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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딨어?

- 일단은 찔러보자, 안 되면 말고...의 정신이 사노라면 필요하다.

by 해야블라썸 Nov 08. 2022

✔16일차 :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  ~ 세계 성 문화박물관 ~ 아프리카 박물관(중문단지)


내가 제주에 살고 있지 않다 보니, 제주도의 행정구역을 내가 도보 여행했던 당시(2005년)의 기준으로만 알고 있었는 데, 지금 보니, 내가 도보 여행했던 그다음 해에 개편되었다. 그 이후에도 제주도를 종종 여행했었지만, 행정구역이 변화된 걸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것은 내가 도보 여행했던 그 당시의 시와 군의 수준이 물가면이나, 도시화 정도면에서 현격히 차이 나게 보였기 때문인 듯하다.(내가 도보 여행했을 당시, 행정구역은 1981년에 개편된 모습, 즉 지도에서 왼쪽 아래편에 있는 모습이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2005년 기준으로 보면, 제주시와 북제주군에서의 하룻밤 숙소 비용이 달랐던 것처럼, 확실히 남제주군에서 서귀포시로 들어섰을 때 가장 크게 느끼게 되는 차이도 방값이었다. 서귀포 시라서, 군 단위의 해안가를 걸을 때는 보기 힘들었던 식당가나 마트들을 더 많이 이용할 수 있어 좋기도 했지만, 확실히 돈 나갈 일이 많았다. 그러니, 자연스레 경비를 아끼고 싶은 마음에 자꾸 가격을 협상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 그 시작이 이 날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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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는 2002 월드컵 경기가 끝난 지 몇 년 지난 시점이라, 월드컵 경기장이 축구만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박물관으로 워터파크 등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2002 월드컵이 개최된 그 경기장을 각종 사진과 함께 잘 기록 전시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storium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현대 미술 감상과 미흡하기는 하나 근현대사를 재현한 박물관 형태의 전시도 있었다. 요즘은 흔한 체험거리지만 이 당시만 해도 이런 체험이 흔치 않아 서른 넘은 처자에게도 재밌는 것이었다. 어릴 적 추억을 곱씹으며 둘러보게 되는 전시는 내가 어리지 않음을 팩트 폭격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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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나 어디든 구경을 하려면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매해야 했다. 그 입장권을 사려고 매표소를 잘 살펴보다 보면 늘 도민 할인이 눈에 띄었다. 보름 정도 제주도에 머물다 보니, 내 마음은 이미 제주도민이 된 듯한데, 어디든 들어가려고 하면 이방인 취급받는 게 왠지 서러웠다. 그 서러움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입장료 때문이었다. 한두 군데 구경하는 것이면 모르지만, 하루에도 몇 군데씩 입장료를 내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을 생각하니, 그 경비가 보통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정말 티끌모아 태산이 된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던 나날들이었다.


이 날도 아침부터 월드컵 경기장에 꾸며놓은 몇 곳을 구경하고자 입장료를 내고 시작해야만 했다. 매표소 앞에 친절하게 설명된 도민 할인을 열심히 눈으로 읽으면서 말이다. 그러다 결국,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까지는 못 박듯이 책정되어 있는 입장료를 깎는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 해봤는 데, 이 날따라 뭔가 잘 못 먹은 것인지 입장료를 깎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뭔가에 홀린 듯, 안 되면 말고의 생각이 내 머리를 1000% 지배했다. 설령, 안 된다 하더라도 사실 나는 아무런 손해 볼 것이 없었다. 만약 된다면, 나로서는 이득이었다.


그랬다. 세상에는 정말 안 되는 것이 없었다. 커다란 배낭을 보여주며, 우리의 사정을 여차저차 설명하여 이러저러한 여행자인데, 우리도 도민 할인을 한번 받아보고 싶다, 그렇게 안 되겠냐고 물으면 정에 약한 직원이 알아서 그렇게 처리해주기도 했고, 조금 서열이 낮은 편이라 혼자 결정하기 힘든 직원은 윗사람에게 물어서라도 이 일을 해결해주려 했다. 그렇게 제주도민이 되기도 했고, 되지 않기도 했다.


