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 고등학교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시간을 내서 학부모 총회에 참석했다. 강당 입구에서 참석 학부모의 서명을 받는 선생님들 앞에 놓인 서명부에 학생 이름과 엄마 이름을 쓰고 있자니, 한 선생님이 “아, 원석이 어머니 시구나~ 저 원석이 영어 선생님이에요.”하시며 따뜻하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주셨다(이 분이 초등학교 영어 0점 아들을 고3 1등급으로 만들어주신 ‘엄마처럼 챙겨주신’, 실제로 학생들에게 엄마라고 불리는 김보람 선생님이시다).
그 학교의 과목 개설, 진학 프로그램 등에 관한 안내자료와 설명을 들으면서 전반적인 입시 성적을 훑어봤는데 서울 상위권 대학은 거의 다 교과전형으로 합격시켰고 학종(학생부 종합전형)으로는 1년에 1~2명, 어떤 해는 0명이었다. 교과전형은 전교 1~3등의 내신 1.0X대의 극소수 상위권만 지원하는 전형으로 교과성적 외에 수상, 교내 활동, 동아리 등을 거의 보지 않는다. 교과전형은 내신 시험 성적에 자신 있는 극소수 상위권이 내신 성적만으로 대학을 입학하겠다는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수상, 교내 활동, 동아리, 행동발달상황 등의 내용이 잘 쓰인다면 같은 내신 성적을 가지고 학종으로는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
잠시 걱정스러운 생각이 스쳤다.
상위권 학생들이 교과전형으로 대학을 간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이 학교의 학생생활기록부가 개인별로 세심하게 풍부한 내용을 기록하지 않는다는 뜻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수시전형의 본래 취지를 가장 잘 살린 것이 학생부 종합전형(학종)이라고 보는데, 수시의 본래 취지는 학생의 3년간 학교생활을 꾸준히 관찰하고 성장과정과 성취를 기록하는 생활기록부를 통해서 학생의 학업 역량을 가늠하는 것이다.
교과전형은 교과 외 학생의 학교생활 기록을 통한 성장 과정과 성취를 고려하지 않고 내신등급, 즉 내신시험 성적만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아들의 고등학교 인문반은 4개 학급이었다.
한 반에 30명 내외였으니 30명으로 잡아 계산하면 1등급 4%는 5명이다. (120명*0.04=4.8명/반올림하면 5명)
교과전형으로 대표적인 한양대를 가려면 내신 평균 1등급이 나와야 하는데 그 말은 모든 과목 성적이 전교 5등 안에 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전과목 전교 5등이라… 전과목에서 1-2문제 틀려야 나올 수 있는 성적이다. 고등학교 3년간(정확하게는 고3 1학기까지 성적 반영이니 5개 학기 동안) 10회의 내신 시험에서 1-2개의 실수를 제외하고 모두 100점 맞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과전형은 내신 성적만 목숨 걸면 되니 참으로 편한 전형이다. 하지만, 방금 인생 최초로 한국식 ‘공부’를 시작한 아들이 들어가자마자 전교 5등 안에 들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학종은 발달 과정과 성적 향상을 고려하여 상향선을 그리는 경우, 평균 성적이 좀 낮더라도 잠재력과 역량이 큰 것으로 간주하여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교과전형은 오직 내신 점수로 나온 숫자만 보는 것이다.
교과전형은 아들에겐 맞지 않는 전형이다. 성장 잠재력을 보여줄 수 있는 종합 전형이 적합하다. 학교가 생기부를 챙기는 분위기가 아니라면 아이가 직접 생기부를 챙겨야 한다. 생기부에서 중요한 부분을 나열하면, 교과 담당 교사가 써주는 교과 세부 특기사항(교과 세특), 동아리 지도교사가 써주는 동아리 특기사항, 교과 교사 또는 담임교사가 입력하는 독서활동(교과독서, 일반 독서), 담임교사가 입력하는 행동발달상황(행발), 교내 또는 교외 봉사활동, 담임교사가 입력하는 창의적 체험활동이 있다.
