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말했다.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친 거야. 나는 대답했다. 미친 사람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어.’
「로맹가리」‘자기 앞의 생’ 서문 중.
지루하던 여름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꽤나 소란스러웠고, 꽤나 따가웠던 여름이 조금은 그리워질 소리들. 마지막인 듯 목 놓아 우는 매미의 울음소리들, 감나무에 매달린 감들이 부풀어 오르는 소리들. 맑은 밤바람이 호수를 쓸어내리는 소리들. 벼 이삭이 익어가는 소리들. 다시 배열되는 삶의 소리들. 어디선가 나타난 가을이의 방울 소리가 저의 뒤를 나지막이 따릅니다. 이 모든 게 여름이 잘 지나가는 소리입니다. 다시 그해 여름의 끝자락에 서있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젠 눈을 조금 가늘게 뜨고서 웃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시간을 되돌려도 수천 번이고 저는 이 길을 다시 걷겠다는 확신과 믿음이 섞인 그런 미소입니다.
삼 년 전, 늦은 밤 퇴근을 하고서, 복숭아나무 세 그루를 심던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 묻은 양손에 삽을 꼭 움켜쥐며, 감정의 얼룩을 감추어야만 했던 시절. 믿기지 않는 삶의 무게감으로 주저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했었지요. 나도 언젠가는 다시 웃을 수 있을까. 이 계절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 그 끝에서 희미하게 번지는 빛을 어떤 거리낌도 없이 따라갈 수 있을까. 아니, 희미한 빛은 번져오기나 할까. 눈은 갈수록 캄캄하게 깊어지고, 허리는 아래로 수그러들던 시절이었지요. 두려웠습니다. 참으로 두려웠지요. 두려움이 깊어질수록 그 크기보다 작지 않은 굴욕 섞인 적의가 날을 세우고 번쩍였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의 중심에는 장전된 뇌관처럼, 언제나 아이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사 년 전, 아이들이 눈에 밟혀 버티고 버티다 지금은 동지라 부르는 전 아내의 부탁을 결국 못 이기듯, 못 버티듯 들어주었습니다. 부부의 연은 이제 다했으나, 부모의 연은 죽을 때까지 지켜내자던 가슴 시린 부탁. 피고름이 흐르던 그 약속을 지키고자 묵묵히 나무를 가꾸고, 씨앗을 뿌렸습니다. 교사인 동지를 대신해 아이들의 학교 행사에 참석하고,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가는 일은 제가 해왔지요. 그래서 저는 저의 입학식과 졸업식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이들의 입학식과 졸업식만은 선연하게 떠오릅니다. 아빠의 부재를 느끼지 않도록 여느 가정과 동일한 모습으로 네 사람은 매주 함께 식사를 하고, 책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뛰어놀기도 했습니다. 어린나무들이었지만, 하늘과 바람과 달빛을 따라 어느새 가지마다 제법 살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화사한 복사꽃을 피워내고, 분홍빛 복숭아들을 알전구처럼 매달았지요. 복사꽃의 치명적인 유혹에도 불구하고, 복사꽃의 꽃말은 저에게 가장 필요로 했던 용서와 희망이었습니다.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단지 사랑이 지나가고 난 자리를 사랑의 주체들이 함부로 덮어버리기 때문에 누더기처럼 여겨지는 것이지요. 깊게 팬 곳을 아무렇게나 메우다 보면, 덕지덕지 볼품없는 거친 아스팔트 길이 되어버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살게 하며, 사랑의 끝에서 용서와 희망, 그리고 성찰이 자라날 때, 사랑은 사람을 앞으로 전진하게 합니다. 실패하지 않은 사랑의 소리가 사 년간의 바람을 타고 맑게 들려옵니다.
사랑. 사랑. 하고 말입니다.
‘당신과 나를 평온의 길로 인도하던 언어들.
그래서 그렇게나 처절하게 찾아다닌 언어들.
부서질세라 조심스레 부여잡던 그 희소한 언어들.
