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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 중 일탈 2 - 한라산 등반

-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추억하며...

by 해야블라썸 Oct 23. 2022

✔12일차 : 한라산 등반(성판악 코스), 찜질방(가산토방-현재는 한옥호텔로 운영중)

✔13일차 : 찜질방(가산토방)


차알칵! 찰칵!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캄캄한 곳에서 셔터를 눌러도 플래시가 터지지 않던 카메라를 기억한다. 제주도를 다녀오신 아버지가 기념으로 사 오신 장난감 카메라. 한쪽 눈을 감고서, 다른 한쪽 눈으로 조그만 렌즈를 바라보며 찰칵찰칵 셔터를 누르면, 제주 명소의 풍경이 카메라로 찍힌 듯 사진으로 보였다. 찰칵 소리가 재밌어 또 한 번 셔터를 누르면 또 다른 풍경의 사진이 찰~칵 나타났다. 찰칵찰칵 거릴 때마다 하나씩 보이던 제주 풍경들. 그 풍경들 속에서 보았던 푸른 풀밭 움푹한 곳에 고인 윤슬이 빛나던 백록담. 그 백록담을 품은  한라산.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임을 알면서도, 그 높이를 가히 가늠할 수는 없어서, 언젠가 한 번은 꼭 올라보고 싶었다


그 마음이 여행 중 한라산과 접근성이 좋은 지역에 머무르게 되니 다시 떠올랐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시청률 50% 찍을 만큼 인기 있던 드라마가 그 마음에 윤활유가 되었다. 지금은 유명하지만 파릇파릇 신인 배우였던 현빈과 "낯선 여자에게서 그의 향기를 느꼈다."라는 감각적인 카피의 화장품 CF로 이미 스타 반열에 올라 있던 김선아가 주연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대학 졸업이나 취업을 하고 나면 그다음은 자연스레 결혼의 단계를 밟는 게 지극히 정상처럼 보이던 그 시절. 그 시절의 분위기에 이 드라마는 노처녀를 신데렐라로 등극시킨 로맨스 판타지랄까? 그때는 서른이 넘은 처녀를 노처녀(요즘의 젊은 여성들에게는 낯선 단어일 수도 있겠다.)라 부르고, 지금은 얼핏 데이트 폭력으로 비칠 수도 있는 까칠하고도 차갑고 거친 나쁜 남자의 행동이 매력적으로 보이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연하 남자와의 연애는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21세기가 된 지 불과 몇 년 안 된 시점(2005년).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X세대의 미혼 여성들이 결혼보다는 일에 몰두하는 경우도 늘어나서, 처녀 반 노처녀 반일만큼 서른 넘은 미혼 여성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던 시절이었다. 직장만 가도, 대학 동기를 만나도, 교회를 가도 나처럼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결혼할 생각조차 없는 처녀들이 많았으니 서른 넘었다고 노처녀 소리를 듣는 건 좀 억울한 느낌이 들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28,9세에 결혼한 친구들은 방학 때마다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는 나를 보며 청춘을 즐길 시절이 너무 짧았다고, 너무 일찍 결혼한 것 같다며 후회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 시절에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는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이전의 로코물은 주로 현대판 신데렐라와 같은 이야기로 노처녀와 까칠 연하남을 주인공으로 하는 로맨스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 때문에 연애나 결혼에 관심 없던 노처녀들마저도 박력 있는 연하남과의 달콤한 연애를 꿈꾸는 희망을 주었던 드라마랄까?  아마, 나이 서른 넘은 미혼 여성들은 모두 스스로가 김삼순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이 드라마 이후로 인지도가 낮았던 현빈은 전국에서 삼식이라 불리며 일약 스타가 되었다.)


그런 착각으로 살던 노처녀들에게 여주인공의 한라산 등반 장면은 잊지 못할 버킷리스트의 한 줄이 되기도 했다. 여주인공(김선아)이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비 내리는 한라산을 파란 우의를 착용하고서 겁도 없이 오르는 장면(실제 그 촬영 후 여주는 실신하여 그다음 장면을 촬영 못하고 바로 서울로 가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해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녀를 뒤쫓아 까칠 연하남이 제주도 한라산까지 따라오게 만들었던 그 장면. 한라산 배경의 그 장면은 가슴 타는 시청자들에게 뭔가 새로운 시작을 하려면 꼭 한라산을 올라야만 할 것 같은 묘한 의무감을 주었다.


그 드라마는 7월 중순에 종방 했고, 때마침 8월의 첫날을 맞이하는 나는 한라산에 쉽게 이를 수 있는 제주도 서귀포에 있었다. 어릴 적 버킷리스트와 묘한 의무감이 만나서 그렇게 한라산 등반은 제주 여행 중에 피해 갈 수 없는 행선지가 되어버렸다. 그 시절 나의 본캐와 닮아있던 삼순이도 올랐으니, 나도 오를 수 있으리라 착각하면서...