교과세특은 평소 수업시간에 보여주는 역량과 학업태도를 교사가 기록하는 것으로 학업적 역량과 잠재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생기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대학 진학이 더 높은 수준의 학업을 위한 것이므로 학업과 관련된 부분인 교과세특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교사의 수업 내용에 집중하고 적극적인 발표와 질문을 수시로 하는 것이 좋다. 교사라면 누구나 수업을 열심히 듣고 발표와 질문을 적극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면 그 학생의 학업 역량을 키워주고 싶어서 격려하면서 학업 흐름을 예의 주시하게 된다. 긍정적인 기대를 받는 학생과 교사 간의 학업적 시너지는 학생의 학업적 성장 과정에 필수적이고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하다. 수업시간에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학생은 수업시간 중에 바람직한 학업적 역량을 드러내기 힘들고 교사의 스타일을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에 교사의 코드에 맞추지 못하고 수행평가나 시험 같은 중요한 부분에서도 교사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게 된다.
내신 시험은 교사의 관점에서 가르친 부분을 잘 이해했는지를 판단하는 시험으로 수능처럼 완전한 객관성을 보장하지는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내신 시험과 같이 좁은 범위의 지협적인 부분에 대한 시험에서 완전한 객관성을 보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내신 문제를 대학교수에게 들고 가서 확인했더니 맞다는 둥, 틀리다는 둥 따지는 학부모가 있는데 그들 대부분은 문제의 타당성을 가린다기보다는 순전한 이기심에서 자녀의 점수를 높이고 싶은 경우다.
같은 문제를 들고 가서 전국의 교사들에게 물어보면 전국 교사들의 의견은 모두 다를 것이다. 교사 관점에서 가르친 내용을 잘 이해했는지 판단하는, 완전한 객관성이 보장되지 않는 시험에서 어느 선까지 정답으로 인정할지는 그들의 관점에 달려있으므로. 어떤 교사는 객관적으로 확실한 오답으로 보여도 학생이 그 개념에 대해 보인 이해도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정답으로 인정하는가 하면, 어떤 교사는 객관적으로 정답의 범주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여도 출제 의도에서 요구한 개념 이해도가 빠졌다면 오답으로 판단한다.
문제 오류에도 불구하고 정정 절차와 과정의 번거로움 때문에 틀린 문제를 그냥 밀어붙이는 교사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그런 교사가 극소수 있을 수 있다. 어떤 분야나 이상한 인간은 존재하니까.
나도 교사의 한 사람으로 시험문제에 대한 이의가 있을 때 문제 자체에 이상이 있는 경우인지를 명확해질 때까지 검토한다. 문제 자체의 이상이라면 출제자 쪽에서 저지른 실수인 것이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을 넘어 교사로서 내 자존심의 문제다. 그런데 수많은 이의 중 실제로 문제 자체의 이상은 20년간 딱 한 번 있었다. 글의 내용으로 틀린 것을 고르는 문제였는데 선지(①~⑤까지 보기)가 한글로 된 문장들이었다. 이과 모범생들이 와서 선지의 한글 문장이 다른 의도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질문한 때였는데, 그들의 주장에 분명 일리가 있었고 문제 자체의 이상에 해당되는 것이었으므로 복수정답 처리(지금은 복수정답처리가 금지되어 있지만 그 당시 가능했음)했다.
언젠가는 한 학생이 서술형 답으로 이상한 영작을 했는데, 왜 자신의 영작이 틀리는지 이의를 제기했다. 영어 문장을 만드는 규칙을 다 무시한 채 단어를 나열한 영작이었다.
‘사람들에 의해 보여진 공감은 그에게 모욕적이었다.’
