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은 참 부지런하다. 팀 버튼 특별전 때문에 처음 DDP를 밟았는데, 더 이상 내가 알던 동네가 아니다. 심해를 가르는 고래처럼 강렬한 유선의 물결과 그 사이로 비치는 쨍한 하늘이 유독 크고 여유만만해 보인다. 고래가 한 번 더 몸을 틀면 세기말 모노리스처럼 비죽 솟은 의류상가 첨탑들도 파도에 부서질 것 같다.
기억 속 동대문은 늘 비좁고 땀에 찌든 곳이었다. 유년 시절엔 보험 영업하던 엄마를 따라 평화시장 일대 옷가게들을 돌았다. 천변을 따라 늘어선 키 작은 상가 매장에는 한 여름에도 선풍기 한 대가 고작이었고, 상인들은 쉴 새 없이 침을 튀기며 떠들었다. 후끈한 나염 냄새에 파묻히고 나면 머리가 띵했다. 식당에선 개미들이 둥둥 떠 있는 미지근한 물냉면을 내왔다.
어느 날은 동대문 야구장 뒤편을 걷는데 봇짐장수처럼 야구장비를 이고 가던 거대한 빙그레 이글스 선수 하나가 팽! 하고 코를 풀었고, 거대한 선수의 거대한 코가 강속구처럼 팽! 내 작은 머리를 덮쳤다. 너무 놀라 숨도 못 쉬고 있는데 엄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머리를 슥 닦아주더니 다시 길을 나섰다. 그 후로 다시는 이글스의 야구를 응원해 본 일이 없다.
처음이자 마지막 야구 직관도 동대문 구장이었다. 1995년 청룡기 준준결승에 서울고와 휘문고가 맞붙어 응원 갔는데, 상대인 휘문에는 괴물투수 김선우가 있었다. 15회 연장, 밤늦은 시각까지 접전을 벌인 끝에 석패했다. 김선우는 다음날 준결승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과연 괴물이었다. 여러모로 야구와는 인연이 없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동대문 구장처럼.
그러나 동대문은 인연을 놓치지 않는다. 가난한 소년이 차마 제값 주고 살 수 없던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퀵 실버 짝퉁에 매혹되지 않을 길은 없었다. 게다가 90년대 후반 밀리오레를 필두로 새 시대를 알리는 첨탑들이 들어서고, IMF 직격탄에 디자이너들까지 내몰리면서, 동대문은 짝퉁이 아닌 유니크한 오리지널의 글로벌 성지로 진화해 계속 발길을 잡았다.
외국인 상인과 식당들이 봇물처럼 늘어난 것도 이때부터다. 코로나 시국인 데다 추석 연휴라 한산할 줄 알았던 지금까지 마찬가지였다. 팀 버튼 선생을 영접하러 DDP에 들어서니 대기인원만 822명. 거리엔 여느 때처럼 관광버스들이 도열해 있었다. 굳이 항공권을 끊지 않아도, 국적불명의 여행과 순례의 정취를 흠뻑 맡을 수 있는 곳, 바로 동대문이다.
이참에 해외여행 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장충동 평양면옥으로 가는 대신 광희동 쪽으로 길을 건넜다. 여기선 러시아 무역상,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이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중앙아시아 거리를 만날 수 있다. 곳곳에 우즈벡 요리와 러시아 맥주, 케이크를 파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길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 한국인은 외국인 관광객으로 체크인한다.
우리는 '스타사마르칸트'라는 우즈벡 식당을 찾았다. 2003년 이곳 처음 '사마르칸트'라는 이름으로 오픈했으나 여러 가게가 우후죽순 따라 쓰게 되자 지금의 상호로 바꿨단다. 매장에 들어서니 직원과 손님 모두 우즈벡 사람이고, 유일한 동양인 손님들도 중국인이었다. 실내 장식과 식기, 흘러나오는 TV 프로그램마저 현지의 그것이다. 그렇다. 여긴 한국이 아니었다.
러시아, 튀르키예 여행 때 속을 달래 주던 '보르쉬'를 일단 점 찍고, 러시아 전통 꼬치구이인 '양고기 샤슬릭', 고기를 넣고 화덕에 구운 빵 '쌈사'를 주문했다. 무슬림 식당이라 술은 팔지 않는다. 단, 식료품 점에서 술을 사올 수는 있다. 이 경우 본 매장이 아닌 옆의 다른 매장에서 식사하게 된다고 한다. 무슬림들을 위한 배려인 것으로 보인다.
보르쉬는 러시아식 소고기뭇국이나 갈비탕 같은 느낌이다. 여기서 주는 고기는 특히 예식장에서 자주 먹던 갈비탕의 그것을 닮았다. 백미는 국물이다. 이 집 간은 대단히 슴슴한 편인데 마시면 마실수록 제주 백성원 해장국처럼 천천히 속을 살살 달래 주는 마성의 해장력이 돋보인다. 보르쉬와 당근김치만 있어도 밥 한 그릇 뚝딱, 소주는 몇 병이고 깔 수 있겠다.
쌈사는 간을 하지 않은 삼립호빵의 식감이다. 보르쉬에 찍어 먹으면 딱이건만 주문한지 한참 지나도록 나오지 않아 이미 보르쉬가 바닥을 드러낸 후였다. 화덕에 굽느라 늦나, 과연 현지의 속도인가 싶었으나, 알고 보니 그저 종업원의 발주 실수. 남자 사장님이 그나마 한국말이 유창하니까 여기서 주문할 때는 꼭 사장님께 재차 확인해야 빠르게 식사를 받을 수 있다.
양고기 샤슬릭은 이 집의 절대 메뉴다. 큼직한 고기를 구워 어느 정도 퍽퍽한 식감 아닐까 예상했는데 입에 들어가는 순간 팡! 육즙이 터지면서 뇌를 흔든다. 특유의 양고기 냄새도 적고 육질도 부드럽다. 고기 다루는 솜씨가 예사가 아니란 걸 실감할 수 있다. 내공 깊은 인근 을지로 '경상도식당'이나 '조선옥' 사장님의 멱살을 잡는 수준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이미 추석 음식으로 달린 탓에 더 많은 메뉴를 맛보진 못했지만 일단 보르쉬와 샤슬릭은 소년 시절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나 퀵 실버만큼이나 매혹적이었다. 다음엔 '허님'과 '케밥', '펠메니'까지 싹쓸이하고 을지로 뒷골목 가맥으로 입가심하는 완벽한 여행을 다짐하며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길을 건넜다. 다시 한국인으로 체크인.시내버스는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실크로드를 가르는 낙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