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도연 Aug 26. 2023

오펜하이머의 실수

유일하게 확실한 건 불확실성의 연쇄반응


담배 없이 보기 힘든 영화인데 얄궂게도 킬리언 머피는 연신 줄담배를 태우며 애연가의 피를 말린다. 그래선지 옆자리 아재는 원자폭탄 투하 후 기절해 코를 골기 시작했다. 기시감이 들었다.

   

13년 전 일요일, 부사장 보고 때문에 강영일 옹과 분당 자택까지 갔다가 '인셉션'을 함께 봤다. 당시 돈에 미쳤던 롯데시네마는 20분 넘게 광고를 때렸다. 보고와 광고에 지친 강 옹은 영화 시작 5분 만에 코를 골았다. 과연 인셉션의 현현이었다. 

  

옆자리 아재나 강 옹이나 극장을 나와선 놀란 감독 영화를 '보았다'고 얘기할 거다. 오펜하이머의 경험에 따르면 그럴싸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놀란의 분열과 융합에 온몸이 촉발된 거니까. 프로메테우스의 불 덕분에 노곤한 단잠에 빠질 수도 있는 거니까.

                

오펜하이머의 흔들리는 몽상 연출에선 '다크나이트'의 스케어크로우(허수아비)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는 인간의 정신을, 오펜하이머는 환경을 실험했다. 그러나 어느 쪽도 설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빛나는 이론은 세계의 무한한 가능성 중 작은 점 하나일 뿐이다.


6000명의 석학들이 정치적 노예가 되기도 하고, 그들을 이끈 천재가 범재의 칼에 쓰러지기도 한다. 천재를 복권시키려던 JFK는 죽고, 천재의 파국을 설계한 스트로스와 텔러는 역풍을 맞는다. 핵 억제의 꿈은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태평양에 방류된다.


핵분열의 연쇄반응 가능성이 0에 가깝다던 예측은 틀렸다. 오히려 세계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건 불확실성의 연쇄반응이다. 스케어크로우와 오펜하이머의 흔들리는 몽상은 그에 대한 참담함이고, 취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은유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펜하이머는 담배, 키티는 술에 매달렸는지도.


다시 13년 전. 인셉션의 엔딩 크레딧이 오르자 눈을 뜬 강 옹은 개운해 보였다. 디카프리오도 실패한 탈출에 성공한 거다. 미남이 아니어선가. 무슨 꿈을 꿨는지 궁금하다. 

         

극장을 나서 담배 한 대를 태우고 헤어진 그는 예의 두세 건의 저녁 약속 중 한 곳으로 향했을 거다. 디카프리오도, 오펜하이머도, 놀란도 경험하지 못한 작은 행복을 설계하면서. 

       

   


이전 14화 창천동 골목대장 전봇대 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