이제는 당신과 나에게 고요히 내려앉은 언어들.
차가운 계절을 지나 가시덩굴을 헤치며,
끝끝내 복사꽃을 피워낸 언어들.’
얼마 전, 첫째와 관련해 의논할 일이 있다며 잠깐 올 수 있겠냐고, 인생의 동지인 전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인 첫째 아이와 저, 그리고 전 아내가 나란히 하얀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아빠. 내가 성적이 3등이래.’
‘우와. 우리 딸 반에서 3등이면 정말 잘한 거 아니야? 정말 대단하다.’
‘아니... 전교에서 3등. 그래서 학교에서 과학고를 추천하겠다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
‘... 전교 3등?...’
아이들이 마음에 상처 없이, 구김 없이 밝고 건강하게만 자라나 주길 바라며, 지난 몇 년을 전전긍긍하면서 살았습니다. 햇살처럼 가장 사랑하는 만큼, 행여나 잘 못 될까, 어둠처럼 가장 아득한 지점이기도 했습니다. 높은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듯이, 얼어붙은 호수 위를 살금살금 걸어가듯이, 빗물 고인 길을 살피며 지나가듯이, 조심조심 걸어왔습니다. 언젠가 첫째가 중간고사 시험을 치르고 속이 상해 울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국어를 한 문제 틀렸는데, 틀린 문제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백석’의 시에 관한 문제였기에 너무나 속상해서 울었다 하더군요. 아이와 저는 웅앙웅앙 울을 것이다. 는 백석의 시구로 장난을 치며 즐거워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나의 아이. 참 예쁩니다. 너무 예뻐서 그저 눈주름을 잡고서 웃었습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는 거라고. 알 수 없는 건, 그렇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애써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은 있는 거라고. 아이는 삶과 사랑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자신의 쓸모를 소진하며, 함께 살아가는 유채꽃에서, 희망은 뿌려지고, 기적은 피어난다.
서로를 쓰다듬으며 채워가는, 유채꽃의 하늘이, 나의 하늘이 된다.
너의 이름을 짓는다. 나의 혈관을 채우는 너의 이름.
자신과 타인을 아끼고, 사랑할 너의 이름. 꽃이 꽃을 불러낸 너의 이름.
너를 사랑한다. 나의 봄인 너를.’
그렇게 첫째는 어느덧 고등학교로 진학할 시기가 되었지요. 아이는 과학고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설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기에 조금 아쉽지만, 하고 싶은 일이 진정으로 무엇인지 고민하며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을 조금씩 더 넓혀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동지와 저의 의견에 따라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애썼어. 당신도, 우리 딸도. 너무 기특해서 아빠가 눈물이 다 나오려 한다. 이번 주 주말에는 시골에서 고기 구워서 파티하자. 이제 저녁에는 선선하니.’
‘이게 뭐라고. 그나저나 아빠 공모전은 응모했어?’
‘응모했지. 결과는 시 월 달에 나오는데, 별로 기대는 안해.’
‘계속 응모해 봐. 나는 아빠 소설 좋던데. 언젠가는 될 거야.’
‘책을 읽고, 글도 쓰고, 농사도 짓고, 이루고 싶은 꿈도 있고...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지?... 신기하네.’
‘사랑하니까, 변할 수 있는 거겠지.’
아이는 제가 가져다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들고서 자기만의 방으로 향하고, 두 사람은 오랜만에 달빛 아래를 나란히 걸었습니다. 둘인 듯, 하나인 듯한 달그림자가 그 뒤를 가만히 따랐습니다.