이때 생겨버린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딨어."의 정신은 세상 소심하여 원리원칙대로만 살던 나를 조금 더 용감해지도록 변화시켰다. 특히, 요즘도 힘든 상황에 이를 때면, 희망을 품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도전하게 만들기도 한다.



한 번은 휴일 저녁에 세 살짜리 아이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휴일 문 여는 병원은 많지 않기에, 집에서 거리가 좀 되는 병원으로 열심히 운전해 달려갔지만, 병원은 막 문 닫을 시점이었다. 나보다 한걸음 빨리 달려왔던 한 아이 아빠는 더 이상 접수를 받지 않는다는 간호사의 말에 고성으로 십 원짜리 욕까지 섞어가며 싸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간호사는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이 완강했다. 이런 태도에 더 화가 난 아이 아빠는 결국 쫓겨 나가면서도 아이가 잘못되면 간호사를 가만두지 않겠다(실제로는 이보다 더 험악하게 말했음)면서 범죄 장면이 연상되는 말들을 던지고는 사라졌다.


내 앞사람도 안 받아줬으니, 나는 더욱 가망이 없다 싶었지만 열이 나는 아이를 안고서 이대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나도 그 아이 아빠처럼 아이 보는 앞에서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싸우는 대신, 두 사람의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간호사는 허락을 안 해줬지만,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딨어"의 정신으로 의사한테 말해보면 들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약간의 희망을 품으면서 말이다.


진료실에는 마지막 환자가 진료를 보고 있었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기침하는 아이를 안은 엄마가 진료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나는 혹여나 진료실 문이 닫혀서 의사 얼굴도 제대로 못 볼까 봐 조바심을 내면서, 빠른 걸음으로 총총 걸어 문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고선, 한 명 더 진료를 봐줄 수 있냐고 의사에게 물었다. 싸움이 끝나고 한숨 돌리고 있던 간호사는 갑자기 진료실 앞에서 들려오는 내 목소릴 듣고서는 놀란 듯 뛰어왔다.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다행히도 나는 의사에게 이미 부탁을 끝난 상태였고, 헐레벌떡 뛰어온 간호사는 접수도 안 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 펄쩍 날뛰며 큰 소리로 다급하게 말렸지만, 히포크라테스 정신이 투철한 의사 선생님은 오히려 간호사를 나무라며 결국 내 아이의 진료를 봐주셨다.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딨다고? 이렇게 직접 부딪혀 보면 될 수도 있는 일을... 설령, 내가 바라던 대로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최소한 후회나 미련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에...



가끔 답이 없다고 느껴질 때면, 지금도 이렇게 직접 부딪혀 본다.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이 하는 일에는, 그 사람의 사정과 상황이 반영되면, 때로는 안 되는 일도 되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겠지만, 윤리적으로 문제없는 일이라면 행동도 안 해보고 끙끙거리기만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인 것 같다. 부딪혀 보면 별 것 아니기도, 별 것이어도 의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기에, 부딪혀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을 굳이 해보려 한다. 그러면, 적어도 후회와 미련은 없다. 손해 볼 일도 없다. 이러한 무모한 도전은 50%는 안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 안 된다는 50%가 된다는 100%로 바뀌면 그만큼 감동적인 일도 없다. 세상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보니, 나이듦의 능청스러움마저 더해져서 업무상 결정을 내리기 위한 회의를 할 때마저도 "이렇게는 하면 안 되는 가요?"라고 무조건 던져보는 버릇이 생기기도 했다. 안 되면 왜 안 되는지 이유까지 물어가면서... 그러면, 윗분들이 좀 당혹스러워하실 때도 있지만,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학교의 교장, 교감 선생님은 마음이 좋으셔서 되던 안 되던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주시기에, 늘 해오던 관행에서 벗어나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결론이 나기도 한다.


단, 나 혼자만의 욕심을 위해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딨어?"를 남발하면 조직이나 주변 사람에게 미운털 박힐 수 있다는 걸 고려해서, 꼭 필요 적절한 경우에 필살기로 한 번씩 써먹으면 풀리지 않던 문제가 풀리는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어쩌다 이야기가 삼천포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버린 이야기... 여행을 추억하며 쓰는 글에서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여행 장소나 에피소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행을 통해서 변화된 내 모습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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