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有終)

내게 찾아온 ‘그것들’의 의미

by 감자밭

아침나절, 하루의 시작을 위해 걷고 있자니 빗 방울이 투둑 투둑 들고 있는 우산 밑으로 떨어져 뒹군다.


우기(雨期)가 되었으니까..

한 해의 중반쯤 찾아오는 그 시절이니까 싶었다.

몇 걸음 가니 또 드는 생각은, ‘우기’라는 말은 참 재미없고 건조하다. 비 오는 철을 말하는 그 낱말이 건조하고 맛이 없다.


시절을 단어로 떠올리니 참 재미없어 주변을 둘러보니 빗소리는 투둑 투둑, 빗방울에 튕겨진 흙 내음은 쿰쿰 달달하다.

그 흙 내음을 정확히 느끼고 싶어 실타래를 엮다 보니 문득 그 흙에 언어를 주어 ‘너의 냄새를 소상히 말해보라 ‘ 청하고 싶어졌다. 코 끝으로 느끼는 그 스산한 상쾌함을 뭐라 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궁리하다 그냥 그리 느끼기로 했다. 말로는 못해도 내 코는 아는 축축하지만 아늑한 그 느낌 그대로.


비가 올 때마다 매번 느끼지만 누구 말대로 ‘인생은 지우개 달린 연필’인 관계로 비를 맞을 때면 매번 새롭다. 신의 은총인 건가.. 아님 멍청함의 반대급부인가..


우린 무언가 눈에 담을 때면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게 있다. 이 모든 것이 유한하다는 것. 그래서 다 담아보려 하고 한 번이라도 더 느껴보려 한다.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이런 생각을 해 본 일 없는 사람도 그저 느낌을 아는 것이리라..


오늘의 이 스산한 청량감이, 흙이 빗발에 튕길 때 느껴지는 그 무엇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인생의 유한함의 바탕에 서 있기에 더욱더 내게 유의미한 것이라 여기며 터덜터덜 일터 사무실에 들어와 앉았다.


때 되면 스러지는 연기(煙氣)가 아닌 생이 어디 있겠는가..

또, 머릿속 지우개로 영영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기야 하겠는가.. 그래서 언젠가 보았고, 느꼈던 비 오는 아침 풍경이 또 새롭다.


유종(有終), 시작된 것은 끝이 있다는 낱말을 곱씹어 본다. 내가 아닌 시간이 주인인 세상에 살고 있는 지구별에 속한 그다지 유의미할 것 없는 한 개체로서, 끝이 있으니 더 담고 싶고, 담아봐야 이내 지워지니 또 새로운 이 아침의 역설이 감사하다.


내일은 또 내일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또 피부로, 언어와 낱말들로 세상을 담고 있겠지.. 그리 하루하루 살아간다. 언제일지 모를 그 끝이 유종(有終)의 미가 되길 바라면서.. 그 바람이 또 뭔 의미가 있겠냐마는, 암튼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겠지..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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