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못하는 것은 요리다.
어릴 때부터 운동과 공부는 좋아했지만 요리는 가장 싫고 재미없어서 주방 근처에 간 적이 없다. 뭐든 다 맛있는 내 입맛은 요리를 잘하기 힘든 조건이기도 하다. 쌀 씻는 걸 몰라도 결혼생활에 지장 없었지만 아이를 키우는데 요리를 못하는 것은 거대한 장애물이었다. 아이를 잘 먹이고 건강한 성장을 하도록 하는 것은 육아의 기본 중 기본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최고 신선한 재료로 산해진미를 만들어 주신 요리사 엄마를 둔 남편은 요리를 맛보면 생선 재료가 잡은 지 얼마 지났는지도 바로 알아내는 수준이었다. 미식가 아빠의 입맛을 닮아서 입이 짧아도 너무 짧은 아들은 내가 해준 요리를 먹으려고 노력하다가 토할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하필 요리 제일 못하는 엄마의 아들이 최고 미식가라니. 새벽 5시부터 열심히 요리를 해도 2시간 동안 차린 반찬은 계란 프라이, 콩나물무침, 된장찌개가 끝이고 맛은 엉망이었다. 짧은 입 탓에 워낙 먹는 양이 적은데 식욕도 없어서 이것 먹어봐, 배 안 고파? 이런 말에 “괜찮아.”라고 거절해서 저러다 성장은커녕 병에 걸리는 게 아닌지 걱정됐다. 내 요리실력이 늘기 전에 아들이 굶어 죽을 지경이었다. “엄마는 일을 하니까 맛있는 걸 사줄게.”
맛있는 걸 못 만들어 준다면 사서라도 먹여야 하겠기에 아들 입맛에 맞는 식당에 가서 많이 먹이고, 먹고 싶어 하는 메뉴가 있거나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식당이 있으면 포장해와서 다음날 아침에 차려줬다. 가장 좋아하는 건 복어회였는데 담백한 복어회에 미나리를 얹어서 먹는 게 가장 맛있다면서도 그 얇은 복어회를 1/3도 못 먹고 배가 불러서 더 못 먹는 걸 보던 복어회 사장님이 이렇게 입 짧은 아이는 처음 본다고 하셨다. 그래도 엄마가 짧은 입맛을 맞춰주느라 애쓴다며 위로하셨다. 주방이 깨끗하고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음식점 위주로 집 주변에 있는 중화요리 왕서방의 짬뽕과 탕수육, 증포 설렁탕 설렁탕에 곁들인 부추무침과 깍두기, 은희네 해물찜, 초록마을 오미자차와 잣, 오동추야 돼지갈비, 전봇대 막창, 아르보르 스파게티와 화덕피자 등을 자주 갔다.
이런 아들이 입시 공부를 하면서 다른 건 다 필요 없으니까 먹고 싶은 것만 먹게 해달라고 말했을 때 요리 못하는 엄마 인생 최대의 난관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하지만, 목숨을 내놓는 것도 아닌데 자식을 위해서 그 정도 난관쯤이야.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한창 성장기에 공부에 온 에너지를 쓰느라 키가 크지 않는 기숙사 아이들 보면서 성장기에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내 눈으로 목격하면서 내 아들은 고등학교 시기에 평생 재산이 되는 성장기 건강을 잘 챙겨야겠다 다짐했었다.
공부하다 새벽 2시가 되면 출출한지 간식을 찾기 때문에 소화 잘되는 간단한 간식(카스텔라, 우유, 누룽지, 복숭아 등)을 준비해줬는데 고1 2학기부터는 배가 고프다며 요리를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해산물 토마토 스파게티, 스테이크, 삼겹살, 꽃등심… 미식가 입맛 아들이 먹고 싶은 해산물 토마토 스파게티는 흰 다리새우, 칵테일 새우, 오징어, 올리브유에 토마토 갈아서 넣고 으깬 마늘, 양파 듬뿍, 통후추, 월계수 잎, 스파게티 소스 조금, 바질 페스토로 간을 해서 블랙 올리브를 올린 소스에 가장 얇은 스파게티면 스파게티니를 삶아서 호텔요리 수준의 플레이팅을 한 요리를 의미한다. 할라피뇨와 (직접 갈아 만든) 토마토 주스는 꼭 곁들여 줘야 한다. 해산물을 1인분 양만큼 소분해서 냉동실에 얼려두고 나머지 재료들은 항상 쟁여져 있도록 미리미리 사두어야 했다.
“스테이크, 고든 램지 스타일로 해줄 수 있어?”라는 말은 상온에 30분 이상 미리 꺼내놓은 고기를 연기가 나도록 뜨겁게 달군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여 고기에 끼얹어 가면서 굽고 모든 면을 골고루 익힌 후 3분간 레스팅 해서 육즙이 잘 퍼지도록 해달라는 의미이다. 물론 양파와 통마늘 구이를 기본으로 하는 가니쉬와 포도주스를 꼭 곁들여야 한다.
밤낮 가리지 않고 홈쇼핑, 인터넷 쇼핑, 카톡, 이마트 배송 등 모든 채널을 이용해서 식재료를 구매해야 했고 주말에는 전통시장에서 모시조개, 해산물, 과일을 사고 식자재마트에 가서 대용량 식자재를 사다 날랐다. 퇴근 후 투잡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느낌이었다. 밤낮으로 바쁜 나를 지켜보던 남편이 팔을 걷어붙이고 식사는 전담으로 차려주었고 식재료 사는 것도 많이 도와주었다.
어떤 때인가, 참치회가 맛있다면서 부쩍 참치 타령을 해서 새벽에 참치를 먹일 방법을 한참 찾다가 집에서 간편 해동할 수 있는 어줏간 냉동 참치를 부위별로 구매해서 쟁여놨다. 미지근한 물에 소금을 넣고 해동하고 해동지를 깔고 물기를 닦은 후 새 해동지에 참치를 싸서 30분 냉장실에서 숙성시킨 후 칼로 썰어내면 된다. 물론 미식가 아들의 참치회는 도시락 김, 무순, 락교와 생강절임이 필수로 곁들여져야 한다. 요리 1시간 하는 것이 수업 100시간보다 힘들다고 느끼는 요리 못하는 엄마가 아들을 먹이려고 밤이고 새벽이고 가리지 않고 취향에 맞춰 요리를 해주다 보니 어느새 요리 실력이 늘어서 아들에게는 엄마가 해주는 스파게티가 가장 맛있는 요리가 되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먹고 싶은 걸 먹게 해달라고 말한 아들의 말은 성장기 때 꼭 필요했던 요청이었고 고등학교 생활 동안 건강을 챙길 수 있게 해 준 고맙고 기특한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