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7 댓글 5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올레 7코스로 올래 말래?

- 이렇게 이쁘게 차려진 길을 걸을 수 있어서 행복했던 날

by 해야블라썸 Nov 07. 2022
아래로

✔15일차: 가산토방 ~ 천지연폭포 ~ 외돌개 ~ 돔베낭길 주차장


한라산 등반 후유증으로 이틀(13일차, 14일차)을 꼼짝달싹 못한 채, 찜질방 내에서만 생활했던 우리는 산자락에서 걸어내려와 서귀포시 천지연 폭포가 있는 곳에서 다시 코스를 이어가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길은 다시 우리를 한적한 공원과 같은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해안 산책로가 어찌 이렇게 잘 다듬어진 것인지, 마치 한라산 등반으로 고장 날 대로 고장 난 우리의 저질 체력을 배려한 듯한 길이었다. 일단, 내가 걷고 싶은 대로 이쁘게 차려진 길을 걸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게다가 좋아하는 바다를 조용히 차분하게 한껏 바라볼 수 있는 자유. 그 걸 누릴 수 있어서 나는 너무 행복했다고 싸이월드에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검색해보니, 올레길 7코스로 다듬어져 있다.


이 산책로를 걸으면, 외돌개라는 작은 바위섬부터 해서, 문섬, 새섬, 멀리는 범섬까지 볼 수 있다. 멋진 풍경 속에 뼈아픈 역사로 생채기 난 황우지 해안동굴(일본군 진지 땅굴로 일본이 미군에 항전하기 위해서 1945년 제주도민을 동원하여 만든 인공 땅굴)을 볼 때면, 힘없던 나라 때문에 저 땅굴을 위해서 고생했을 우리 민족 사람들이 떠올라 가슴 아프기도 하여 은근 애국자가 되기도 한다.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좌, 우) 문섬, (중) 새섬
섬을 보면 왜 애틋한 정이 생기는지 난 말할 수 없다.
본능적인 이끌림... 분명, 섬은 날 끌어당긴다...
 저 바다 물속 길을 찾아 꼭 닿아야만 할 목표지라도 되는 냥,
꼭 이르고 닿아서 한 번은 꼭 지친 친구의 어깨를 토닥이듯 톡톡 토닥거려줘야 할 듯한 대상..
섬은 그렇게 나에게 애절하다.

이중섭 화백의 그림에서 보았던 섶섬은 아니지만,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였을까? 이 코스를 걸으며 보게 되는 새섬과 문섬은 화백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처럼 나에게도 아스라이 가물가물한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처럼 느껴졌다. 해안 산책로에서 섬까지 윤슬로 이어지던 반짝거림은 바다가 내게 한없이 다정하게 건네는 말과도 같았다. 다정한 그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면서도 이해하려고 자꾸만 자꾸만 바다를 향해 내 몸을 내밀어 보았다. 끝내 알아듣지 못했어도 결국 다정한 말이었을 거라고 혼자 상상하면서 바다를 보며 빙그레 웃기도 했다.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이 길 이전의 해안 산책로도 상당히 멋졌지만, 이 구간의 산책로는 상당히 길게 나무데크 길로 이어져 있었다. 멋진 수형의 나무들이 많아서 나무의 생김새를 보면서 무더위의 정점에 걸려있던 태양에 대한 원망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제주도를 걸으며 야자수를 많이 봤었지만, 이 길에서 만난 야자수만큼 키 큰 야자수는 처음이었고, 간간히 그늘이 되어주던 해송도 야자수에 지지 않을 듯 늘씬하게 쭈욱 뻗어있었다.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이런 멋진 구간에 걷는 사람이 없음이 신기했을 뿐이었다. 아마도, 더운 여름날 한낮이라 그랬을 수도 있겠다. 사람은 마주치지 않고, 나무와 바다만이 벗이 되어 주던 길. 산림욕이나 진배없었다. 나무가 주는 푸르름과 바다가 주는 푸르름. 푸른색이 다정하게 내 몸을 감싸서, 그동안 육지에서 지치고 시달려서 벌겋게 달아올라있던 마음들을 차분하게 가라앉도록 붉은 기운을 몰아내 주었다. 복장이 뒤집히고, 성이 나서 벌겋게 불타 오르던 마음을 나무의 푸르름과 바다의 푸르름이 푸르른 물이 되어 하나씩 하나씩 불씨를 꺼주는 느낌이었다.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이 여행 기념으로 산책길 주차장 입구 기념품 코너에서 친구와 나는 제주도 지도가 그려진 빨간 손수건을 샀다. 지도에서 우리가 있는 곳을 짚어보며 제주도 반 이상을 걸어왔음에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한 발자국으로는 언제 이 여행이 끝날 지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어느새 그 작은 발자국들이 모여서 섬의 반 이상을 돌아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내 줄 공항 방향으로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는 둘 다 조금씩 여행에 지쳐가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고 보채지는 않았다. 오히려, 남은 그 길 끝에는 또 어떤 일이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몸은 날이 갈수록 고되었지만 마음만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기에 오히려 나이 들어서도 한번 더 오자고 덜컥 약속해 버렸다. 이제는 늙어가는 몸뚱이로 1킬로도 걷기 힘든데 말이다.


해안 산책로가 끝나고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 산책로 하나 걸은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라고 서둘러 쉬어갈 숙소를 찾아 저녁을 맞았다.

 





 

이전 11화 도보여행 중 일탈 2 - 한라산 등반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