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
어제 새벽에 체온계에 찍힌 아이의 체온이다.
낮부터 열이 떨어지지 않아 아이는 아내와 함께 병원에 다녀왔다. 그 얇고 얇은 팔에 주사 바늘을 꽂아가며 링거까지 맞았다.
그럼에도 아이의 열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퇴근 후 집에서 본 아내와 아이의 모습은 매우 지쳐 보였다. 얼마나 힘든 하루를 보냈는지 상상이 될 정도였다. 그 와중에도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아내.
도통 지칠 줄 모르는 우리 아이지만 어제는 줄곧 내게 안기며 말하곤 했다.
아빠 힘들어, 안아줘
잠들기 전 해열제를 먹이고, 아내는 아이의 옆에서 나는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이럴 때면 항상 아내가 내게 주는 특권이 있다.
출근이라는 면죄부
‘당신은 출근하니깐 위에서 푹 자, 내가 아이를 케어할게’
아이가 열이 나는 날이면 2시간마다 체온을 측정해야 한다. 혹시나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해열제를 교차 복용할 수 있는 시간이 2시간이기 때문이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12시였다. 체온을 측정해야 하는 시간이다. 아내는 이미 체온을 측정하고 해열제를 준비한 채 물수건으로 아이의 몸 구석구석을 닦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일어나서 이것저것 도와주다가 다시 잠에 들었다.
새벽 2시, 다시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아이의 체온은 39.2도를 가리키고 있었고 아내는 또 열심히 아이의 몸 구석구석을 닦고 있었다.
당신은 나가서 자
쫓겨나듯 거실로 나왔다. 새벽 5시가 되니 아내가 밝은 얼굴로 37도까지 열이 내렸다며 준비해서 출근하라고 나를 깨웠다.
출근이라는 면죄부.
가장이라는 무게를 평소에 짊어지고 있다면 이런 날에는 아내가 나를 대우해주곤 한다. 면죄부 덕분에 아내보다 푹 잘 수 있었으며 출근 또한 문제없이 해 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아픈 아이와 지쳐버린 아내를 집에 두고 혼자 나서는 출근길이 가벼울 리 없다.
일을 한다고 앉아는 있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불편하다. 면죄부를 얻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직장의 노예라는 다른 죄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 열심히 일해서 시간적 자유를 얻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굳힌다.
오늘 저녁은 나 또한 아내에게 면죄부를 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정 주부라는 이름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아내에게 저녁 준비 면제권을 줘야겠다.
가정주부라는 이름의 면죄부도 있어야 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