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첫 중간고사는 매우 중요하다.
고등학교에 보는 첫 시험이니만큼 신입생들은 수능을 준비하듯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첫 시험 점수가 좋지 않은 경우, 아이들은 크게 좌절하고 학업 의욕을 상실하고 방황하기 시작한다. 아들 키우면서 한 번도 시험 걱정을 해본 적이 없던지라 고등학교 첫 시험 때 아들보다 엄마인 내가 더 긴장되었다. 시험 때 필요한 컴싸, 수정테이프, 샤프 같은 것을 필통에 챙기는 것부터 시작하여 시험 유의사항을 꼼꼼히 확인하고, 시험 전날 새벽까지 공부하는 아들방 옆 거실에 앉아있다가 음료수, 간식, 연습장을 찾을 때 챙겨주고 불 끄고 잘 때까지 깨어 있었다. 인생 최초 공부치고는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며 스스로 정한 기준점에 도달했다고 판단될 때까지 몰입했다. 시험 날, 아침식사를 적당히 먹이고 학교에 일찍 등교시킨 후 시험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조퇴를 달았다. 교문 근처에 차를 대고 있으니 하나둘씩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들이 걸어오는데, 표정이 어둡고 심상치 않았다. 아뿔싸! 첫 시험이라 시간 안배에 실패했나? 혹시, 밀려 썼나? 예상보다 문제가 어려웠나? 내가 생각하지 못한 다른 변수가 있었나? 확실한 것은 시험을 망쳤다는 사실이었다. 상심한 얼굴로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자책이 섞인 표정을 하고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아들에게 시험 잘 봤어? 이런 말은 건넬 수가 없었다. 시험을 망치는 동안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
시험 보느라 수고 많았지?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랑토스레 괜찮지? 아들이 좋아하는 시내 스파게티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들은 먼저 클래식 음악을 틀더니 시험 얘기를 꺼냈다.
“채점했는데 점수가 안 좋아.”
“네 표정 보니까 반타작도 못한 얼굴이다. 고등학교에서는 시험이 어려웠으면 50점이어도 1등급 나오기도 하고 그래. 중학교처럼 90점 넘어야 잘 본 거 아니야. 시험 많이 어려웠어?”
“아니.”
“엄마는 너 50점만 맞았어도 정말 잘한 거라고 생각해. 네 인생에서 처음 공부했는데, 그것도 그 어려운 고등학교 시험에서. 너 욕심 너무 부리는 거 아니야?”
“90점 못 넘었어.”
“뭐? 80점 대야? 완전 잘했네!!! 야, 네 얼굴 보고 50점도 안 나온 줄 알고 완전 조마조마했잖아.”
“리더반 애들은 다 90점 넘었어. 나도 90점 넘을 줄 알았는데 89점이야.”
아들의 고등학교는 상위권 리더반 성적은 평균 90점을 넘고 중위권은 바로 60점대로 떨어지는 분포였다. 전교 1등~10등까지 평균 90점대, 전교 11등부터 평균 60점대로 내가 근무했던 명문고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전교 1등~100등까지 촘촘하게 평균 점수가 분포했던 나의 근무 학교의 경우만 생각했었는데 아들의 학교는 달랐다. 1점 부족한 90점이 내겐 100점보다 더 대견했다. 랑토스레에서 리코타 치즈 샐러드, 키조개 파스타, 스테이크에 모히토로 짠! 건배하면서 축하했다.
첫 시험 마지막 날, 상장 용지에 상장을 12장 뽑아서 아들 책상 위를 도배했다. 시험과목별로 상장 제목을 달아서 영어-잠재력 반짝상, 수학-수학 천재상, 국어-타고난 문학가상 등등 과목의 내용에 맞게 문구를 입력해서 첫 시험을 무난히 잘 치른 기특함을 상장 종이에 담았다. 제자들이 시험날, 체육대회날 열심히 노력한 마음과 과정이 대견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눈빛들이 안타까울 때마다 교실 벽을 상장으로 도배했던 것처럼. 시험 끝나고 자기 방에 도배된 상장을 보더니 “이게 다 뭐야?” 하면서 민망한지 핀잔투로 말했지만 나는 꿋꿋이 한 장 한 장 상장을 다 읽어 주고 “너~무 수고 많았어. 우리 아들~”로 마무리하면서 박수를 엄청 쳐 주었다.
첫 시험과 두 번째 시험, 모의고사 후 아들은 리더반이 되었다.
학기별로 내신과 모의고사 합산 전교 10등까지 뽑는 리더반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