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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도연 Sep 08. 2023

농담, 양자역학

고양이는 원래 관측되지 않는다.



오해의 간극이 커지는 건 우주가 팽창하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을 이해 못하는 건 행복한 면죄부다. 우주도 모르겠고 전자도 모르겠는데 어중간한 나 정도의 원자결합 따위 왜 이 꼴로 사는지는 과연 알 바 아니다.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농담을 농담으로 규정 짓는 순간 유머의 운동량은 갈 곳을 잃고, 유머에만 천착하면 정색하는 청중이 나올 수 있다. 설명 없이 모두를 웃게 하는 건 신의 비밀에 가깝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건 양자역학이다. 애정 어린 눈길은 피사체의 본질을 바꾼다. 사랑받는 사람은 누구나 파동이 된다. 이중슬릿 실험 결과는 뜨거운 눈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화장하면 예쁜 건 본질에 대한 관측을 차단함으로써 존재가 붕괴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 쌩얼이 못마땅한 건 그저 관측 탓이다. 원래는 예뻤다. 그래, 그렇다고 하자. 과학은 합의다.


어지러운 내 책상은 양자역학으로 보면 완벽하게 정리된 세계다. 무질서한 질서다. 흩어지는 파동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관측하면 입자들의 정렬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양자역학 실험의 오염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다. 가만히 있자.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아무것을 온전케 한다. 가만히 있자. 우리는 위대한 업적에 참여하고 있다.


영화 '놉'에서 진 재킷과 카우보이 지망생들은 관측함으로써 권력을 확인하려 든다. 관측은 대상을 입자화시키고, 소유가 증발되지 않고 그 자리에 그 시간에 머물기를 바라는 욕망의 투영이다.


소리는 파동이지만 사랑받지 못하면 입자로 붕괴한다. 사랑받지 못한 입자의 최대 에너지는 왼쪽 뺨 언저리 근육 경련으로 이어진다. 파동의 잔상. 동양 수학에 '라떼는 말야'라고 표기한다.


사랑받지 못한 라떼가 권력으로 애정을 갈취하는 걸 '하이패스'라고 한다. '하이패스'와 '사이코패스'는 등가다. 하이패스든 사이코패스든 소시오패스든 뭔가 늘 패스하는 과정은 문제다.


다만 '쿠로코의 농구'에서 쿠로코의 패스는 패스를 패스했거나, 입자이자 파동인 패스를 현실에서 구현했다는 점에서 예외적으로 사랑받는다. 응? 뭐. 왜. 뭐가. 보고 얘기하자. 명작이다.


사랑받지 못한 입자의 분열을 잘 설명한 논문, 뮤지컬 '시카고'의 '미스터 셀로판'. 셀로판의 노래는 존재하던 세계 누구에게도 닿지 않고 다른 차원 인간들을 향했다. 이걸 '방백'이라고도 한다.


'방백' 하면 응당 '빅뱅'이 연상된다. 응? 획 하나가 더 붙지만 넘어가자. 굳이 관측하려 들면 참은 붕괴한다. 우리 세계의 빅뱅은 다른 차원의 사랑받지 못한 입자 분열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지뢰찾기'는 빅뱅에 가까운 게임. 한 점에서 시작해 특이점을 지나면 대량의 공간이 쩡ㅡ하고 드러난다. 심지어 폭탄을 터트리지 않고 회피하며 인간성까지 회복한다. 조건은 우연.


인과성은 과연 실존할까. 인과의 처음에는 빅뱅이 있다. 근데 원인은 모른다. 생명의 태동과 진화도 우연이거나 알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에 비하면 보른의 확률론적 해석은 꽤나 예를 갖춘 변명 아닌가. 그럼에도 아인슈타인이 유독 양자역학만 부정한 건 인과에 맞는 행동일까. 인과를 고집하다 인과를 잃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있어 양자역학도 있다. 고전물리학도, 그 이전의 과학도, 모두 새 시대의 밑거름이다. 학자들의 옷을 빨고 밥을 지어준 사람들도 그렇다. 미국 린든 존슨 대통령이 NASA를 방문했을 때 청소부에게 어떤 일을 하느냐 물었더니 "인간을 달에 보내는 걸 돕고 있다"고 답했다 한다. 과학은 인류가 함께 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닐스 보어가 쾌재를 불렀다고? 하아, 니네들 고양이 안 키워봤지. 고양이는 원래 관측되지 않는다. 관측되기 원할 때만 나타날 뿐이다. 원래 파동이다가 관측 이전에 입자가 된다. 아마 뉴턴은 이미 알았을 걸?


