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만년 차장 한만운 개납 생존기 - 3
오후에 민원인이 방문하여 신용카드 발급거부 가맹점 신고에 대한 포상금 지급을 요청하였다. 전담당자가 인사이동으로 인수인계를 하느라고 바빠서 처리를 하지 못하고 전근을 간 건으로 빨리 처리해달라는 민원인에 대하여 나는 최대한 빨리 검토하고 처리결과를 알려드리겠다고 한 후 민원인을 돌려보냈다.
서류를 검토하니 지급요건이 적법하여 지급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 김인재 팀장에게 결재를 맡았다. 반과장에게 결재를 올리니 과장은 지금은 바쁘니 이따가 시간 날 때 결재를 해 주겠다고 서류를 올려놓고 가라 한다.
“이미 지급기한이 경과하여 너무 늦어지면 민원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빠른 검토 부탁드립니다. 과장님.”
“알겠어요. 급할수록 천천히 가라고. 인사이동 전후에 너무 급하게 결재하면 나중에 감사에서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내가 검토 후 결재할게요.”
나는 과장의 말에 별다른 문제제기를 할 수 없어서 내 자리로 돌아와서 계속 전화 상담을 하였다. 계속 상담전화를 받다가 과장이 불러서 자리로 가니 과장은 규정을 설명하며 이 건은 지급할 수 없는 건이라고 나에게 말했다. 신용카드 발급거부 신고 전에 이미 우리가 신용카드 위장가맹점 현지 확인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신용카드 위장가맹점 현지 확인과 발급거부에 대한 포상금 지급은 별개의 사안이라고 주장하며 포상금 지급이 적법하다고 다시 한번 지급을 요청하였다.
“한 차장님. 그러면 해당 사안에 대한 예규 및 판례를 첨부하세요. 그러면 재검토해볼게요. 현재 상황에서는 지급 여부에 대한 판단 근거가 미약합니다.”
나는 할 수 없이 다시 자리로 돌아와 국세법령정보시스템에서 관련 사례를 검토해보았다. 하지만 해당 사안과 동일한 사안을 찾을 수 없어 가장 유사한 사항을 찾아서 과장에게 보여주었다.
“이 예규는 여기에 적용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납세자에게 지급할 수 없다고 연락하세요.”
“아니 이미 전담당자가 지급한다고 통지서를 보내서 지금 지급하지 못한다고 하면 신의칙에 위배되어 민원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과장님.”
“지금 신의칙이 왜 나와요. 전임자가 잘못된 판단을 했으면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지. 잘못을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게 더 큰 잘못이에요.”
나는 어쩔 수 없이 지급 불가로 보고서를 고쳐서 다시 결재를 맡아야 하나 걱정하며 다시 한번 관련 예규를 검토해보았다. 그런데 시행규칙을 보니 해당사항에 대하여 지급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 규정을 첨부하여 결재를 올리니 세 번만에 결재가 났다. 삼고초려였다. 나는 퇴근시간 10분 전에 겨우 결재를 맡고 사무실을 퇴근할 수 있었다.
금요일까지 평일에 신고상담전화와 긴급 업무 처리로 녹초가 된 나는 토요일에는 늦잠을 자고 늦게 일어났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니 아내와 딸아이가 필요한 게 많으니 마트에 가자고 한다. 나는 차를 운전하여 집에서 가까운 이마트에 갔다.
딸아이는 새 학기에 입을 옷을 사고 아내는 가방을 구입했다. 1층에서 식료품을 구입하는 데 주로 아내와 딸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구입하려고 하면 아내와 딸은 괜히 쓸데없는 것 사면 먹지도 못하고 버리게 된다고 나에게 면박을 주었다.
“아니 평소에 안 그러더니 오늘따라 왜 이리 식탐을 내요. 어금니도 썩어서 내일 치과에서 임플란트 치료받아야 하는데.”
나는 사무실에서 전화 상담하고 긴급 업무 처리하느라고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가뜩이나 신경이 곤두 선 상태에서 가족들까지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순간 욱하는 기분에 막말을 하게 된다.
“아니 내가 먹고 싶은 과자값이 5,000원인데 본인들 옷과 가방은 몇 십만 원짜리도 안 아까우면서 고작 5,000원이 아까워. 내가 도대체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별 일도 아닌 일에 왜 이리 소리를 질러요. 그렇게 먹고 싶으면 사서 먹어요. 참.” 아내는 얼굴이 벌게져서 나를 보고 말했다.
“아빠는 사람들 많은데 창피하게.” 정연이도 동시에 나를 보고 말하고는 얼굴을 돌린 후 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순간 내가 너무 오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분위기를 돌리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우리는 이후 쇼핑을 중단하고 집으로 오는 내내 차에서 한 마디도 안 하는 조용한 가족이 되어 있었다.
일요일에 나는 주말에 진료를 하는 치과에서 임플란트 치료를 받았다. 회사에서 신고기간이라 평일에 시간 내기가 힘들어 부득이 주말 치료를 받게 된 것이다. 을지로 세무서 환송회에서 갈비를 뜯다가 어금니에 박아 놓은 오래된 보철 금니가 빠져 버린 것이다.
“심장이나 신장 쪽에 이상이 있으시진 않으시죠?”
“네, 아직까지는 괜찮아요.”
“치료기간에 담배와 술은 끊으셔야 치료효과가 좋으니 참고하세요.”
“최대한 자제하겠습니다.”
나는 치아에 마취를 하고 발치를 한 후 임플란트를 이식하기 위한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마취가 풀리자 수술부위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는 약국에서 약을 구입하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