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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Jul 14. 2023

심장이 찢긴 어느날. _ 오이냉국과 오이소박이.


 눅진한 장마는 언제쯤 마침표를 찍을까요. 누군가의 눈물도 빗방울을 따라 어디에선가 흐를까요. 사실 오늘 저는 조금 울어야 했고, 많이 속상해야 습니다. 한 사람이 저에게 찾아와 표현할 길이 없다는 , 억수같이 울었지요. 창 밖의 비도 다시 거세게 내리며, 창문을 흔들어대더군요. 정제된 부탁이 아닌 처절한 요구가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굵은 빗줄기와 함께 흙탕물이 된 저를 땅으로 침잠시킵니다. 싸늘한 장마가 참으로 길기만 하군요. 지친 듯한 이 슬픔이 그녀와 저를 어디로 데려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장마와 그만 하고 싶은데, 그녀는 아직도 그럴수가 없나봅니다. 찢겨진 그녀의 심장은, 뽑혀진 하얀 휴지 조각 만큼이나 가냘프게 흩날립니다.

덥군요. 참으로 덥습니다.

물기 먹은 더위는 견디기가 참으로 지만, 그녀의 깨어지고 흩어지는 말들을 주워담아 봉합하기가 더 힘이 들더군요. 그녀의 흐느낌에 이끌려 창에 꼭 붙들린 빗방울을 스치듯 바라봅니다. 빗방울의 흔적은 닦아내지 않는 한, 먼지와 혼합되어 볼품없는 흐릿한 자국을 남기겠지요. 빗방울의 흔적에 시선이 닿을 때면, 한 여인이 떠오를 것만 같습니다. 지워내지 못한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처절하게 몸서리치던 한 여자를 말입니다. 철저하게 믿었고, 처절하게 배신당한 그녀의 아픔은 상흔으로 남아 트라우마라는 권총 한자루를 쥐게 된 듯합니다. 이제는 괜찮을 거라 믿었는데 그의 목소리와 눈빛을 스치는 것만으로도 여전히 까무러칠 것만 같다는 그녀의 힘겨운 말들 참혹기만 하군요. 정신과 치료까지 받도록 만들었던, 그와 그녀의 관계를 몰랐던 저는, 그녀의 장전된 트라우마에 아마도 방아쇠를 당긴 듯합니다. 공간그들을 두고야 말았으니, 어찌해야 좋을까요. 끝 간 데 없이 쏟아지는 장대비를 그저 넋놓고 바라볼 뿐입니다.


'그런 사람때문에 언제까지 도망다니시려구요.

 그때 아팠던 것도, 아직까지 아픈 것도

 당신 잘못이 아니니 괜찮습니다.

 대신 런 사람이 당신을

 잠식시키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도저히 못버티겠을 때, 그때 도와드리겠습니다.

 부디 지지마세요.'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결심인지, 체념인지 알아볼 수도 없는 무언가를 깨물고서 휘청거리며, 일어서는 그녀를 무겁게 배웅했습니다. 발끝만 바라보다 담배 한개비를 꺼내어 물어야 했지. 한개비. 또 한개비. 폣병걸린 글쟁이가 되고 싶은 걸까요. 담배를 연거푸 물어대어도 마음이 진정되지가 않는군요. 하얗게 번져가는 연기에 가느다란 한숨을 실어 습이 가득한 하늘로 띄워보냅니다. 몇 번의 계절이 눈물이 되어 떨어져야 할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저도 가끔은 떨어져 내리 말입니다.


지난해 뜨락에 가득했던 해바라기들이 곳곳에 씨앗들을 떨구어 올해는 난데없는 에서 해바라기들이 피어났습니다. 텃밭 중간에서, 매실 나무 옆에서, 수돗가 귀퉁이에서 피어난 해바라기들의 보송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아이의 마알간 미소를 바라보는 듯했습니다. 그런 해바라기들의 큰 키와 육중한 무게는 하릴없이 쏟아지는 장대비 아래에서 대책없이 쓰러지고, 꺾여버리고야 맙니다. 푸념섞인 장맛비에 의지가지 없이 쓰러진 해바라기들을 세우고 일으켜도 보지만, 한번 드러누운 해바라기는 다시는 햇살을 찬미하지 않는군요. 고개를 들지 않겠다는 단호결심과 순수한 자존심은 끝내 해바라기를 죽음으로 인도하지요. 별빛 하나 남아있지 않은 까만 밤 고개를 떨군 채 염분 짙은 눈물을 적시는 해바라기는 처연함과 두려움으로 그렇게 응고되어 갑니다. 단 한번의 상처와 지워지지 않는 상흔은 해바라기에게 트라우마가 되어버렸나 봅니다.

