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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Aug 07. 2023

그대는 불행한가요. _ 가지구이와 가지탕수.


'바다 풍경을 담은 스케치에는 황금 색조의 부드러운 느낌이 있고, 숲 그림은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를 띤다. 인생에 이 둘 모두  존재한다는 게 다행스럽다.'        

                                                 반고흐」 '영혼의 편지' 중.


 새벽녘 창백한 안개가 자욱하였지만, 그 너머에 붉은 태양의 아우라는 안개마저도 주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자연이 그려주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삶에 대한 경외의 보호를 받는 것만 같아, 살아가고 싶은 의지가 충만해지곤 하지요. 이런 황홀한 풍경을 보며, 왜 나에게만 이런 불행이 생길까라는 생각은 차마 떠올릴 수가 없겠지요. 사나운 장마를 견뎌낸 가지와 오이들이 단단해 보입니다. 가지와 오이를 살펴보, 침묵 속에서 맡아지는 새벽의 향기는 인간의 손과 발이 닿지 않은 지의 순결한 냄새라 읊조려 봅니다. 입을 벌리고 행복하다며, 또박또박 소리내어 발음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지쳐있을 친구에게 주홍빛 안개 한줌과 순수한 향기를 동봉해 보냅니다. 친구가 잘 견뎌내리라 믿습니다. 말없는 말들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자연을 통해 저는 여전히 알아가고, 아마도 죽을 때까지 배워 되겠지요. 지난 겨울 어버린 흙 속에서 얼어 죽지나 않았까 걱정했던 더덕들삶을 향해 팔을 길게도 뻗치고, 느새 종소리를 닮은 쌉쌀한 향기를 흘려주고 있습니다. 길었던 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지만, 끝내 건강한 향기깊은 곳에서 길어올려 바람에 실어주는군요. 더덕꽃의 향기를 크게 들이쉬며 하루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연약한 일상을 다듬으며, 순수한 자연을 만나게 될 한밤의 행복들을 또다시 기다립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힘을 낼 수 있겠습니다.


더덕꽃 하나에 무얼 그리 행복해 할 수 있으, 힘을 낼 수 있느냐고 누군가 물어 온다면, 사실 저는 명확하게 답을  재간이 없습니다. 많은 이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그 중에는 평소 행복해 보이기만 했던 이들이, 나름의 불행을 안고 살아가기도, 또 불행할 것이라 확신하였던 이들이, 행복의 기운을 전하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지요.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스스로에 대한 인지적인 반응의 화학적 결과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년 전, 제가 대한민국의 이혼한 남자가 되어버렸던 그 시절, 저는 극도의 불안과 고통을 겪으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라는 질문을, 잠을 자면서도 천장에다 지껄여대곤 하였습니다. 날카로운 천장은 그저 저를 향해 쏟아져 내릴 뿐이었지요.

고통스러웠습니다. 참으로 고통스러웠지요.

 제가 이혼한 40대 남자라는 외적 조건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만, 저는 더 이상 불행이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이제는 행복해 해되는 지, 그래도 될 자격이 있는 지를 간혹 의심, 고개를 갸우뚱 거리기도 하지요. 그래요. 저는 주어진 외적 조건의 처연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더 이상 그것은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외부적 자극이 될 수 없었습니다. 불행의 본질은 밑도 끝도 없이 대책없던 저의 집착이었지요. 저의 오랜 지기 하나는 저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도 일어나지 않는다며, 인연을 만들지 말라는 충고를 가끔씩 하곤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다는 말들하곤 하지요. 저의 지기와 그들은 행복과 불행을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라 여기는 듯했습니다. 그들의 교집합은 단단하게 속박된 쇠사슬처럼 보였지요. 저 또한 외부적 조건을 변화시킬 수 없었기에 스스로에 대해 체념하거나, 스스로를 가벼이 여겼습니다. 삶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니, 흩어져버릴 결심도 쉽게 잉태되는 것만 같았지요. 그리고 어느날 정말이지 사라져버릴까 두렵더군요. 타인의 행복과 불행의 기준을 감히 정의하려는 시도는 무례하고도, 무의미한 일인 것만 같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영역은 문학이, 행복의 영역은 종교나 철학이 주로 다루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잘 익은 가지와 오이를 골라봅니다. 요즘 너무나 덥다며 손사레 치던 친구가 어이없게도 잡초 뽑는 일을 돕겠다고 방문을 선언합니다. 비논리적이지만, 그저 웃을 수 밖에 없는 그의 다정하기만문장에 행복해지는군. 어떤 일이든, 어떤 인연이든 따듯한 쪽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이제는 물길을 낼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저 부유하고 있지만은 않을 저를 생각합니다. 그것이 누구함께이든 말입니다.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 온 죄로 당신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프랑수아즈 사강」'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중.