⇒ People shown empathy / insult to him. (X)
⇒ The empathy (that was shown by the people) / was / insulting to him. (O)
언어라는 것은 일종의 약속이고 그 약속에 해당되는 영작의 규칙들을 설명하여 돌려보냈다. (예를 들면, 주어+동사 맞지 않는 것(주어가 people이고 동사는 insult로 영작해서 ‘사람들이 모욕했다’의 의미가 됐는데 문제가 요구하는 의미는 ‘공감이 모욕적이다’), 수식 잘못된 것(people shown에서 shown이 앞의 명사 people을 수식하는 영작을 해서 ‘보여진 사람들’의 의미를 만들고 shown 뒤에 empathy를 사용하여 간접 목적어 ‘-에게’ 의미를 만들었는데 empathy공감은 간접 목적어로 사용할 수 없음) 등등.
다음날, 또 찾아와서 왜 자신의 영작이 틀리는지 똑같은 질문을 했다. 어제보다 더 쉽게 설명하여 돌려보냈는데 그다음 날 또 찾아와서 똑같은 질문을 했다.
성적우수자에 해당되는 기숙사 학생이었는데 그 문제에서 부분점수 1점이라도 얻어내면 등급이 오를 수 있을 거라 계산을 하고 계속 떼를 쓰러 오는 것이라 판단되어 몹시 실망스러웠다. 자기 실력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시험을 치르고 시험 결과로 실력을 반성하는 게 아니라 오직 1점을 더 얻어서 등급만 올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엉터리 영작을 해놓고 계속 이의를 제기하러 온다는 행동에 일말의 수치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틀린 영작인 이유를 명백하게 이해했을 텐데 또 찾아오면 생기부에 네 영작과 이의를 제기하러 온 사실을 그대로 적어서 대학 입학사정관들이 네 행동을 정확하게 알도록 하겠다.”라고 불같이 화를 내며 호통을 쳤다.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음 날 그 학생은 또 찾아왔고, 생기부에 적겠다고 말했다. “‘사람들에 의해 보여진 공감은 그에게 모욕적이었다.’의 영작에 대한 자신의 서술형 답으로 자신이 작성한 People shown empathy insult to him.이 틀린 이유에 대해 타당한 설명을 듣고도 집요하게 찾아와 틀린 이유를 계속 묻는 행위를 통해 순수한 학구적 호기심은 찾아볼 수 없고 순전한 이기심에서 나오는 점수 향상에 대한 집착을 보여 안타까움. 학업 과정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결과에만 집착하여 앞으로 속할 집단에서 드러낼 부정적 영향이 염려됨.”으로 입력했다.
학기말에 생기부에 적힌 문구를 보고 와서 제발 지워주시면 뭐든지 하겠다고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서,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이런 떼를 또 쓰면 이 생기부 문구를 다시 입력하겠다는 조건으로 내신 시험 결과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에 대한 반성문을 작성하였다. 그 후 내신 시험에서 무리한 생떼를 부리는 일이 없었고 고3 때 내가 담임을 맡아서 생기부 모든 항목의 최대 입력 글자 바이트를 꽉 채웠던 꼬꼬마 현석이는 성적보다 훨씬 좋은 대학교로 추가 합격했다.
내신 시험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따져서 점수를 얻어내려는 학생과 학부모는 교사 입장에서 좋게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출제한 문제가 학생에게 피해가 되는 것이 신경 쓰이지 않는 교사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는가? 내가 아는 교사들은 모두 출제 전 회의에서부터 최소 3~4번의 문제 수정단계와 문제 확정 이후 점 하나의 오류까지 표현 그대로 ‘눈알이 빠지도록’, 인공눈물을 넣어가면서 보고 또 보고, 수도 없는 검토를 한다. 학생들의 기상천외한 답안을 가지고 어느 선까지 정답이고 어느 선까지 부분점수를 부여할 것인지 회의 후 가채점을 하여 정답과 부분점수에 대한 확정을 한 후 학생들에게 확인시키는 과정에서 나온 질문에 대해 또 회의를 통해 우리가 정한 기준에 이상이 없는지 검토한 후에야 나이스에 성적을 입력하고 성적을 마감한다. 내신 시험 결과에 대해 부정적인 학생의 생기부 교과세특이 바람직하게 기록될 리가 없다. 아들에게도 내신시험 문제가 이상할 때는 예의를 갖춰서 슬쩍 여쭤보고 분위기가 아니다 싶으면 두말 말고 나오라고 강조 또 강조했다.