뉴턴은 스핏헤드라는 고양이를 키웠다. 고양이 종특. 집사가 방에서 연구할 때마다 문을 벅벅 긁으며 열어 달라고 떼씀. 해서 뉴턴은 문 아래쪽에 고양이를 위한 작은 여닫이문을 달아준다. '펫 도어'의 발명. 스핏헤드가 새끼를 낳자 옆에 작은 문 하나를 더 달아줬다고. 그걸 본 친구가 "어미가 문을 열면 따라가면 될 것을"이라 지적하자 뉴턴은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처… 천재…." 천재 물리학자도 고양이 앞에선 귀여운 집사일 뿐이다.


고양이와 놀아주면 녀석들은 꼭 장난감을 때리는 것처럼 보인다. 스포츠의 블로킹에 가깝다. 하지만 오래 두고 보면 알게 된다. 그건 쳐내는 게 아니라 잡으려는 몸짓이다. 인간의 손 형태가 아니어서 쉽지 않을 뿐이다. 관측은 시간과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걸 입증한다. 고양이의 깊은 속내를 냥냥펀치 따위로 일축하는 건 자연스럽지 않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반이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은 턱에 구멍을 뚫어 타액을 측정한 잔인한 실험이었다. 그러나 이조차 약과. 인간은 인간에게 원자폭탄을 실험했고, 알려지지 않은 역사들도 많다. 생체실험을 벌인 국가들은 제약자본을 거머쥐었다. 전자기기 최강국이던 일본은 시장에서 조용히 철수하더니 OEM 무기 제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과학의 발견은 경이롭지만 그 이면과 소비 과정은 많은 고통을 수반한다. 관측하고, 기록해야 한다.


핵융합을 처음 발견한 건 독일이지만, 끝내 원자폭탄을 만들지 못한 건 하이젠베르크가 일부러 사보타주했다는 설이 있다. 영화 '오펜하이머'에서도 넌지시 언급되는데, 그는 스승 닐스 보어에게 나치의 개발 정보를 넘기기도 한다. 미국이 미디어를 쥐고 흔들 뿐, 세상에는 욕망덩어리 오펜하이머보다 좋은 이야기들이 많다.


뉴턴은 운동법칙을 완성하기 위해 미적분을 만드는가 하면 유클리드 기하학과 극한, 수열, 함수, 사인, 코사인 등의 재료들을 차곡차곡 쌓았다. 걸작을 만든다는 건 그 구성요소들인 서브 스토리들 하나하나가 완성된 이야기로서 무결할 때 더욱 큰 힘을 가지는 게 아닐까. 훌륭한 재료에서 영혼을 울리는 음식이 나온다.


뉴턴이 장수한 걸 보면 여자는 공부와 건강에 해로울지도.


유체이탈은 실제 가능할지도. 아무런 빛도 없고 뇌사에 가까운 상태. 세포들이 상호작용한다는 신호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어느 새벽, 뇌의 일부가 파동으로 떠올라 자신의 육체를 내려다보는 거다. 하지만 유체이탈을 했음에도 빛이 없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보았으나 보지 못했다. 나눌 수 없는 경험.


양자역학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건 우리가 입자 상태인 때문은 아닐까. 언젠가 지구에서의 모든 상호작용을 마치고 파동 형태의 존재로 치환된다면 모든 우주의 원리가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지도. 인간의 오해와 갈등이란 것도 입자 상태이기 때문에 빚어지는 물리 현상인지도.


과학의 렌즈로 하늘을 보면 저 너머의 가늠할 수 없는 우주의 크기에 압도된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작은 점 하나. 과연 거기에 의미를 담을 수 있까. 하지만 의심과 별개로 내 안 작은 우주는 요동한다. 우주도, 물리도, 우리도, 다는 이해할 수 없다. 그저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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