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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Oct 27. 2023

우리의 삶은 한 편의 시로 수렴한다. _ 광명 읽을마음


나는 슬펐으나, 시는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짙은 안개가 흐드러지게 피어난 아침이 겨울을 불러다. 나무들은 차디찬 겨울을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고, 말라버린 잎새조차 한 잎 또  잎 떨어뜨렸다. 턱을 가만히 괴고 떨어지는 순수를 목격하는 일은 행운이었고, 그것들에게서 어떤 다짐 같은 걸 발견하는 일에 나는 목을 었다. 빤히 바라보다가 간혹 운이 좋을 때면 추락이 땅으로 몸을 던지는 찰나에 문장이 떠오르곤 하였다. 인연이 생산되는 순간에 문장을 짓는 일이 시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삶이 한 편의 시이자 노래라 읊조렸. 시라는 신의 언어를 만들어 내는 시인들의 까아만 심연은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기형도' 시인을 생각한다. 짧은 생을 살았으나, 그는 슬프지 않았을 것이다. 짧았던 삶만큼이나 그의 문장은 슬펐으나, 누군가를 한 연민들로 채워져 있기에 슬프지가 않았고, 함께 견디어 가자는 결심 같은 말들려오곤 하였다. 그의 이름을 매만지다가 먼 길을 가보겠다는 결심을 하니, 주홍빛 홍시 하나가 툭하고 떨어진다.

나는 이를 닦아내고, 닦아내 할 것이다.


기형도를 만나기 위해 기차에 올랐다. 계획도 약속도 없는 기차를 타는 일을 자뭇 멋스럽다 여기던 나에게 다정한 친구가 동행하는 은 조금 어색했지만 따듯하였다. 슬픈 시를 만나고자 했으나, 슬퍼도 슬프지가 않았다. 가을볕 아래에서 들어오는 기차를 이윽히 바라보고 있을 친구의 얼굴을 상상하니 너머로 화사한 가을 하늘만이 차창에 부서져 내렸다.

나는 왜 시를 쓰고 싶다는 욕망에서 기형도를 떠올렸던가. 누구나 어둠을 품고서 살아가지만, 우리는 누구에게도 어둠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기에 창백하기만 한 그의 시는 사람들을 끄덕거리게 한다.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어느 한 시절, 시리디 시린 절을 만나기 마련이다. 시의 가치는 고단한 현실을 노래하면서도, 그래도 함께 살아내 보자는 것에 있는 지도 모르겠다.

리하여 나는 29세의 나이로 종로의 한 극장에서 요절한 그의 시를 사랑하였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중. -


시간을 거스르는 듯 한 기차 안에서 슬픔을 생각하며 가여운 이별들을 가난한 문장으로 불러내었다. 완성하지 못한 시를 못마땅해하던 기차는 어느새 광명역으로 나를 인도하였다.


'나는. 어느 날 이별을 만났다.

 가여운 이별과 이별할 만큼 강하지 못한 나는,

 여전히 이별과 살아간다.'

  - '어느 날, 이별을 만났다.' 중. -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가 헤드폰을 낀 채, 보리밭 사이에서 미소 짓던 엔딩 장면을 떠올렸다. 이별은 아프고 아파서 눈물이 나오고 터져 나오는 일인데, 적막의 공간에서 피어난 그의 미소는 무엇이었을까.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며 처절하게 소리 지르던 주인공 '상우'를 생각한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단지 이별에 대한 이별을 하지 못한 존재가 서성이며 슬퍼하고 있을 뿐이다. 상우는 이별에 대하여 별을 고하였고, 비로소 이별로부터 자유로워진 자신에게 웃어줄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별조차 사위고 나면, 적요함에서 다시 찾은 자신과 삶을, 그리고 다시 찾아올 사랑 환대하게 되는 것인지도.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그저 만나야 할 이별을 만난 것뿐이다. 그래서 매일을 이별하며 살고 있다고 어느 시인이 노래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겨울은 가고, 봄은 다시 온다. 그리고 다시 봄날은 간다.

만개한 꽃을 닮은 사랑과 모든 생명을 잘 돌려보내는 흙을 닮은 이별은 그렇게 서로를 구원한다.

이별과 살아가는 법을 배우다가 나는 간혹 문장들을 만나곤 하였기에 이별은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오느라 고생했다는 그의 얼굴 너머로 하늘이 보이지가 않았다. 가늘게 웃으며 주변을 살피자 비로소 하늘도, 구름도, 바람도 흘러가고 있었다. 너무나 기쁜 듯 웃으며 우리는 광명 소하동에 있는 기형도 문학관으로 향하였다. 백한 금빛 햇살이 발아래로 배달되었다.