트라우마(Trauma)는 외부로부터의 큰 충격이나 강한 인상으로 인한 정신적인 손상을 의미합니다. 의학적 용어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도 표현하더군요. 일상적인 생각과 감정상태를 벗어나 무의식적으로 어떤 사건에 압도되어 있어 비슷한 상황이나 사물, 사람에 의해 부지불식간에 신체와 영혼이 잠식되는 증상을 트라우마라 한다면, 저 또한 버려짐의 트라우마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요. 잠시만 아픈거라 믿었었지만,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대낮의 불안과 한밤의 우울은 사람들의 의미없는 말들과 방구석 모서리를 통해 수시로 드나들며, 상처를 덧나게 하였고, 사람을 만나는 일을 버겁게 하였지요. 이미 생겨나 버린 상처와 상흔을 아물게 조차 하지도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은 트라우마라는 살기어린 꽃을 피우더군요. 줄줄이 늘어선 녹색빛 알코올들과 날선 언어들의 강물에서 그저 의지가지 없이 흘러다녔으니, '브레히트'의 말처럼 그 시절의 저는 죽은 물고기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산 것들은 그저 가볍게 떠다니지만은 않으니 말입니다.


갈라지는 현실 앞에서 어둑한 허공을 떠돌던 의 눈빛은, 소리없이 베갯잇을 적시고, 날카로운 천장을 추락시키곤 하였지요. 어느날 달빛을 따라 잠에서 깨어난 저는, 유리잔에 물을 마시다가 척추뼈를 들썩거리는 저를 말없이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가 누구였지.'


지루하리만큼 지친 듯한 안쓰러움흐릿한 빛을 삼키는 조명등을 켜고서 펜을 들어 상처를 비춰보았지요. 내가 누구였던가를 떠올리며 처음에는 문장을 잇는 일이 처참하리만큼 고통스럽더군요. 하지만 요란스레 자꾸만 찔러대 이윽고 검지에 굳은 살이 박이었고, 아프지가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추스리고 언어라는 걸 이용해 치유하겠다고 다짐한 그 어느날부터 삶과 고통에 대한 생각으로 제 자신을 줄곧 두드리다보니, 이제는 고통을 잃어버릴까 끊임없이 슬픔을 찾아 헤매이곤 합니다. 누구나 그런 상황을 겪으면 그럴 수 밖에 없을 거라 지극히 평범한 인간적인 인식, 비정상적이라 여기던 것을 정상적으로 마주하려는 의지,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이유가 있으리라마음. 이러한 것들을 문장으로 이어가다보니 어느새 트라우마는 옅어져만 가고, 삶은 단단해져만 가더군요. 사나운 문장들이 두려웠으나, 이제는 고통의 가치를 상실하는 일이 두렵기만 합니다.


'화가의 영혼과 지성이 붓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붓이 그의 영혼과 지성을 위해 존재한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캔버스가 그를 두려워 한다.'

 - '반고흐', '영혼의 편지' 중. -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면, 비록 모든 고통을 억제하지는 못하겠지만, 재생과 회복의 힘이 우리를 그저 강물에 휩쓸려 떠다니게 하지만은 않으리라는 견고믿음이 생겨난 것만 같습니다. 저를 찾아오는 친구의 마음을 저를 향한 동정으로 왜곡하지 않고서 황혼녘 호수의 순수한 복숭아빛 윤슬을 닮았다고 이제는 생각합니다. 관계의 회복은 자기폄하를 떨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되는게 아닐까요. 부서지는 석양빛으로 멀리서 걸어오는 초입의 사물을 분간할 수는 없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었습니. 저를 위해 다가오는 그림자라는 걸 말입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리므로.'

 - '존 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중. -


축축한 여름의 온도로 패어진 흙들이 모질게도 들러붙은 이들을 구조하겠다 마음먹었어요. 찾아오는 손들은 무조건 밥값은 해야한다는 서재의 법칙에 따라 친구는 오이와 고추, 부추와 대파수확하떠밀리듯 걸어 갑니다. 신체를 움직이고, 땀을 흘리며, 자연과 교감할 때, 스스로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깨달을 수가 있지요. 저도 고슬고슬하게 흩어지는 까만 흙을 만지며, 자연이 너그럽게 내어주는 위로와 기쁨의 언어들에서 결국 저는, 저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자연과 문장이 저를 존립하게 하였고, 다시 태어난 꿈이 저를 보행하게 하였지요. 호수에 내려앉아 윤슬이 된  달빛이 회색빛으로 물들여 가는 시골서재에서, 저는 퇴근 후에 작물을 가꾸며, 나무를 어루만집니다. 쏟아져 내리는 별빛들과 달빛에 반사된 몽글몽글한 하얀빛 구름 아래에서 농사를 짓고, 글을 쓰는 일은 참으로 호사스러우면서도 황홀하기까지 하지요. 온 우주가 저를 향해 달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명멸한 진실은 삶의 주인은 저였으며, 우리였지요.