이혼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부부관계를 소멸시키고,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되돌리는 법적행위라 합니다. 적절한 정의라 생각했어요. 부모관계의 소멸은 있을 수 없는 절대적인 영역이니까. 오래전 그 시절,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들이 두려웠습니다. 스스로를 나약하게 만들며, 침몰해 가는 모습들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나 자신이 안쓰러웠습니다. 내가 두려웠던 것들. 이를테면, 알 수 없는 날 선 감정들, 무참하게 흘러가는 시간들, 망망한 검은빛 바다와 같은 그런 거대한 것들, 그리고 숨소리마저도 들려오는 끔찍한 적막들. 가닿기도 전에 내가 먼저 허물어져 버릴 것만 같은, 넘어설 수도, 가닿을 수도 없는 거대한 산과 같은 당신이 부딪쳐 왔습니다. 슬프게도 유약했던 나의 마음이, 단단했던 당신의 마음이, 끝내 서로를 외면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처절하게 할퀴고, 치열하게 싸우는 방법조차도 몰랐기에 서로에 대한 냉담한 배려로 무덤 속의 까만 침묵을 선택했습니다. 무덤처럼 적막하고, 목덜미의 솜털을 일어서게 하는 서늘한 침묵들.
법원의 하얀색 내벽에 바짝 붙은 심플한 빨간 플라스틱 벤치에 앉아 당신이 나에게 했던 말은 아마도 생이 소멸하는 순간까지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우리처럼 행복하고, 평온하게 이혼하는 사람들은 없을 거라던 말. 지금도 추억 삼아 꺼내는 말. 그러고 보면 그곳에 있던 부부들은 서로를 밀어내는 힘이라도 있는 듯, 서로 떨어져서 등을 돌리고 앉아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 앞에 놓여 있는 참을 수 없는 시간과 숨 막히는 적막이 빠르게 흘러가길 바라는 듯했었지요. 우리는 다정하게 붙어 앉아 속살거리며, 서로에게 웃어주었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잘 생각나지는 않지만, 앞으로 살아갈 우리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누군가에겐 백색의 지옥 같은 공간이었지만, 당신과 나에겐 새롭게 시작될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공간인 듯했습니다. 사실 판사가 무엇을 물어보았는지 잘 떠오르진 않지만, 결혼식의 주례 앞에서 대답하듯, 당신과 내가 자신있게, 그리고 당당하게 대답했던 모습들은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그건 우리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었고 약속이었으니까. 아이들을 잘 자라나게 할 것이고, 각자의 삶을 잘 살아내겠다는 견고한 대답이었습니다. 지금에서야 말하는 거지만, 사실 그 순간의 나의 대답은 단단해 보였어도, 슬픔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신의 용기에 나는 항상 감탄해 왔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확고한 믿음, 아이들을 향한 나의 마음에 대한 단호한 신뢰. 항상 당신은 옳았습니다. 옳았지요. 당신은 어떤 선언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법원을 나온 우리는 왈츠가 흘러나오는 근처 카페에서 솔티라떼를 마시며, 구운 빵 한 조각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짭쪼롬한 맛을 시작으로 달콤하게 끝을 맺어가는 맛. 당신과 나를 닮은 맛이길 바랐습니다. 그때 카페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에서 해변의 붉은 노을빛처럼 번져나가던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이었습니다. 우울과 슬픔이 짙게 배어있었지만, 희망을 놓지 않았던 사분의 삼박자의 멜로디였지요.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고독할 자유를 허락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각자의 시간 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의 곰팡이들을 스스로가 치유할 시간이 필요했고, 우리는 답을 찾기 위해 용기를 내었던 거라 믿습니다. 당신과 나는 서로를 이해한다는 공허한 언어를 뱉어 내기보다는 한 줌의 고요한 침묵을 손에 꼭 쥐고는 운동장을 나란히 걸으며, 서로가 넘어지거나, 쓰러지지 않는지 지켜봐 주면서, 몇 년 전,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따로였지만, 또 함께이기도 했습니다. 당신과 나의 용기에, 그리고 아이들의 사랑과 이해 속에서 우리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이제는 입안으로 삼킬 수 있을 듯합니다.
둘이서, 때로는 또 같이.
