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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Sep 06. 2024

Epilogue. 참으로 다행입니다.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페르난도 페소아」   


 싸늘하게 내려앉은 아침 공기에 호박잎들이 조금씩 누런 빛으로 말라가고 있습니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남은 건 볼품없는 모습이라고 무표정한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돌아올 봄을 위한 것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바스러지는 잎들조차도 겨우내 굳어버릴 흙을 지켜내려 안간힘을 낼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름 한철 머물렀던 봉선화도 씨앗이 되어 떨어지고, 뒤를 이어 봉선화 잎들이 하나, 둘, 그 자리를 덮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름이 다시 찾아오면, 그 이상의 봉선화를 피워내겠지요. 속이 문드러지는 계절이 또다시 찾아와도 그 또한 꽃을 피우기 위한 인내의 시간임을 이젠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밥을 지으며, 제 안에서 차오르던 그리움과 안타까움, 연민의 감정들로 뒤섞이던 이야기들. 온전히 아름답다고만은 할 순 없겠지만, 밀알만 한 인연들일지라도 조금씩 쌓이고 쌓인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들. 눈이 부셔 차마 바로 볼 수 없는 이야기들과 마음이 아려 차마 모른 척할 수 없던 이야기들. 마음에 수많은 무늬를 남긴 인연들의 이야기가 퇴적되며, 지금껏 저를 살아오게 했습니다. 비록 스쳐 지나간 인연들일지라도 제가 부끄럽지 않게 모른 척, 못 본 척, 그냥 지나가줘서 고맙다는 말을, 또 잠시 머물렀다 떠나갔지만, 따듯했던 그 흔적만으로도 고맙다는 말을, 그리고 끝내 곁을 지켜준 인연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늦었지만, 하고 싶습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는 기억과 시간들을 간직한 채, 오직 저만이 살아낼 수 있는 귀한 삶을 어찌 되었든 살아오게 해주었으니까요.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그러하듯, 결핍과 고통, 절망을 피해 갈 수는 없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특별한 것이고, 그 뒤를 따라 온기, 충만, 행복. 이런 귀한 단어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살아서 꿈틀거릴 수 있는 존재함에 대해 그저 감사합니다.


 가을의 향기가 짙어집니다. 가을은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고, 이어질 봄을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여린 새순이 중력을 거스르며 어여쁜 얼굴로 일어서는 봄은 그저 평화롭게 찾아오지만은 않습니다. 가을에 흙으로 추락한 씨앗들이 다시 꿈을 꾸며 기다리다, 때가 되면 몸을 비틀고, 두꺼운 껍질을 찢고서 솟아 올라야 하지요. 그런 씨앗에게 말해주고만 싶습니다. 너는 지금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날고 있는 거라고. 꽃이 되기 위해 하늘과 바람과 땅과 물이, 이 모든 우주가 너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거라고. 그래서 조금 아플 때도 있겠지만, 삶은 기다려 볼 만한 거라고.

 가끔 친구는 저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취기가 오를 때면, 왜 나에게만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거냐며, 슬픈 눈을 하곤 합니다. 그럴 때면 눈물이 고인 친구의 눈을 피하며 저는 우물쭈물 대답하곤 하지요.  

   

 ‘그래도 살아볼 만 하지 않냐. 누구에게나 삶은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름답기도 하니까.’  

   

 또, 어머니께서는 가끔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합니다.     


 ‘내 삶을 소설로 쓰면 열 권도 넘을 거다.’     


 그리고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같은 말을 하시는 분들을 만날 때면, 모든 삶은 희극과 비극의 끊임없는 자리바꿈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시지푸스’의 바위처럼, 수없이 들어 올리고 기어올라도 다시 처참하게 저의 육신을 짓이기며, 지나가는 삶을 엎드린 채 바라볼 때면, 가끔 붙잡고 따져 묻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 또한 없다는걸, 잘 압니다. 삶은 그저 흘러갈 뿐이니까. 아래로, 또 그 아래로. 땅을 향해서. 그럼에도 좋든, 싫든 그저 흘러가 버리는 삶이 안타까워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흙을 딛고서 걸어오던 세월이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의 세월을 뒤돌아보면, 마냥 행복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찮은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는 있을 듯합니다. 그래서 저도 어머니 말씀처럼, 제 삶에 대한 소설을 열 권 이상 쓰고 싶기도 합니다. 글을 쓸 때면 생각에 잠깁니다. 저를 가로막고 버티고 선 거대한 바위라 여겨지던 것들도 가만히 살펴보면, 그저 저의 집착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부와 명예에 대한 집착,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집착, 행복해 보이려는 가정에 대한 집착, 타인과 비교하려는 집착. 이런 지리멸렬한 집착들이 홍수가 범람하듯 둑을 무너뜨리고, 광활한 들녘을 갈아치우면, 속수무책으로 잡초가 자라나듯 허황된 욕망들이 들끓게 되더군요. 욕망들은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며, 가져보지도 못한 것들이면서도, 제가 잃어버렸다는 착각 섞인 상실감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여전히 저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여운 인간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자연의 너그러운 품에서 글을 쓰고 요리를 배우며, 조금씩 삶을 배워 나가는 지금의 제가 참 좋습니다. 결코 당연하게 여겨지는 저의 것은 어디에도 없었으며, 곁을 내어준 이들이 당연한 것도 아니라는 걸, 이젠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필연적으로 어느 한 시절이 떠오르곤 합니다. 매번 떠오르는 시절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그 시절을 어떻게 지나왔던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허공으로 한 발을 내딛어야 할 때도, 차갑게 미끄러져 내리는 손을 그저 느껴야만 할 때도, 속상한 마음으로 둥글게 몸을 말아 밤을 지새워야만 할 때도. 그럴때면 항상 머리맡에는 책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제가 쓴 글들도 제 옆에 가만히 누워주었습니다. 고독, 슬픔, 이별, 고통, 불안, 불행, 초조... 이런 감정들이 느껴질 때면, 제 글을 다시 펼쳐 읽고, 고치고 다듬었습니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저 혼자서, 저만의 힘으로 지나왔다 여겨지던 순간들은 단 한 문장도 없었다고 말입니다. 문장과 행간 곳곳에서 누군가의 다정한 언어들과 숨소리가 느껴집니다. 크던, 작던, 저를 일어서게 하고 나아가게 해주던 마음들. 바쁜 와중에도 제 글을 읽어주던 눈빛들, 생일이면 어김없이 날아드는 메시지들, 따듯한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서 나누던 삶의 대화들. 이 모든 것들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글을 쓰게 된 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삶의 곳곳에 그런 다행스러운 순간들이 별빛처럼 무수히도 반짝인다는 것을 말입니다.

 겨울이 있기에 봄은 황홀합니다. 슬픔이 있기에 기쁨이 있고, 결핍이 있기에 채움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기에 두려움은 더 이상 두렵지가 않지요. 미소할지라도 곁을 내어주던 흔적들이 있기에 삶은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행입니다. 참으로 다행이지요. 누군가의 다행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글을 쓰며, 볼품없는 밥상 하나 차리는 것밖에는 없겠지만, 여전히 저는 그것보다 더 나은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어설픈 위로의 말은 차마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힘이 들면, 잠시 다녀가세요. 초라한 밥상 하나에 다행스러운 마음 하나 얹어드립니다.     


 ‘우리 같이, 밥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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