나는 등산을 시작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되는 시간에 한라산에 도착했다. 날씨는 좋았지만, 한라산 자락에 도착하니 해안가 지역과는 다른 날씨에 당혹스러웠다. 등산 전 휴게소(현재는 성판악 코스 입구에 매점이 없음)에 들르니 커다란 30리터 등산 가방을 메고 있지만, 정작 등산을 위한 준비물은 아무것도 없이 산에 오르겠다는 두 여인의 대책 없음(등산 좀 하시는 분들은 우리가 도착한 8시 조금 넘은 시간보다 훨씬 더 일찍 도착해서 벌써 등산을 시작한 상태였다.)에 주인아저씨는 황당해하시며 걱정스레 준비물을 알려주셨다. 일단, 우의를 준비할 것! (아! 삼순이가 그냥 비가 와서 입은 게 아니었구나. 그때 깨달았다.) 어느 정도의 여행으로 뻔치가 늘어서 아저씨의 잔소리를 따라 최대한 몸은 가볍도록 우리가 메고 온 등산 가방은 휴게소에 맡기고, 산을 오를 때 필요한 물, 오이, 김밥을 구매하고, 카메라를 챙겼다.

 

(왼) 출발할 때의 한라산 모습,  (중) 점차 하늘이 맑아지는 중, (오) 휴게소 사장님의 말씀따라 완전무장하여 등산중인 나.

처음에는 삼순이와 같은 복장이 된다는 게 신이 나서 우의를 입었는 데, 막상 산 쪽으로 방향을 틀고 보니 비 오는 날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완전히 해가 중천에 뜬 것이 아닌 상태의 아침 한라산은 산만 보면 마치 비가 오는 듯했다. 안개가 자욱하니 산의 신선한 초록은 잘 보이지도 않았고 걷다 보면 나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비인지, 이슬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어느 정도 올랐을까? 그래도 오르다 보니 태양과 안개의 싸움에서 태양이 이긴 듯, 안개는 걷히고 투명한 빛살만 남아 선명하고 상큼한 느낌의 초록이 나에게 스며든다. 햇살 속 초록은 분명 한라산의 기운을 나에게 전달하는 전령이라도 된 듯이 그렇게 산의 기운을 흡수하며 걷다 보면 성판악 코스의 중간지점이라고 하는 진달래 대피소에 이르게 된다. 이 당시에는 이 지점에 정해진 시간(낮 12시)까지 오르지 못하면 하산의 안전을 이유로 입산 금지시켰다.


진달래 대피소는 말 그대로 대피소였다. 내려가는 중이든 올라가는 중이든 간에 여기에 도착한 이들은 모두가 조금은 긴 휴식시간 혹은 점심시간을 갖는다. 정말 아침 9시부터 올랐는 데, 여기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다 될 정도였고, 등산코스 중 여기가 유일한 휴게소여서, 산길 오르는 내내 참아왔던 급한 볼 일도 보고, 자리를 찾아 출발할 때 샀던 김밥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특히, 컵라면(지금은 안 파는 듯함) 팔았는 데, 산행 중에 먹는 뜨끈뜨끈한 라면은 산의 찬 기운을 몰아내고, 라면 국물은 내 몸속에 서서히 스며들어 단시간 내 축적된 피로를 살짝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


해발 1800미터. 아직도 정상은 보이지 않았지만, 삼순이가 괴로워했던 계단이 보이기 시작했다. 괴로워했던 그 표정은 삼순이의 연기가 아닌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150미터 더 높이 올라가야 하는 데, 계단을 보니 아찔했다. 성산일출봉에서 이미 단련됐으리라 생각했는 데, 그 힘듦을 알기에 더 두려웠을 수도 있으려나? 그래도, 여기서부터 보는 풍경은 내가 신선이라도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장관이었다. 산허리쯤에 둘러싸인 구름이 내 발밑에 있게 된 것이다. 내가 신선이 됐다고 생각하면 계단의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졌다.


(좌, 중) 해발 1900미터쯤,   (우) 친절한 아저씨께서 찍어주신 사진

정상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 고된 산행을 기념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이 당시만 해도 휴대폰보다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던 시절이라 나보다 더 나이가 많으시던 어른들은 셀카의 세계를 잘 모르셨다. 우리도 이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서 카메라를 만지작 거리고 있자니, 맘 좋은 아저씨가 둘이 와서 둘 사진 찍어가기 힘들다면서 부탁도 안 했는 데 사진을 찍어주신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도 자기 부부 사진을 많이 찍어주셨다고 하시면서. 셀카를 찍을 예정이었지만, 아저씨의 그 마음이 참으로 예쁘고 고마워서 우리도 얼결에 카메라를 맡기고 사진을 찍었다.


(왼) 울타리 너머 백록담이 보인다,              (중) 한라산 등정 기념 포토존,           (우) 각자 손에 오이를 들고서 정상을 맛보다.