학부모 총회의 마지막 순서로 담임선생님 면담시간이 왔다. 학급 교실에 모인 엄마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자기 자녀의 책상을 찾아서 앉았다. 게시판, 책상 속, 사물함을 살펴보니 내 아들은 틀림없는 남자였다. 정리가 하나도 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게시판에 공지된 동아리 홍보, 학교 행사에 대해 카톡으로 물어보니 ‘그런 게 있었어?’하는 표정이었다. 아이쿠! 교실 게시판 사진을 찍어오라고 시켜야 하나. 짝꿍에게 학교 행사나 수행평가를 수시로 물어보라고 일러줘야 하나. 담임선생님께 민폐를 무릅쓰고 여쭤야 하나… 오만가지 고민들로 머리가 복잡해질 무렵, 담임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셨다. 대략적인 학급 설명을 하시고 개별적으로 면담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교무실로 한 분씩 오시라고 하고 나가셨다.
그 사이 엄마들은 반대표와 총무를 뽑아야 했는데 이런 때에는 어김없이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 마련이다. 누구보다 담임교사의 고충을 잘 아는 내가 말을 꺼냈다. “제가 직장 다녀서 일과 중에는 시간 내기가 어려우니 총무 맡을게요. 근무시간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제가 다 할 테니 시간 되시는 분 있으시면 대표 좀 맡아주세요. 오늘 반대표, 총무 못 뽑으면 담임선생님이 학부모에게 일일이 전화 돌리면서 부탁해야 돼요.”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어머니 한 분이 “올해는 안 맡으려고 했는데…” 하시면서 대표를 맡아주셨다. 알고 보니, 자녀의 초등 시절부터 학교 일을 해 오신 베테랑 어머니셨다. 안 그래도 바쁘신 담임선생님의 잡무를 하나 해결했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개인 면담하러 교무실에 갔는데 “원석이 어머니시죠?”하고 바로 알아보셔서 깜짝 놀랐다. 하긴, 나도 학부모님이 면담 오시면 얼굴과 분위기로 누구 어머니, 아버지이신지 다 알 수 있었으면서. “하얀 피부랑 동그란 눈이 원석이랑 똑같네요.”
학급 총무를 맡게 된 이야기를 드렸더니 고맙다고 하셨다. 담임선생님을 너무 좋아해서 감사하다는 말과 아토피가 심해지면 연락드릴 수 있다는 말, 딱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얼른 나왔다. 학부모 총회날은 담임교사들이 늦은 상담으로 밤 시간이 다 되어서야 퇴근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담임선생님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다음 날, 원석이 어릴 때 출간했던 <일하는 엄마의 그림편지> 책과 벼룩시장에서 산 스카프를 담임선생님께 보냈다. 나보다 15살은 어린 후배 교사가 스카프도 없이 휑한 목을 드러내고 쉰 목소리를 냈던 게 자꾸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선생님, 목을 항상 따뜻하게 하고 다니세요. 새콤한 유자, 매실차 많이 드시면 목에 좋대요. 선배 교사로서 드리는 조언입니다^^’ 메모와 함께.
아들에게 담임선생님 인상이 너무 좋으시고 귀여우시더라 얘기를 했더니 신이 나서 담임선생님 자랑을 미주알고주알 한참 떠들었다. 총무 맡은 얘기를 하면서 너 어릴 때 어땠는지 참고하시라고 엄마 책 드렸다고 했더니 “그래?” 하는 게 싫지 않은 눈치였다. 제대로 될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