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부적응자

힘없는 소시민의 행복 저장법과 작은 아쉬움

by 감자밭

이제 보니, 세상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주말, 아버지 생신이 있어 홍천 누나네에 다니러 갔었다.

코로나인지 중국발 우한독감인지 모를 역병 때문에 몇 해 동안 보지 못했던 아버지, 엄마, 그리고 식구들을 보니 한껏 기분이 좋았다. 뭐랄까.. 오랜만에 살아 있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행복의 기본 조건은 '인간(人間)', 사람과 사람의 관계다.


보고 싶던 이들과 만나면 그래서 행복하다. 그래서 식구들과 모처럼 함께한 그 밤 너무도 행복했다.

맛난 음식이 있어 행복했던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행복에 맛난 음식들이 가미되었다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고, 이 시간이 영원하길 바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도 했더랬다.

'꿈'처럼 행복이 흐르는 순간이었다.


식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 도란도란하다 또 식구들과 살 부비며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비좁음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눈을 떠 또 도란도란, 두런두런... 정신을 차려보니 돌아오는 차 안, 터널 속이었다.

까만 터널 속을 달리는 내 차 안에서 멀리 바라 보이는 터널 밖이 어쩌면 시공간을 가르는 얇은 막처럼 느껴졌다. 저 출구를 나가면 이 시간도 이제 '안녕'이겠지.. 그저 지나는 길인 그곳이 자못 낯설었다.

<저 끝은 이 시간과의 단절일까?>

터널 출구를 나와 식구들과의 행복의 시공간에서 일상의 시공간으로 돌아왔다. 그래, 돌아오고야 말았다.

돌아오니 또 이곳은, 이 시간은 익숙함이며 일상이다. 멀지 않은 어제의 그 시간이 또 과거가 되었고, 그리움이 한층 또 생겨났다.


이미 흘러간 시간을 그리워하는 나는 어쩌면 '시간 부적응자'다.


영영 적응이란 것을 할 수 있을지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시간의 흐름에 아쉬워하거나 그리워하는 것을 멈춰 본 일이 없으므로.

과연 죽음이라는 계절을 맞이하게 될 그때에도 나는 시간이라는 존재에 적응을 할 수 있을지 영 자신이 없다. 아니, 그런 일은 없을게다.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고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일이 내게는 영 어려운 일이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또 덤덤히 지내는 이들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닌 날들'을 살던 언젠가의 나도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바쁘다는 핑계로 꿈처럼 흐르던 그 시간과 느낌들을 그야말로 덧없이 흘려보냈었다.


그래, 비록 나는 시간부적응자지만, 치열하고 가열차게 그리워한들 지나간 시간들이 돌아올리 만무하지만..

그리워하는 행위에라도 진심으로 매달려 보아야겠다. 지난 시간을 더 열심히 추억해야겠다.


잠자리를 준비하며 엄마의 거칠어진 손, 아버지의 강퍅(剛愎)하고 고집스러운 주름들 사이에 아련히 피어나던 수줍은 미소, 식구들의 경계심 1도 없는 미소들을 추억했다.


시간부적응자는 오늘도 지난 시간을 추억함에 열심히다.

아쉽게도 그뿐이다.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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