그렇게 선한 마음을 하나 또 배우며 우리는 한라산 정상 백록담에 도착했다. 그 해는 가물었던지 백록담에 물은 고여있지 않았지만 초록의 초원도 나쁘지는 않았다. 살면서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 본 적이 없던 나에게는 백록담의 밑바닥을 볼 수 있다는 것마저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구름과 같은 높이에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가깝게 느껴지는 하늘과 정상 등정이라는 기쁨이 묘하게 어우러져 등린이로서 아침부터 산을 올랐던 고단함은 휴게소 사장님의 잔소리로 준비했던 오이로 말끔히 잊혔다. 여행 초기 잘못 준비한 신발로 고장 났던 발을 고치기 위해 여행 중 새로 산 운동화. 이것으로 더 이상 상처 없이 한라산 정복까지 하게 해 준 것이 고마워서 운동화를 벗어 들고 만세를 불러보기도 했다. 듀스의 <여름 안에서>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 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 있어. 그리고, 내 옆에는 니가 있어~  

   환한 미소와 함께 서있는~  그래 너는 푸른 바다야 ~ "


기분이 마냥 좋아서 더 머물고 싶었지만, 일정 시간(오후 2시인가 2:30분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이 되니 하산하라며 안전 요원(?) 같으신 분이 사람들을 내려보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고생하고 올라와서도 내려가는 데는 또 얼마나 걸릴지 감이 없던 우리는 쫓겨나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상에 더 머물지 못하게 함이 못내 서운했다. 근데, 정말 말 듣기를 잘했다. 내려오는 길에는 그 짱짱하던 해도 어느덧 기운을 잃어가는 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진달래대피소에서 마주쳤던 많은 사람들. 그리고, 정상에서 봤던 많은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내려오는 길에는 친구와도 속도가 맞지 않아 나 혼자가 되었다. 앞서 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고, 뒤따라 오는 사람도 없어 약간은 두려웠다. 하지만, 더 두려운 것은 인적 없는 산속 어딘가에 혼자 있다는 물리적 상황이 아니라, 한 걸음씩 발자국을 디딜 때마다 밀려드는 외로움, 즉 심리적 상황이었다. 결국, 한 발자국 전진하기 위해 내딛는 나의 발걸음은 한라산 등반을 종결짓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내 안의 싸움을 종결짓기 위한 전진 일보였다. 두려움이 더 커질 때면 나와 함께 걷고 있는 그림자에게 위로를 받으면서...


이렇게, 해가 떠 있던 시간의 하루를 산에서 거의 보내고 하산(하산했을 시 6시 쫌 되었던 걸로 기억된다.)했다. 당일에는 알 수 없었던 등린이의 등산 고통은 그다음 날이야 돼서야 찾아왔다. 그것도 아주 서서히, 그러나 아주 지독하게... 다리의 고통 때문에 그 후 이틀을 뻗어서 우리는 걸을 수가 없었다. 


등산을 마친 후 겨우 찾은 곳은 일반 숙소가 아닌 한라산 자락에서 가장 가까운 찜질방이었다. 등산 당일은 다리의 고통을 몰랐기에 하룻밤만 잘 계획이었지만, 그 하루는 하루를 더 낳아서 결국 이틀 밤을 찜질방에서 보내게 되는 생각지도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그로 인해, 제주 여행 최초로 불친절한 서비스를 받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내 발아래 구름 있는 곳까지 데려다준 한라산의 광경과 기분은 잊지 못하여 지금도 여전히 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하는 제주여행 코스이다. 한라산은 가봐야 되지 않겠냐고... 한라산을 가보지 않았으면 제주도를 다녀왔다고 말하지 말라고... 한라산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섬이 제주도이니까... 한라산이 없었다면 제주도도 없었을지도 모르니까...


검색해보니, 당시에는 찜질방이었던 가산토방은 현재는 한옥호텔로서 운영되고 있다. 그 당시로서는 별채로 운영되는 펜션이 있었고, 그와 겸하여 찜질방도 운영 중이었다. 그런 찜질방에서 이틀 밤을 자고 식당밥을 먹으니, 일하던 직원 분이 우리가 고객임에도 눈치를 많이 주셨다. 우리의 사정을 모른 채 젊은 사람들이 뭐한다고 이틀을 찜질방에서 먹고 놀기만 하냐고... 나이 서른 넘어 가출한 비행 청소년처럼 보이는 영광(?)을 떠안으면서... 그런, 직원의 무례함을 아시게 된 사장님께서 우리들을 그냥 보내지 않으시고 따뜻한 친절(?)로 이틀 동안 눈칫밥 먹었던 서러움을 풀어주셨던 일도 있었다.


정말 여행이란 매일 즐거운 일만 있는 것도 아니지만, 험난한 일을 겪어도 즐거운 것은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홍반장과 같은 따뜻한 사람들도 만나기 때문이리라. 여태껏 내가 걸어왔던 제주도 여행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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