끈질기게 늘어지는 장맛비가 저와 친구를 위해 잠시 쉬어가려나 봅니다. 비가 내린 뒤의 햇살은 더없이 찬란하고, 사나운 겨울을 쫓아 찾아오는 봄은 참으로 따사롭습니다. 그리고 다시 비가 내리고, 겨울이 올 것이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고통을 연상시키는 자극단어들 또한 직면하고, 소리내어 또박또박 읽을 때, 아득히 멀어져만 가겠지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있다면 저의 문장들이겠지요. 그래서 글을 쓰는 일을 저는, 멈출 수가 없습니다.


더위에 지친 고마운 친구를 위해 오이 냉국과 오이 소박이, 그리고 고추장 불고기를 준비하려 합니다. 오늘은 손이 많이 갈 듯하지만, 뭐 어떤가요. 그 시간들이 저의 삶을 만들어주니 말입니다. 제가 잘 마시지 않는 차가운 맥주도 사두었지요. 선풍기 바람에 입을 크게 벌리고서 맥주를 마시는 친구의 모습에 그저 웃을 수 밖에 없습니다. 친구가 '노르웨이의 숲'을 꺼내어 읽는 동안, 저는 건미역을 식초물에 담구어 불리다가 조금 데쳐두었어요. 아삭아삭한 오이의 식감이 살아있도록 오이도 얇게 잘라 올리고당과 소금을 넣어 절여두었습니다. 찬물에 소금과 올리고당, 그리고 식초를 넣어 간을 맞추고 청양고추를 듬성듬성 썰어 매콤한 맛을 내어봅니다. 데치고 절여둔 미역과 오이, 그리고 얼음과 통깨를 넣어 만든 오이냉국을 친구에게 한사발 내어줍니다. 목을 지나 시원하게 넘어가는 소리와 냄새, 풍경들. 언젠가 저에게 공허함이 다시 찾아오게 된다면, 지금 이 순간이 바람처럼 다녀가며, 삶을 다시 붙들어 주겠지요.

오이 소박이를 만들려고, 오이 껍질을 식초물에 우리고 박박 문질러봅니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십자형으로 칼집을 내었어요. 잘게 썬 부추와 양파, 다진 마늘에 새우젓과 멸치액젓, 설탕과 고추가루, 그리고 통깨를 넣어 만든 양념장으로 칼집을 낸 곳을 메꾸었습니다.


'나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내가 존재하고 네 곁에 있었다는 걸.

 언제까지나 기억해줄래?'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 -


 참담하게 도려내진 우리의 마음도 맛깔나게 버무린 새콤달콤한 추억들과 의미들로 메워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작은 예의로서 의미를 부여하고 채워야하는 일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지극한 의무인 듯합니다. '노르웨이의 숲'에서 '나오코'의 부탁을 결국 들어줄 수 있게 '와타나베'의 이별 의식이 회상과 글쓰기였듯, 고통에 대한 적절한 작별과 그곳을 의미로 다시 채울 때, 우리의 상처는 아물어 가지 않을까요. 속수무책으로 다가오는 고통을 알지 못하고, 한밤에 소주를 마시며 고뇌해 보지 않은 자와는 친구하지 않겠다는 친구를 바라보며 제가 가진 버려짐의 트라우마에 이제는 작별을 고할 수 있겠다는 예감이 니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커져만 가는군요. 매미는 얼마 살지 못하지만, 짧은 한 생을 소리높여 살아가지요. 친구도, . 여린 우리는 죽은 물고기가 아닙니다. 회색빛 구름들이 가라앉았다 떠오르길 반복하는군요.

길었던 장마도 곧 끝이 나겠지요.

덧.

오이소박이 : 백오이, 부추, 양파,

                      멸치액젓과 새우젓, 설탕 한 숟가락씩,

                      매실청 세 숟가락, 고추가루 다섯 숟가락,

                      다진 마늘 및 참깨 두 숟가락씩.

오이냉국    : 백오이, 건미역, 청양고추,

                      식초, 올리고당, 소금, 통깨

고추장불고기 : 돼지고기 목살, 대파, 양파, 고추

                          고추장, 고추가루, 진간장, 다진마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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