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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도연 Apr 04. 2021

쿠팡의 관리는 친절일까 손절일까

나만 아니면 돼, 가 키우는 미래

돈잔치가 끝나면 진짜 가치가 드러난다.
   
로켓에 잘못 실린 계란과 즉석밥 반품 신청 후 일주일째 가져가지 않기에 쿠팡 고객센터에 전화하니 알아서 폐기하시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2만 원어치 득템한 셈이지만 영 석연치 않다. 만일 1천 가구에서 이 정도 폐기가 나면 2천만 원, 신선식품 평균 소비 주기가 월 2회니까 한 달이면 4천만 원, 연간 5억 원이 허공에 뿌려진다는 얘기다. 아아, 한국의 소비자는 정말 행복하겠다.
   
글로벌 유통업체들도 본토 소비자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퍼주던 호시절이 있었다. 상품을 한두 달 쓰다 가져가도 환불해 주는 식이다. 경기도 경기지만, 이면에는 수많은 해외 브치(라 쓰고 식민지라 읽는다)가 현지 업자와 직원들을 쥐어짜 올리는 조공 덕분이었다. 이제 대부분 열강이 객지에서 빠져나갔으니 다를까. 호랑이 없는 굴에서 여우는 다시 호랑이를 연기한다.
   
누군가의 불로소득은 누군가의 손실에서 나온다. 마이너스 재무제표로 끝나면 다행인 일이지만, ‘쿨한’ 관리는 납품업자까지 울린다. 예컨대 납품한 100상자 중 쿨하게 90상자만 재고로 잡히면 업자는 ‘떼인 돈’을 받기 위해 지난한 씨름을 거쳐야 한다. 거래는 바이어와 했지만 입고되면 재무 소관이라 일면식 없는 사람끼리 장님 코끼리 만지듯 몇 달을 보낸다. 그간 부실은 업자 몫. 그나마 싸울 재간과 여유 있는 덩치들 얘기지, 피죽도 못 먹는 업자는 그럴 겨를도 없다. 여기서 생필품을 살 때마다 어떤 기분일까.
   
덩치는 자꾸 커지는데 시스템은 그대로 후지다. 건강한 체질 따위에는 애초에 관심 없었거든. 많은 회사가 이런 식으로 부실을 키운다. 사람도 마찬가지. 한 지붕 아래서도 동료 공을 가로채거나 소득 없는 일 뒤에서 베리 비지를 연기하는 비지찌개 같은 직원들은 숨만 쉬어도 부실이다. 이 시국에 골프 회원권 달라며 인사팀 멱살 잡는 임원도 있다. 내 부실만 아니면 되는 거다.
   
결국 폭탄 돌리기는 끝난다. 다만 누가, 얼마나 아프냐의 문제.
   
로켓에 실린 폭탄의 정체는 뭘까. 유통사들 고사? 돈잔치 끝나면 바로 갈아타는 게 온라인 시장이다. 과거처럼 물리적 독점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플랫폼은 네이버가 쥐고, 신세계도 잘 버틴다. 전국통일이 되더라도 알리바바, 아마존 상륙작전이 펼쳐진다면 또 어떻게 될까. 대체 어쩌자고 여기에 100조가 몰린 걸까. 그 100조 투자자들 자체가 폭탄의 인질일까. 고민하는 와중에
   
구로디지털단지 먹자골목을 돌다 더욱 뜨악한 기분이 된다. 전에 옹기종기 섰던 가게들 서너 개씩 벽을 터 대형 식당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대형 자본에게는 코로나19가 저점 투자 적기였겠다. 그러다 이런 로켓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표면적인 목표는 전국통일이지만, 실은 새로운 자본들이 마음껏 활개칠 수 있게끔 시장에 독한 농약을 치는 마름. 이건 좀 과한가. 무튼
   
나만 아니면 돼, 가 키우는 미래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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