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백에서 소주를 시킨다고요?
직장인에게 회식이란 무슨 의미일까?
그냥 업무의 연장인 연장 근무일뿐이다. 별 다른 큰 의미는 없다. 하나의 의미를 굳이 부여하자면 내 돈 쓰지 않고 회사 돈으로 한 끼 때울 수 있는 자리쯤 될 것이다.
꼰대들에게 회식이란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들에게 회식은 소통의 자리다.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받는 직원이 있으면 회식 한번 하면 풀리는 줄 알고 있다. 퇴사를 하겠다는 직원이 있으면 어서 하루빨리 회식 자리 잡으라고 한다. 왜? 회식은 소통의 장이니깐. 그들은 나와의 대화를 기다리고 있으니깐. 나의 조언이 그들의 퇴사를 막을 수 있으니깐.
막상 회식 자리를 가보면 소통이 이루어질까?
소통은 이루어진다. 일방적이고 한 방향으로의 소통. 그냥 꼰대가 자기 할 말만 하다가 끝나는 게 보통의 회식 자리이다.
신입사원들 한 마디씩 해보세요.
회식에 꼭 빠지지 않는 순서다. 그래서 신입 사원 때는 무엇이든 한 마디를 준비해서 갔다. 할 말이 없어도 굳이 말을 시키기 때문이었다.
내가 한마디를 하면 꼰대로부터 열 마디가 되어 돌아온다. 결국은 꼰대 할 말 하는 자리다. 나는 꼰대에게 주제를 정해주는 것일 뿐.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저 한마디 해보세요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뭐든 떡밥만 하나 던지면 되기 때문이다.
회식에 빠지지 않는 또 다른 순서가 있으니, 부서장님 팀장님의 한 말씀을 듣는 자리다. 회식이 끝날 즈음되면 꼭 이 순서가 찾아온다. 회식 내내 쉬지 않고 말씀하시던 부서장님 팀장님은 또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길고 긴 연설을 하신다. 미리 준비라도 해 오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쉼 없이 말을 한다.
그렇다 보니 일반 직원들이 회식을 반길리 없다. 가장 좋은 회식자리는 젊은 사람들끼리,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법인 카드만 받아가는 회식이다. 한 번씩 이런 회식 자리를 가지라는 말이 있어서 부서장님께 법인 카드를 받으러 가면 예의상 물어본다.
“부서장님 오늘 참석하실 거죠?”
정말 예의상 물었을 뿐, 부장님 카드만 참석하면 되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그럴까?”이다.
그 자리쯤 되면 눈치도 그렇게 없어지나 보다. 우리끼리 하라며?
우리 팀은 꼰대 급의 차장님이 총무를 맡고 있었다. 다른 팀은 대부분 막내를 총무를 시키는데 왜 우리 팀만 차장님이 총무를 하나 물어보니 그분이 주변 맛집을 가장 잘 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회식은 항상 회 또는 삼겹살이다. 이 2가지 메뉴를 가지고 돌린다. 맛집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인데 왜 항상 메뉴는 2개밖에 없는지 모르겠다.
우리 팀에는 다행히 개혁 전사 역할을 하시는 형님이 한 명이 있었는데, 갓 대리에 진급한 분이었다. 갓 대리는 무서울 것이 없다. 그래서 형님은 꼰대들의 문화에 반기를 항상 들었다. 본인이 직접 나서서 총무를 하겠다고 손을 드는 경지에 이르렀다.
팀장님은 흔쾌히 승낙을 했고, 우리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드디어 회식을 우리 주도하에 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했다.
회식이 있는 어느 날의 오전 팀 회의. 팀 회의 말미에 팀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회식 메뉴는 총무가 정해 보세요.
젊은 사람들끼리 휴게 시간에 모여 기나 긴 회의를 했다. 그리고 회식 장소로 ‘아웃백’을 선택했다. 우리 회사에서는 혁명적인 회식의 장소였다.
총무 형님이 팀장님을 만나고 왔다. 회식 장소를 한 번에 OK 하셨다는 것이다.
이게 웬일인가. 우리도 드디어 티비에서나 볼 법한 회식을 해 보게 되는 것인가?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하하 호호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날 저녁 회식 시간이 되었다. 한 분씩 도착해서 들어오시며 꼭 한 마디씩 보태셨다.
아니 무슨 회식을 이런 곳에서 하노?
팀장님도 한마디 하셨다.
야 나는 무슨 고깃집인 줄 알았드만 뭐고 이게
모르고 OK 한 것이다.
미리 주문한 메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회식 분위기는 더 가관이 되었다. 스테이크, 파스타, 스파게티, 감튀와 맥주, 와인 등이 나왔고, 음식들을 바라보는 꼰대들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결국 팀장님께서 한마디 하셨다.
소주 좀 시켜봐라
아웃백에서 소주를요? 여기 와서 소주를 시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소주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 두 번 당해본 것이 아닌지...)
미리 주문되어 있던 맥주에 소주를 타면서 회식 분위기는 예전과 같아졌다. 그 가족적인 분위기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위하여! 위하여! 위! 하! 여! (마지막 위하여는 꼭 스타카토로 끊어서 해야 한다)"를 외치며 패밀리 레스토랑 분위기를 압도해 버렸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번 이 일을 겪고 나니 다시는 이런 곳에서 회식하자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팀장님의 전략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애당초 이런 곳이 우리 회사와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다음부터 회식은 총무가 몇 개의 제안을 하면 팀장님이 고르는 식으로 돌아가 버렸다.
우리의 개혁은 실패했다. 회식의 주도권은 늘 그래 왔듯 꼰대들에게 있을 뿐이다.
그래, 애초에 회식이 우리에게 즐거운 자리는 아녔잖아. 꼰대들의 자리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