 친구는 토요일 오전 11시까지 오겠다고 하더군요. 시간이 정해지면 무얼 준비해야할지 고민하면서 부산하게 움직이며, 기쁘기 때문에 기다림은 시작됩니다. 어찌보면 수고스럽거나, 귀찮아 보일지도 모르는 기다림의 시간에서 특별한 의미는 잉태되지요. 오랜 지기의 말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테니, 이 시간들은 가뭇없이 그저 흘러가버렸을지도 모르겠군요. 행복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으나 우리는 그걸 발견해서 오래 보고, 곁에 두려 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시뻘건 눈을 부릅뜬 불행의 얼굴만을 되새기길 반복하며, 열광하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인간의 근원적인 비참함은 아마도 속수무책으로 다가오는 불행의 기억들에서 후회와 집착으로 스스로를 구조하지 못해서인 듯합니다. 지루하고도, 지난했던 장맛비에 가지와 오이들 일부가 다자라지 못한 채, 썩어 문드러졌지만, 묵묵히 견뎌낸 가지와 오이로 친구에게도 행복을 전하겠다 결심하였습니다.

 가지의 부드럽고 뽀얀 속살과 오이의 아삭함으로 가지 구이와 가지 튀김을 만들어보려구요. 마트에서 이천원이면 살 수 있는 것들과는 사실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맛도, 모양도 못생겼다고 그대는 말씀하실지 모르겠지만, 이들과 함께한 시간 속에 제가 웃고, 울었던 기억들이 깨끗한 물다발처럼 길어 올려지니, 그들은 너무나 특별한 것이 되었지. 비록 '소로우'의 '월든' 호수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에겐 이곳이 '월든'입니다. 곳에서 태어나서, 자라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순하고도 무해한 자연의 질서는 인간인 에게는 깨끗한 행복과 사랑의 대상입니다. 평상에 누워 땅 속 깊이 물을 어올리는 감나무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습니다. 감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도타워지는 금빛 태양과 파란 하늘도 세어보지요. 눈을 감아도 여전히 보이는 빛은 강하고, 따듯하며, 단순합니다. 자연의 단순한 가르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경전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하늘에게 행복하게 해달라며 빌거나, 불행하다며 원망과 푸념을 하곤 하지요. 하늘은 억울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계절에는 하늘 스스로도 하루에 몆번씩이나 웃었다, 울었다를 반복해야 하는데, 자신에게 책임을 넘기니 하늘은 얼마나 억울할까요. 그런 하늘이 참으로 안쓰러워 행복을 빌거나, 원망하기보다는 피어올랐다가, 흩어졌다 하는 하늘의 하얀 구름을 보며. 참 예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하늘도, 저도 행복해 지는군요.

 구름이 내려 앉습니다. 자꾸만 시계를 보게 됩니다.


 친구가 마른 입술로 나타났기에, 입술을 꼭 깨물고 걱정스레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팀장과 과장 때문에 요즘 출근하기가 싫다며, 하소연을 길게 늘어 놓습니다. 그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뜨락에서 따온 가지를 다듬었어요. 가지의 속뜰은 너무나 부드러운데, 왜 이리도 날카로운 꼭지를 갖고 있는 걸까요. 손이 베일만큼 모질게도 뾰족한 건, 아마도 스스로가 다칠까 두려웠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서있다가, 태어나지도 않은 불행이 두려워 어느새 날카로운 마음으로 곤비함의 길을 걸었던게 아닌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되는군요. 가지 구이를 위한 가지는 길고 얇게 자르고, 가지탕수를 위해서는 짧고 두껍게 잘랐어요. 자른 가지들에 소금을 뿌리고 놓아두면, 심연의 말들과 울음들을 쏟아내듯, 물이 흥건하게 베어올라옵니다. 가지에서 흘러나오는 수건으로 닦고 있자니, 가녀리고 연약한 마음으로 골수가 흔들릴만큼 숨죽여 울던 그 시절이 떠오르는군요. 이제는 조금만 울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울음은 살아있음을 명징하게 말해주는 언어인 것만 같습니다.

국간장과 올리고당, 고추가루와 참기름을 넣어 구이 양념장을 만들어 가지에 발라 구웠습니다. 눈을 깜빡거리며 옆에서 지켜보는 친구가 있어 시골은 고소해져만 가는군요.


'나쁜 사람들이네. 그런데 그 사람들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해? 그 사람들은 너에게 중요한 사람들이야?' 

'하나도 안 불행하고, 조금도 안 중요해.'

'그럼, 평상에서 책보며 놀고 있어. 다 되어간다.'


