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에게 짝사랑을 뺏기다

(단편소설) 친절 대마왕 - 2

by 하기

2.


이민을 간 차석의 담당구역은 면목동 중기회사 밀집지역으로 체납액이 망우 세무서에서 제일 많은 구역이었다. 기존에 상봉동을 담당하여 비교적 체납실적이 좋았던 나는 갑자기 담당 체납액이 많아져 한 달 사이에 서에서 최하위, 아니 청에서 최하위자가 되어버렸다. 정기인사이동을 앞두고 나는 체납실적 최하위자로 지방 좌천이 결정되어 강원도의 삼척세무서로 발령이 날 위기에 처하게 된다.


망우 세무서 부가가치세 과장이었던 진심찬 과장은 청 인사계로 전화를 걸어 나의 사정을 이야기해주어 최악의 상황은 모면하게 되었지만 신규직원들이 가기 싫어하는 민원봉사실 근무는 피할 수 없게 되어 구리 세무서 민원봉사실로 발령이 났다.


동기들은 모두 부가, 소득, 재산, 법인세과 등에서 세법을 익히고 과세를 하며 세금 업무를 배우고 있는데 혼자서 국세청의 고유업무와는 무관한 민원증명발급과 사업자등록 발급 업무를 하려니 왠지 소외된 느낌도 들고 뒤처지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나의 일을 좋아할 수가 없어서 민원인들을 대하는 태도도 심드렁해지고 형식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오늘 신분증을 갖고 오지 않은 민원인에게 법과 원칙대로 신분증을 갖고 오지 않으면 증명서 발급이 불가하다고 응대한 것인데, 나의 이런 형식적인 응대태도를 문제 삼아 민원인은 서장실에 찾아가 나를 불친절 공무원으로 징계를 내리라고 요구하고 청 감찰과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올려 나는 결국 불친절에 대한 인사 경고장을 받게 된다.


총무과장은 인사 경고장을 주면서 나에게 말했다.


“최현기 조사관 앞으로 민원인에게 친절하게 잘해요. 한 번 더 경고받으면 이번 정기 승진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으니... 이번에 승진대상자에 들어가잖아?”


“알겠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말하고 나오는데 직원들이 모두 나를 측은하다는 듯 바라보는 게 느껴져 루저가 된 기분에 나는 기분이 더욱 다운되었다. 총무과에는 내가 좋아하는 유영미 조사관이 근무하고 있어 더욱 난처하였다. 나오면서 슬쩍 영미 쪽을 바라보니 그녀는 컴퓨터를 보는 듯 나를 외면하였다.


지난 화이트데이에 장미꽃 바구니를 그녀에게 선물하며 내 마음을 표현해보았지만 그녀는 꽃을 받으며 환한 미소 대신 당황한 표정으로 나의 프러포즈에 대한 반응을 하였다. 집이 근처라 같이 카풀을 하면서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나를 차 태워주는 좋은 동기 정도로 생각할 뿐 그 이상으로 관계를 발전시킬 생각은 없는 듯했다.


민원실로 돌아가 민원인을 상대하는 데 퇴근 시간이 되자 익숙한 목소리가 출입구 쪽에서 들렸다. 작년에 민원실에 있다가 나 대신 올해 소득세과로 발령 난 임규진과 영미가 웃으며 같이 퇴근하는 모습이 창문을 통하여 보였다. 최근에 신형 아반떼를 뽑은 동기의 차를 타고 퇴근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속이 더부룩해지며 쓴 맛이 올라왔다. 역류성 식도염. 스트레스를 받으면 재발하는 나의 오래된 지병이었다.


나는 퇴근시간이 지나 직원 모두가 퇴근하자 사무실 불을 끄고 집으로 가기 싫은 마음에 차를 몰고 한강둔치공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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