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왼쪽에는 남편이, 오른쪽에는 아이가 누워있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남편을 바라보았다.
나는 왜 이 사람을 사랑하는지 생각해 봤다.
자상하고 다정다감하고 가정적이고 친절하고 센스 있고 능력 있고 똑똑하고 진취적이고 멋있고 예쁘고
남편의 장점이 끝도 없이 생각났다.
'아! 나는 이 사람을 정말 사랑하는구나.'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를 왜 사랑하는지 생각해 봤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예쁘고...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아이의 장점을 찾아봤다.
운동신경이 좋고 말을 잘하고 끈기 있고...
장점이 몇 가지 떠오르긴 했지만 이 장점 때문에 아이를 사랑하는 건 아니었다.
나는 그냥 아이를 사랑했다.
아이를 향한 사랑은 무조건적이었다.
조건적인 사랑은 그 조건이 사라지면 사랑도 사라질 수 있다.
나의 남편이 자상하지 않다면 다정다감하지 않다면 가정적이지 않다면 나는 이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아이가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면 귀여움은 사라질 것이다.
아이는 사랑스러울 때가 많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여드름이 생기고 수염이 나기 시작하면 아이 얼굴이 예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를 사랑할 것이다.
안 귀여워도 안 사랑스러워도 안 예뻐도 언제나 항상 아이를 사랑할 것이다.
아이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튼튼하고 안정적이게 뿌리를 내리고 쑥쑥 자랄 수 있다.
나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잠재의식이 새겨져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할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을 받을 줄 알고 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조건적 사랑은 사랑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남편과의 사랑은 조건적이지만 조건을 따져가며 사랑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경제적 여건이나 직업 같은 외부적 조건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말하는 조건은 그 사람의 성품, 됨됨이, 내가 사랑하는 모습에 대한 것이다.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조건적 사랑이라면 그 사랑도 멋진 사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