기형도 시인은 어릴 적 녹녹지 않은 삶을 온몸으로 맞아야 했으며, 그의 시는 고통과 상실 속에서 잉태되었다. 시인의 아버지는 간척 사업을 실패하며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공장에서 일하던 누나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가난한 그의 손을 시로 인도하였다. 그가 죽어버린 같은 해에 유고시집인 '입속의 검은 잎'이 출간되었다. 그의 시에는 고단한 삶의 풍경이 곳곳에 담겨 있었기에 시리고 아렸으나, 그의 시는 고통을 먹고 자란 듯하였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면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기형도', '엄마 걱정' 중 -


모든 것이 차갑고 눈시울만이 뜨겁던 시인에게 고통은 무엇이었을까. 시도, 그림도 별로 아는 것은 없지만, 기형도를 떠올릴 때면 빈센트 반 고흐가 생각나곤 하였다.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삶이었지만, 태양을 향해 삶을 표현했던 위대한 예술가인 반 고흐 또한, 죽음 앞에서야 그의 작품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며 애착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의 창조물은 세상 밖으로 버려진 것만 같은 지독한 외로움 속에 있는 이들에게, 나 또한 아프지만 우리 함께 견뎌보자라고 말을 걸어온다. 언어를 질료로 삼은 기형도 시인이 격렬하게도 붙잡았을 고통과 고뇌는 아이러니하게도 위로와 연민이 되어 산재한 마음들에게 불꽃을 피웠다. 

어지러운 나는 가만한 그에게서 신의 불꽃을 보았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 '기형도', '빈 집' 중. -


시인이 속삭여주는 말을 따라 걷다 보니 '읽을 마음'이라는 동네책방에 어느새 닿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골목에 시집을 주로 다루는 낭만적인 책방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았으나, 그렇기에 책방과 시집그곳에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소란스러운 삶을 살아가다가 우연히 만난 시집 한 권이 내 삶을 다른 길로 옮겨가 줄 것만 같은 설렘을 그려볼 수 있을 듯하였다.

생일책을 모으는 책방. 읽을마음은 생일별로 작가들의 책을 큐레이션 하고 있었다. 11월 14일에 태어난 작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와 같은 날에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온 작가의 문장이 나와 닮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블라인드 된 파스텔 색 봉투 안에 어떤 책이 담겨있든 나는 그 책을 사랑할 것만 같았다. 같은 생일이라며 호들갑스럽게 부둥켜안아보는 것만으로도 고독한 삶의 길이 그저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깨끗하고 투명한 유리문을 지나면 집들이 단정하놓여 있다. 먹고 살아가기에도 버거운 시절을, 오늘과 내일이 다르지 않은 그런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시집을 선물해 준다면 아마도 어리둥절해하거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합리적인 웃음만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아무렇게나 쑤셔 넣어둔 시집을 어느 날 허둥지둥 찾을 것만 같은 기대감을 그에게 드러내진 않는다. 사랑, 희망, 용기, 슬픔, 황폐. 이런 단어들이 우리 삶에 숱하게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음을 이 시절은 애써 외면하지만, 삶은 원래 그런 거라며, 괜찮다고, 어느 날 시는 속삭일 것이다.

그리고 시와 함께 안도한다.


읽을마음에는 시집뿐만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 소설부터 세계문학전집 등 인문학 서적많았으나, 나희덕과 박서영, 그리고 정호승과 박준 시인의 시집에 시선이 머물렀다. 고독과 고뇌의 아름다운 잔해들에 손끝을 가져가며, 조금 더 침묵하고, 조금 더 약속을 줄이겠다는 각오 같은 것을 해보기도 하였다.

시인은 고독했으나, 시는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게으름을 피우며 드러누워 시집들을 쌓아두고 밤이 이울도록 한 권 한 권 읽을 것을 생각하니 추상적이기만 한 행복이 선명하게 서있는 듯하였다. 친절한 책방지기님에게 안녕을 말하고, 시집을 옆에 끼어 책방을 나왔을 땐, 어느새 복숭아빛 석양이 지평선에 드러눕고 있었다. 저녁 먹자는 친구의 향기도 이와 같았기에, 온 세상은 복숭아빛이었다.


'내가 죽는 날,

 어느 이의 무릎을  고요를

 맞이하고 싶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흩날리는 그런 날이면

 조금 더 좋을 것이다.'

   - '어느 날' 중.-


괴테의 말처럼, 노력하는 한 나는 기꺼이 방황하겠지만, 이런 시도 시라 부를 수 있다면, 감사히 지어먹겠다.

우리의 삶은 결국 한 편의 시로 수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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