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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드릭 Sep 24. 2021

두피까지 번진 아토피

인문계 고등학교를 간다고 했을 때 가장 걱정인 것은 아토피였다. 어릴 때 심했던 아토피가 이천으로 이사 와서 나았지만, 컨디션이 안 좋거나 면역이 떨어지면 입술 주변, 눈가, 팔 접히는 곳에 악건성 증세가 시작된다. 잘 먹고 잘 쉬지 않으면 한 번 시작된 악건성 증세는 온몸으로 퍼진다.


지옥과 같은 입시공부를 하다 보면 건강한 아이들도 체력이 달려서 보약에 홍삼에 다 챙겨 먹어도 코피를 흘리는데 아토피 환자였던 아들이 몸 생각 안 하고 쓰러질 때까지 공부를 하는 걸 보니 아토피가 번질까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집 욕실 세면대 오른쪽에는 악건성 전용 클렌저가, 왼쪽에는 4단계의 보습 화장품이 놓여 있다. 물을 묻히지 않은 맨 얼굴에 클렌저를 묻히고 클렌징 솔로 거품을 골고루 낸 후 물로 씻어내고 수건으로 톡톡 물기가 적당히 남아 있도록 한 후 바로 왼쪽 4단계 – 닥터자르트 시카페어 스킨, 세럼, 피지오겔 로션, 시카페어 립 케어를 수분이 증발하기 전에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고(세안 후 1분 이내) 발라줘야 피부의 수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샤워할 때도 너무 뜨겁거나 차갑지 않은, 팔꿈치를 대봤을 때 따뜻한 온도의 물로 악건성 전용 바디워시를 사용하고 얼굴 세안과 마찬가지로 피부의 수분이 남도록 수건으로 톡톡 닦은 후 수분이 날아가기 전에 악건성 전용 바디로션을 촉촉이 발라줘야 한다.


머리를 감을 때도 미지근한 물로 일반 샴푸로 감은 후 헹구고 전용 샴푸로 감고 드라이로 말릴 때 차가운 바람으로 건조해야 된다. 이런 과정들로 씻기를 아침마다 한다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수면 시간 1분 1초가 아쉬운 수험생에게 시간을 너무 빼앗을 뿐 아니라 세수 한 번 쓱- 하면 될 간단한 일이 복잡하고 긴 처치의 과정으로 변하니 옆에서 보기만 해도 힘든데 그 과정들을 매일 아침 반복해야 하는 본인은 얼마나 성가시고 싫을까.


매일 얼굴, 팔, 두피를 살핀다고 살폈는데 입술 주변이 심상치 않게 거칠어져 있는 날이 있었다. 머리카락을 들춰보니 온 두피가 아토피로 다 번져있었다. 팔 접히는 부분, 다리 접히는 부분도 피부가 거칠게 일어나서 빨갛게 번지고 있었다. 일단, 아토피가 번지기 시작하면 매일 아침, 저녁 적절한 온도의 욕조 목욕 후 보습로션과 함께 피부약을 발라서 피부 습도를 세심하게 조절해주어야 한다. 등교 준비시간을 최대한 절약하기 위해 욕조 물을 미리 받아서 아로마(유칼립투스, 라벤더 에센스 오일) 2-3방울 떨어뜨리고 욕조 물에 몸을 담그는 시간 동안 식사를 하도록 욕조 받침대 위에 아침을 차려줬다. 욕조 목욕이 싫은 일로 각인되지 않도록 좋아하는 메뉴에 좋아하는 과일 후식도 같이 차려줬다. 욕조 목욕이 끝나면 수분이 증발하기 전에 얼굴과 몸에 여러 단계 발라주고 마지막에 피부과 연고를 바른다. 두피에 바르는 게 가장 어렵고 오래 걸리는데 두피클리닉에서 하듯이 1cm 간격으로 머리카락을 들추고 두피 피부에 연고를 바르는 과정을 머리 전체에 반복하면 된다. 한 번 번진 아토피는 최소 1달간 아침저녁으로 정성껏 처치를 해줘야 정상적인 피부 상태로 돌아간다. 아토피는 비염처럼 먼지나 집먼지진드기를 피해야 하기 때문에 아들의 방은 매일 깔끔하게 물걸레 청소까지 하고 히노끼 나무통에 물을 담아서 유칼립투스와 라벤더 에센스 오일을 몇 방울 떨어뜨려서 청정구역으로 만들어 주고 침대보,  덮는 이불, 베개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먼지를 털어주고 베개보와 베개솜은 2일에 한 번 세탁을 해서 깨끗하고 뽀송한 침구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


고1 때 공부에 전념하고 싶다고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 기숙사 방과 침구 청결 때문에 아토피가 도질 거 같아서 저녁마다 기숙사 방에 가서 침구를 털고 방청소를 했었다. 2인 1실에서 같이 지내는 룸메이트가 서운해할까 싶어 방 전체와 룸메이트 책상 위도 같이 청소했다. 청소를 하러 가보면 아침 등교시간이 얼마나 긴박했는지 바로 보인다. 폭탄을 맞은 것 같은 기숙사 방은 드라이기가 콘센트에 꽂힌 채로 방 한가운데 나뒹굴고 책상 위 스킨, 로션, 크림, 바디로션은 다 넘어져 있고 실내화와 신발은 한 짝씩 방 위로 올라와 있었다. 그 긴박한 시간 동안 피부 보습 관리가 잘 되었을 리 없다. 매일 그렇게 청소를 했는데도 2달이 지나지 않아 입술 주변이 빨갛게 도져서 원숭이처럼 입가에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기숙사에서는 아토피 관리가 안돼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토피 환자는 진화가 덜 된 피부를 가졌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양서류의 피부 점막은 포유류의 피부보다 얇고 약해서 물 밖으로 오래 동안 나와 있으면 피부가 다 말라서 생명의 지장을 받는다. 아토피 환자의 피부는 양서류와 같아서 온도와 습도 변화에 빨리 적응하지 못하니 씻을 때마다 여러 단계의 보습제를 발라서 피부에 보습막을 씌워주어야 한다.


번진 아토피가 다 나을 때까지 쉬지도 못하고 입시 공부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아들을 보면서 느끼는 엄마의 안타까움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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