽃이 피지 않습니까? 매년 꽃 피우고 싶습니다.”
기분 좋게 훈계 겸 인생선배로서 조언의 말씀을 전하려던 그분의 의도에 반했는지 그분은 마뜩지 않은 표정으로 “아니.. 그게 아니라..”하며 조곤조곤 조직의 위계와 그에 따른 처신,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정답’인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뭐가 그리 호기로왔는지 말이다..
책을 읽다 ‘적산온도(積算溫度)’라는 말을 보았다.
적산온도라는 것의 사전적 의미는 [작물의 생육에 필요한 열량으로, 생육 일수의 일 평균 기온을 적산(축적) 한 것]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일정 온도가 되지 않으면 꽃은 피지 않는다’라는 의미.
문송한 나와 같은 사람이나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으로는, ‘꽃이 피려면 온도를 저금해야 한다’ 정도로 풀어낼 수 있겠다.
그래.. 꽃이 피려면 ‘온도를 저금’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온도를 모아야 한다. 그래야 꽃이 핀다.
나의 내공이 부족해서, ‘저금’이 부족해서 꽃 한번 못 피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아쉽다거나 허무하다거나 하는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누구나 돌아보면 8할이 아쉬움이고 후회일 테니까’하고 생각도 해보고, 이리저리 이런저런 생각들을 알사탕처럼 오물거리며 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떠올랐다.
나는 예전 그 질문에 ‘다년생 식물’이라 답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꽃이라는 것이 꼭 계량화된 사회적 성공이라는 관념도 너무 진부한 것이 아닌가..
내가 아쉬워하고 ‘후회’라는 것을 굳이 해야 한다면 꽃을, 그러니까 ‘계량화된 꽃’을 피우지 못했음이 아니라 ‘어떤 꽃을 피울 것인가?’를 정하지 못한 점, 그리고 설령 올해 꽃이란 것을 피우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다음 해에 피우면 된다는 깨침이 없었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지향 없는 아쉬움과 후회에 매몰되어 있었다는 것이 본질이 아니었을까.
꽃을 피우지 못한 다년생 식물은 ‘온도를 저금하지 못해서’내지 ‘아직 봄이 오지 않아서’ 이니 봄이 오면 될 일이고, 아니면 ‘다년생’이라는 축복을 안고 태어났으니 내년에 꽃 피우면 그뿐이다. 애초부터 나는 꽃 한 번 피우고 스러져야 한다는 구태(舊態)를 인정 한 바 없으니 말이다.
일단은 기분 좋게, 기대감과 소망을 담아 ‘어떤 꽃’을 피울지부터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겠다.
매년 다른 꽃이 되어도 좋고, 시시각각 모양과 향내를 바꿔가는 기깔난 꽃을 피워도 좋겠다.
날이 춥다. 꽃샘추위인가 보다.
꽃샘이 꽃샘인 것은 ‘곧 꽃이 피니 샘이 나서 반짝 몰아치는 추위’ 여서가 아니던가.
//F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