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만년 차장 한만운 개납 생존기 - 7
팀장으로서 나의 첫 번째 임무는 정기감사 수감이었다. 소득세 신고와 근로장려금 신고가 끝나자 개인 납세과와 강북 세무서 전체에 서울청 정기감사가 실시되었다. 개인 납세과 업무의 유형이 다양하여 감사에서 지적된 사항도 다양하였다. 감사총괄과 함께 유형을 분류하여 직원들에게 배부하고 직원들이 엔티스와 수동 서류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감사 소명이 잘 되어 개인 납세과는 지적사항이 모두 소명되고 징계의결이 없어 정기감사 업무 마무리를 하였다. 감사관과 계속적으로 대면 소명을 하며 나는 개인 납세과 업무의 과중함과 직원들의 노고를 수시로 어필하고 직원들의 사소한 실수에 대하여는 감사관들에게 선처를 호소하였다.
감사기간 중 소득세 신고와 관련한 민원으로 직원과 민원인간 분쟁이 발생하였다. 불친절 사례로 민원인이 국민신문고에 접수하였지만 나는 직원과 민원인간 중재를 통하여 민원인이 접수를 취하하도록 유도하여 큰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직원들은 팀장으로서 나의 행동을 칭찬하며 하반기 닮고 싶은 관리자상에 최다투표를 통하여 나를 추천하였다. 나는 국세청에서 최다 득표자로 닮고 싶은 관리자가 되며 본청장의 표창을 받게 된다. 나는 팀장으로서 의무를 다하면서도 매일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것을 거르지 않았다. 한번 배터리가 방전된 경험은 나로 하여금 매일매일 조금씩 충전을 하여 방전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그보다도 매일매일 최이정을 보는 것이 나의 일상에서 큰 즐거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였다.
헬스장에 최이정이 일주일 간이나 나타나지 않았다. 거의 매일 출근하듯 운동하던 그녀라 나는 친하게 지내던 헬스 트레이너에게 슬쩍 그녀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우리는 그녀와 운동 후에 호프를 같이 한 적이 있어 자연스럽게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정도의 친분이 있었다.
“전 주에 할머니가 많이 아프다고 걱정하던데 그것 때문인가.” 헬스 트레이너는 머리를 긁적이며 나에게 대답했다.
“많이 아프신가 봐요. 연세가 팔순이 넘었다고 언뜻 들었던 것 같은데.” 나는 말하며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운동을 마치고 나는 집으로 가지 않고 예전에 맥주를 마셨던 치킨집에서 헤어지며 위치를 알아 두었던 최이정의 집 근처로 가보았다. 빌라 1층이었는데 불이 꺼져 있었다. 나는 근처 마트에서 음료수를 구입하며 최이정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B대학병원에서 장례식을 치른다고 들었어요.” 슈퍼 여주인은 나에게 말했다. 나는 봉투를 구입하여 부의금을 넣어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지하 1층에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장례식장에는 거의 손님이 없어 썰렁하였다. 나를 보고 최이정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반가운 미소가 얼굴에 스쳤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혼자서 큰일 치르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네요.” 나는 그녀를 위로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할머니가 생전에 가입한 상조업체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장례를 치르고 있다고 했다. 내일 벽제 화장터에서 화장하고 발인을 할 것이라고 묵묵히 대답하였다.
나는 B대학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어 아는 직원이 있었다. 그 직원을 통하여 장례절차를 도와주고 상조업체에 연락하여 장의용품 지원업무 등을 그녀를 대신하여 도와주었다. 그녀는 손이 모자라서인지 미안해하면서도 나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거부하지는 않아 나는 직장동료 조모 장례식장에 왔다고 아내에게 전화한 후 새벽까지 그녀와 같이 있어 주었다.
문상객들도 거의 돌아가고 장례식장엔 그녀와 나 둘이만 남아 있었다. 그녀는 피곤한 지 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시 잠이 든 것 같았다. 나는 잠든 그녀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주먹만 한 작은 얼굴에 포니테일로 묶은 풍성한 머릿결이 나의 어깨에 살포시 느껴졌다. 미인박명이라고 아름다운 미모에 어울리지 않는 현재의 상황이 그녀에 대한 애잔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그녀의 보호자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안동의 선산에서 가족 묘사가 있어 형제들이 버스를 대절하여 주말에 안동으로 내려갔다. 나는 3형제 중의 차남으로 평소에는 모임에 소극적이라 형과 동생으로부터 핀잔을 들었던 처지였지만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내가 버스도 대절하고 묘사 준비도 하여 모임을 주도하였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백모와 숙모, 숙부 등 집안 어른들은 연신 나를 칭찬하였다.
“심장 수술하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 친족 모임에 이렇게 헌신하는 모습을 보니 조상들이 너 잘되라고 축복을 내려 주실 거다.” 숙부는 나에게 덕담을 해주었다.
안동으로 내려가는 중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식사를 할 때도 나는 식사 주문과 자리 안내 등 평소에는 막내에게 맡기고 잘하지 않았던 일들도 솔선해서 하며 지치지 않고 일을 하였다.
“만운이가 이제 우리 집안의 기둥이다. 앞으로 사촌 회장은 만운이에게 맡기고 우리는 한 발 물러나도 되겠네.” 사촌형제들 모임 회장인 종손형이 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전 형님 도와드릴 뿐이고 회장은 형님이 하셔야죠. 언제든지 도울 일 있으면 말씀만 하십시오.” 나도 웃으며 형님에게 대답했다.
선산 입구인 도산서원에 도착하여 우리는 가지고 온 제수용품과 음식을 각자 가지고 온 배낭에 넣어 짊어지고 선산에 올랐다. 선산에 올라가서 증조부모, 조부모, 백부와 숙부의 묘에 각각 묘사를 지내고 산신에게도 절을 올렸다. 이런 과정에서 지치지 않고 일을 하는 나를 보고 형수가 아내에게 한마디 한다.
“동서는 좋겠어. 서방님이 수술 후 저렇게 건강해지셔서. 열정적인 모습을 보니 부부관계도 좋아지겠어. 후후.”
“아니에요 형님. 건강관리 잘해서 앞으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랄 뿐이에요.”라고 말하는 아내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나는 것을 바라보는 형수의 얼굴에는 묘한 질투심이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가족 묘사를 마치고 올라가는 길에 영천에 계신 아버지 집에 들러 농사일을 도와드렸다. 혼자서 농사짓느라 고생하시는 모습이 안타까워 시간 나면 내려와서 농사일을 도와주는 게 일상이 되었다. 아버지는 회사일도 힘들 텐데 자주 내려오지 말라고 하였지만 아들 된 도리로 혼자 사시는 아버지를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다.
“아이고 정연이 아범이 이렇게 도와주니 내가 열흘 이상 할 일을 하루에 다 하고 가니 너무 고맙데이.”
“아니에요. 아버지 더 많이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아버지는 농사지은 농산물을 서울로 올라가는 우리 가족을 위하여 바리바리 포대에 담아서 차에 실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