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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도연 May 19. 2021

엄마인 줄. 제주 백성원 해장국

뒷골목 좀비들이 영혼을 찾는 곳

산지해장국 먹으려고 과음한 건데 하필 휴무다. 우진해장국은 대기만 50팀. 돌고 돌아 제주시청 뒷골목 백성원 해장국을 찾았다. 앉자마자 내주는 게장으로 해장 시작. 짜지 않고 슴슴한 맛이 촉촉히 입맛을 돋우기에 좋다. 게장은 킬로당 3만원 별도 판매도 한다.

드디어 기다리던 내장탕이 나온다. 양, 대창, 곱창, 홍창 등 다양한 부위에다 우거지가 섭섭지 않게 들었다. 첫술을 뜨니 통상의 내장탕보다 부드러운 단맛이 도드라진다. 힘 좋은 우거지인가 보다. 마늘과 땡초를 곁들이면 좀더 드라이한 맛을 내지만 여전히 보송보송하다. 굵은 소금을 한 줌 뿌려주면 보다 시원한 맛이 산다.

한 술 두 술 뜰 때마다 조금씩 간밤의 술이 계단 오르듯 오른다. 산지해장국 내장탕이 찌든 술을 거칠게 짜내는 남성 사우나 같다면, 이건 속을 살살 달래주는 모주를 닮았다. 어머니가 스윽슥 등을 쓸어 주는 기분. 엄마 손은 약손. 주방에선 소녀처럼 작은 체구의 이모님이 파를 송송 썰고 계셨다. 그 손길 같다.

거친 아저씨들보단 어린 학생들의 솜털 같은 위장에 더 어울리는 느낌. 새벽 6시 문 열어 오후 4시 닫는다는데 주위를 둘러 보니 그럴 법도 하다. 가게 뒤부터 시청까지는 온통 하드보일드한 분위기의 술집들. 밤새 흐느적대던 좀비들은 골목 끝자락 가게에서 다시 영혼을 되찾고 집으로 돌아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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