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날에는 생각하자 1

시장 한복판, 엄마가 안 보인다.

by 수키니피그

엄마의 손을 놓쳤다. 아무리 둘러봐도 엄마는 없었다.

다섯 살 즈음... 쫄래쫄래 엄마를 따라 시장엘 갔다. 북적 데는 시장통 안의 모습에 정신을 빼앗긴 것도 잠시, 어느 순간 난 혼자 멀뚱히 시장 한 복판에 서있었고 아무리 둘러봐도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섣불리 다른 장소로 이동하면 엄마랑 길이 엇갈릴까 봐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잠시 엄마를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엄마는 보이지 않았고 나는 슬슬 창피했던 거 같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침, 공교롭게도 경찰서 앞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경찰 아저씨한테 엄마를 잃어버렸다고 집을 찾아 달라고 할까?' 아니면 '가만... 나는 우리 집까지 가는 길을 아는데... 아니 알 것 같은데... 그냥 혼자 집을 찾아갈까?' 경찰서에 들어가는 것조차 부끄러웠던 다섯 살짜리 여자 아이는 결국 스스로 집을 찾아가기로 결심하고 쫄래쫄래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끝내 집을 찾아갔다. '해냈다!' 다섯 살 평생 처음 맞이하는 성취감이었다. 나보다 조금 뒤늦게 집에 온 엄마는 "아이고 한참 찾았네!" 뭐... 이런 류의 말씀을 하셨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기억보정은 어쩔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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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금 와서 그때를 떠올리면 당시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곤 한다. 그때 몰랐던 것들이 알아지기도 한다. 그때 난 길바닥에서 울지 않은 것에 감사하다. 그때 공교롭게도 눈앞에 보이던 경찰서에 들어가지 않은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나의 다섯 살 즈음은 1980년대 초반이다. 당시 정부는 86 아시안 게임, 88 서울 올림픽등 굵직한 국가적 행사를 앞두고 소위 길거리 정화 사업의 일환으로 부랑인이나 노점상 등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는 국가사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당연히 이일에는 경찰들이 대거 투입되었고 결국엔 정당한 기준도 없이 아무나 부랑인으로 몰아 '보호'를 명분으로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그것을 자신의 실적으로 삼던 시기였다.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당시 내가 경찰서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면 적지 않은 확률로 수용시설로 보내졌을지 누가 아는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순간 섬뜩하지만 한편으로 감사하다. 다섯 살짜리 아이에겐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을 그때에 난 생각했고 나의 하나님은 답을 주셨고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게 하신 거다. 소소한 고난 말고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큰 문제에 맞닥뜨리면 낙심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버릇이 생긴 건 아마 그때부터이지 않을까? 그때도 지금도 '길바닥에 주저앉아 운다'와 같은 건 내 선택지에 없다.




번영의 날에는 기뻐하고 역경의 날에는 생각할지니, 하나님께서 또한 이것과 저것을 병행하게 하셔서 사람으로 그의 뒤에 있을 일들을 알 수 없게 하셨음이라.

전도서 7:14


성경에는 의외로 생활밀착형 말씀이 도처에 존재한다. 그런 구절을 접할 때면 너무 현실적이어서 깜짝깜짝 놀란다. 그리고 으레 껏 인간들끼리 주고받는 위로나 충고와는 사뭇 다른 비범한 관점을 지닌 지혜의 말들이 쓰여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최근 발견한 전도서 7장 14절이 그랬다. 번영의 날에 기뻐하라는 글 뒤에 따라오는 문장엔 앞 문장과 대구가 되는 개념의 말이 붙는 게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번영의 날에는 기뻐하고 역경의 날에는 슬퍼할지니..'처럼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얘기한다. 역경의 날에는 '생각하라'라고! 이 구절을 읽으며 떠올린 기억이 바로 다섯 살 때 엄마를 잃어버린 사건이었다. 내가 생각하지 않고 주저앉아 울어 버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각 사람의 인생은 그 사이에 스스로가 내린 수많은 결정들에 의해 지어져 가는 구조물이라고 믿는다. 내 삶의 모퉁이 돌 위에 첫 골조를 세운날을 꼽으라면 아마 스스로 생각하여 판단해야 했던 시장에서의 그날이지 않을까? 당시엔 그런 모양의 골조를 바로 거기에 세우는 게 맞는지 알 수 없었지만 몇십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내선택이 옳았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수많은 선택지가 내 앞에 놓일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지금 쓰는 이 글을 어떻게 맺음 해야 하는지부터가 선택 아닌가? 하지만 막막해도 포기하거나 낙망하지 않고 '생각하는' 길을 언제까지나 선택할 것이다. 그 선택의 끝에 완성될 내 삶의 모습을 기대해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쯤에서 되돌아 보게 되는 한가지... 그 즈음의 사실과 진실이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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