우리는 소담한 복숭아나무 아래에 서서 서로를 마주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선선한 날씨를 따라 가을이와 뛰어놀았지요. 평화로운 시간과 풍경들. 당신과 나는 많은 시간과 풍경을 잃은 듯했지만, 그 이상을 되찾기도 했습니다. 비록 끝난 사랑이지만,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적의도, 선택에 대한 후회도 없었기에 우리는 부여된 사명에 한발 한발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칠흑 같은 터널을 지나 흐릿한 빛이 선명해지고 있음을 우린 하나의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신과의 인연을 닿게 해준 우주의 호흡에, 늦었지만 고맙습니다.
까만 밤을 밀어내는 환한 달빛 아래에서 복숭아나무들의 박수와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왈츠에 맞추어 발을 옮기는 우리를 상상합니다. 때로는 따로, 또 때로는 같이, 그렇게 사뿐사뿐 옮기며 찍은 수많은 발자국들은 어느새 사분의 삼박자의 동그란 음표가 되어, 삶을 왈츠로 그려주고 있습니다. 당신이 있기에 나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교집합인 목적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인생의 동지인 당신에게 깨끗한 존경을 보냅니다. 그리고 다 지켜내지 못한 약속이라 미안합니다
우리가 춤을 추며, 운동장에서 얼마만큼 나아갔는지에 대해 이젠 두려워하며, 방황하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들의 선택을 가늠할 척도 중 하나인 아이들이 반듯하게 자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잘 해내고 있다는걸, 잘 알고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앞으로도 당신과 내가 서로의 발을 밟지 않으려 존중하며, 지금처럼 왈츠를 추길 바랍니다. 당신과 나는 지금껏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당신과 나는 그 무거운 이름만큼이나, 행복해야만 하는 부모이니까.
마음 하나 얹은 소담한 시골밥상을 일 년 이상 써오면서 어떻게 끝을 맺어야 할 지를 고민해야만 했습니다. 잘 썼든, 못 썼든 저를 치유하는 과정이었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기도하며, 한 획, 또 한 획을 그었습니다. 글쓰기는 구원을 위한 기도의 한 형식이라는 카프카의 말. 저의 고통이 시작되고, 동시에 치유도 시작되었던 지점을 이렇게 마침표로 남겨두려 합니다. 동그란 마침표는 결국 사랑이더군요. 세상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사랑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사랑은 실패할 수 없다는걸. 비록 사랑의 등에 기대어 마주 앉은 아픔이라는 그림자가 있지만, 그건 사랑 때문이 아닙니다. 아픔은 치유하고 사랑은 남겨두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독이 스며든 혈관을 처절하게 빨아내고, 뿜어져 나오는 검붉은 피를 필사적으로 지혈하듯이 아픔을 치유하는 것은 자신의 사랑에 대한 작은 예의라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랑. 삶이라는 말이 주형틀에서 찍어낸 듯, 참으로 닮았습니다. 살아가는 일과 사랑하는 일은 같은 말이었고,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이렇게라도 언어학자들은 말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사랑했으니, 행복했고,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사실 우주가 눈을 감을 때까지도 저는 명징하게 정의하지 못하겠지요. 단지 푸르스름하게 번지는 빛을 받은 사랑의 윤곽들을 더듬거릴 수밖에는 없을 듯합니다. 채찍을 맞고 있던 나귀를 부둥켜안고서 미쳐가던 ‘니체’에게서도 볼 수 있으며, 시력을 잃어가며 사력을 다해 글을 쓰던 ‘보르헤스’에게서도 볼 수 있으며, 자살을 선택한 ‘젊은 베르테르’에게도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은 자신의 마음에 그 사람만 한 구멍을 내는 것을 겁 없이도 허락하는 일. 사랑하는 이의 눈으로 똑같이 바라보며, 영혼을 확장하는 일. 어떻게 정의하려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랑은 그저 열거할 수 있을 뿐인 동사인 듯합니다. 사랑은 실천하는 거니까. 사랑은 생각에 앞서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거니까. 사랑은 되태어남의 질료이니까. 이성 간의 사랑이든, 친구 간의 사랑이든, 부모자식 간의 사랑이든. 사랑은 어떤 형태로든 삶을 살아가게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