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때, 모방하지 않는 나만의 삶을 살수도
사람의 수준은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닌,
무엇을 부끄러워 하느냐로 알 수 있다.
-김수현,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중에서
20년이 다 되어가는 제주 여행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전까지 내가 해보지 못했던 경험을 하게 만든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그 경험 중 하나가 바로 길가 시식~.
길을 걷다 수박 장수가 보이면, 과일 하나 고르는 것도 어설펐던 우리는 잘 익은 녀석으로 추천을 받아서 샀다. 우리가 메고 있는 큰 가방과 그 가방을 내려놓을 때 보이는 등부분의 땀에 젖은 티셔츠. 과일 장수는 우리에게 그 자리에서 당장 수박을 깨어먹을 수 있도록 말하지 않아도 도와주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수박 하나 살려면 족히, 율곡 이이님(5천원권 지폐 인물) 한 분으로는 어림도 없고, 두 분이 되거나 그 이상이 되어야 살 수 있던 녀석인 데, 길 가에서 마주하는 수박은 율곡 이이님 한분이 아니라 그의 스승님 퇴계 이황(천원권 지폐 인물) 한 두 분이면 족했다.
도보여행자에게는 도매가로 판매하는 게 원칙인 것인지, 길 가에서 마주한 어느 과일 장수이든 간에 도심의 마트에서 볼 수 있는 가격으로 판매를 하셨다. 내 얼굴만한 참외는 학 한마리(오백원 동전 그림)면 족했다. 아무리 이렇게 싼 가격이라 하더라도, 길가 시식은 또 다른 일이었다. 다 큰 처자 둘이 길거리에 퍼질러 앉아서 과일을 먹는 일은 과히 1일 동물원 원숭이 역할 체험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길거리에서 과일을 먹고 있으면 지나가던 운전자들은 신기한 듯 차를 세우면서까지 우리를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고 했던가? 이 시절(2005년 당시) 싸이월드에도 절망이 없었던 거 같다. 헤어진 연인에게든, 오랜 시간 못 만난 동창이든, 학업이나 취업으로 연락이 뜸해진 친한 친구이든 간에, 그 시절의 우리는 싸이월드로 안부를 전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 안부에는 나 지금 힘들어보다는 은근히 나 이렇게 잘 살고 있다는 긍정의 내용이 더 많았다. 맛집 다니면서 찍은 음식 사진이나, 여행지에서 한 컷 폼 잡고 찍은 사진, 혹은 멋진 카페 어둑한 조명 아래서 평소와는 사뭇 다르게 분위기 잡고 찍은 사진 등으로 미니홈피를 채우는 일이 그때의 즐거움이었으니 말이다.
속살거리고 싶은 은밀한 이야기나 아무에게나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진들은 일촌 설정을 하면 어느 정도 노출에 제한을 둘 수 있어 범위만 한정되었을 뿐 우리는 그때부터 나와 친한 타인이든 파도타기로 만나게 되는 친하지 않은 타인이든 간에 타인의 삶을 엿볼 수가 있었다. 그렇게 타인의 삶을 엿보면서, 나도 알게 모르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게 된 듯했다. 그러다 보니, 커피 한잔 마시는 것도, 친구와 가볍게 밥 약속하는 것도 , 어디 놀러 한번 가는 것도 모두 싸이월드에 올릴만한 사진이 찍힐 만한 것인 가가 은근히 약속 장소를 정하는 데 영향을 끼쳤던 거 같다.
미니홈피에 올리는 사진은 폼나는 것이어야만 했다. 사진 한 장으로도 침이 고일만한 음식 사진이나, 여행지 배경과 어울릴만한 멋진 포즈의 내 모습이 닮긴 사진, 혹은 내 미모를 최선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조명이 있는 카페 사진이나 내 취미생활이 고급지거나 수준 있게 보일만한 사진 등. 실제의 나는 그리 멋지지도 않았지만, 멋진 사람이 되는 것이 생각보다 조금 쉬웠다. 최대한 나를 멋지게 보여줄 수 있는 사진 한 장이면 되었으니까...
타인의 사진도 그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한참 비싼 디카를 들고 사진 찍는 각종 온오프라인 모임들이 많았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방하는 삶이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내 삶은 이렇게 너에게 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픈 그 무엇의 시작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절망이 없는 온라인 세상이 그 시절부터 만들어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딜 가나 꼭 사진을 찍어야만 했고, 싸이월드에 올려야만 했다. 난 정말 잘 살고 있다...로 보이고 싶으니까. 실제로는 절망 가득한 삶을 살고 있었으면서 말이다. 실제로는 홈피 한 공간에 힘들다고 푸념하는 일기를 매일 쓰면서 아무도 못 보게 꽁꽁 닫아놓았으면서 말이다.
이 여행 전에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던 내가 일상에서 감히 벌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도보 여행자로서 이곳에서만은 오롯이 낯선 이방인이 될 수 있음이 누군가를 모방하지 않는 삶으로 이끌었다. 여행 중의 갈증과 배고픔도 한 몫했다. 당장 보이는 것을 움켜잡지 않으면, 언제 갈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기에 이 여행 때만큼 빠르게 결정하고 행동한 적이 없는 거 같다.
외모적으로는, 자외선에 압도되어 의문의 1패, 배낭 멘 자세로 배 나온 앞볼록에서 뒷볼록이까지 되어 의문의 2패, 땀에 젖은 티셔츠와 모자에 눌린 헤어스타일로 의문의 3패를 당한 모습이었음에도 이 도보여행이 가장 좋았다고 싸이월드에서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타인의 삶을 모방하여 어떤 멋짐의 경계로 들어서려 했던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되어 온전히 나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지금 아닌 그 이후라도 싸이월드 어디선가 나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제주 여행에서는 그 시선을 놓아버렸다. 심지어, 우리의 행동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타인마저 있었지만, 그들을 앞으로 다시 만날 확률은 내가 지금 서 있는 땅의 지구 반대편 사람들을 만날 확률과 같다고 생각하니 타인의 눈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걷고 있던 그 순간에는 타인의 시선보다 내 목마른 갈증이, 내 배고픔이 더 시급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본능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모습은 이 여행 중에서 빠뜨릴 수 없을 내 모습이 될 것이라고 예감했던 거 같다. 싸이월드의 기록으로 남을지 안 남을 지는 중요치 않았다. 갈증의 해결책이 되어 나타난 과일 트럭을 눈을 감고 지나치도록 내 본능이 허락지 않았다. 심지어, 식당 하나 보이지 않는 길에서는 본능의 아우성이 더 커져 보이지 않는 식당을 소환해서 짜장면을 시켜먹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