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친절 대마왕 - 1
* 민원봉사실 등 근무현장에서 고충민원을 처리하느라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에서 공직에 대한 믿음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땀과 눈물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국민들이 우리들을 바라보는 따갑고도 엄정한 시선에 당당해지기 위해서 오늘도 친절하게 민원인들을 대하는 마음자세를 바로 잡게 됩니다.
1.
입구에 “당신이 내신 세금 친절로 보답합니다.”라는 표어가 적힌 포스터가 걸려있는 나른한 오후의 구리 세무서 민원봉사실에는 이번에 신규로 전입한 내 자리를 제외하고 민원인이 없어 한산한 분위기였다.
“이 젊은 양반이 원칙만 알고 진실은 전혀 모르네. 공부도 안 하고 세무서에 입사한 것 아니야. 당신 뒷구멍으로 공무원 됐지. 이렇게 상식이 없어서 어떻게 사회생활하겠어.”
내 앞에 앉은 민원인은 나를 노려보며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선생님 신분증 없으면 소득금액 증명원 발급이 불가합니다. 개인정보를 본인 확인 없이 어떻게 발급합니까? 빨리 가서 신분증 갖고 오세요.”
나는 민원인을 바라보며 답답한 듯 말을 했다.
“그러니까 신분증 없이 본인 확인을 하란 말이야. 주민번호를 물어보던지 집으로 전화해서 나인지 확인해보면 될 거 아니야. 젊은 사람이 그렇게 융통성이 없어. 딱 보면 본인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것 아니야. 내가 서장실에 갈 테니 일단 증명서 발급하고 기다려.”
서장실에 올라간 민원인은 서장님과 면담 후 다시 내려와 나에게 왔다. 아까보다는 약간 기세가 눌린 듯 말했지만 모욕을 주려는 언사와 태도는 나의 눈을 찌푸리게 했다. 그가 가고 나자 나는 얼굴이 빨개져 흥분이 가시지 않고 불쾌감에 좌불안석하였다. 이런 내 모습을 보던 김종숙 민원실장은
“현기 씨 기분도 풀 겸 잠깐 나갔다 와요. 앞에 한강둔치에 가서 바람 좀 쐬고 와. 지금 기분으로는 영 일을 못할 것 같으니...” 안쓰럽게 바라보는 실장님에게 미안하기는 했지만 나도 영 기분이 안 풀려 사무실을 나와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엘란트라 승용차를 타고 5분 거리인 한강둔치공원으로 향했다.
내가 구리 세무서 민원봉사실로 발령이 난 것은 올해 정기인사이동일이었다. 망우 세무서 부가가치세과에 근무하던 나는 당초 구리 세무서 소득세과 발령이 예정되어 있었다.
망우 세무서에 신규로 입사하여 부가가치세과 말석이던 나는 사무실의 사무직 여직원과 사무실 입구에 자리가 배정되어 있었다. 부가 3팀의 말석이던 나에게 팀 차석의 자리는 멀고도 멀게만 느껴지던 높은 자리였는데 내가 갑자기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
정년을 2년여 앞둔 차석은 오랜 기간 캐나다 이민을 준비 중이었다. 아직 이민 예정일이 많이 남아 있어 직장 근무를 연말까지 하고 정기인사일을 앞두고 퇴직을 하여 조직에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빨리 출국을 하게 되어 급하게 퇴직을 하게 되었다. 정기인사이동을 앞두고 아무도 차석의 업무를 인수인계받는 것을 원하지 않아 말석인 내가 한 달 동안 임시로 차석의 업무를 인수하여 처리하는 것으로 관리자들이 합의를 보고 내게 미안했던지 업무에 집중하라고 차석 자리를 한 달 동안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졸지에 말석에서 차석 자리로 수직 이동하게 된 나는 신규답게 앞으로 닥칠 일은 걱정하지 않고 내 앞으로 보이는 선배들의 뒤통수를 보며 진짜 차석이라도 된 듯 착각에 빠져 관리자들의 “최차장, 승진 축하해. 흐흐.”하는 농담을 “아니 진짜 차석은 아니고 자리만 차석이죠.”라고 말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의 착각은 정기인사이동일이 가까워지며 무참히 깨지게 된다. 내가 앉은자리는 절대로 앉으면 안 되는 독이 든 성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