 친구는 저와 같은 직종의 일을 하며, 책을 좋아하고 글을 참 잘 쓰기에, 가끔 저는 그에게 샘을 내기도 하지요. 요즘은 소설 쓰기를 연습 중이라 하는군요. 저도 소설을 조금씩 끄적거리기에, 걷는 거리에서, 견디는 일상에서 보고, 듣고, 겪는 인상 깊은 장면들을 그 자리에 서서 기록하곤 합니다. 바라보는 시선이 같아서인지 그와의 대화는 저를 충만하게 하고, 시간의 흐름을 지워버리게 하지요. 얼마전 친구의 제안으로 친구와 함께 문예창작학과에 입학 원서를 제출했습니다. 40대가 되었지만, 꿈은 여전히 존재하였고, 느리지만 조금씩 배워갈 수 있어 기쁘군요. 누군가에겐 전혀 흥미롭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일일 수 있겠지만, 떳떳하게 흘러가는 강물이 되어가는 듯한 기분입니다. 그리고 같은 동문이 되었다고 웃어주는 친구있고, 입을 크게 벌리고는 멋지다라 말해주는 첫째 녀석이 있어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길이 두렵지가 않습니다. 오랜만에 다녀가는 심장의 설렘과 어깨의 떨림이 참으로 낯설기만 하군요. 심연에서 웅크리고 앉아있던 빡빡머리를 한 꿈 많은 소년이 고개를 들고서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행복이 뭐 별거 있을까요. 그냥 좋아하는 걸 먹고,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이유없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행복이겠지요. 하지만 이토록 간단한 일들을, 왜 이리도 멀리두며 살아온 걸까요. 좋았던 순간들을 호주머니 속에 오래 간직하고, 주어진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일이 제 삶에 대한 헌사가 아닐까요.


 튀김가루와 전분가루를 섞어 짧게 자른 가지에 빈틈없이 묻혀주고, 식용유에 가지를 넣어 단단하게 튀겨내었어요. 여린 마음을 조금씩 견고하게 만들고자 글을 튀기기 시작했으나, 글은 어느새 삶을 강건하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에는 행복추구권이 있다하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행복하려 애써야할 의무도 있습니다. 단 한번 밖에 없는 각자의 삶에 대한 작은 예의를 우리 헌법은 선언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프랑수아즈 사강''브람스를 좋아하세'에서 주인공 '''시몽'을 떠나보내고, 사랑이 없는 일상으로 돌아가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문장이 떠오릅니다.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


래 그런 것이라며, 불행한 상황과 시들어 가는 시간에 순응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저항하거나, 최소한 반항하는 자들로 세상은 나뉘는 듯합니다. 세상은 언제나 '안되지?' 라는 의문을 던지며, 상황과 시간을 거스르며 도전하는 자들에 의해 더 나은 쪽으로 흘러가는 것만 같습니다. 진간장과 올리고당, 레몬즙과 식초, 그리고 고추가루와 전분물을 섞고, 백오이와 당근, 양파를 담궈 끓여서, 가지 튀김의 탕수 소스를 만들었습니다. 친구는 가지탕수에 무척이나 행복해 하는군요. 별 것 아닌 재료로, 볼품 없는 솜씨이지만, 새콤한 행복을 전할 수 있어 저도 행복하군요. 미소한 행복이라도 행복을 전하려할 때, 더 행복해진다는 말은 틀림없는 진리인 듯합니다.

 친구가 돌아가고, 늦은 밤, 달걀을 삶았어요. 삶은 달걀을 저는 너무나 좋아해서 한번에 다섯 개도 거뜬히 먹습니다. 달걀을 삶을 때면 갑작스레 들이닥치는 통점 때문에 가끔 당혹스럽기도 하지요. 달걀을 삶아 먹는 것이 아깝다며, 그렇게 먹지 말라던 누군가의 말에 아무 대꾸도 못한 채, 멀뚱히 서있기만 했던 짧은 기억은 여전히 저를 붉어지게 하고, 수치스럽게 만드는군요. 겨울이 다시 봄이 되는 과정은 평온하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시도와 끊임없는 노력들이 필요하지요. 불행의 기억들을 잘 떠나보내고서, 떳떳하게 살다가, 꿈을 만나러 가겠습니다. 우리에게 체념할 권리 따위는 없습니다.

덧.

가지구이: 가지, 대파, 고추, 소금.

가지구이 양념: 국간장 두 숟가락, 올리고당 한 숟가락,

                           다진마늘과 고추가루 반 숟가락,

                           참기름 반 숟가락.


가지튀김: 가지, 전분가루, 튀김가루.

가지튀김 소스: 오이, 당근, 양파, 고추가루,

                          진간장과 식초, 굴소스 세 숟가락,

                           올리고당 네 숟가락과 전분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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