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사실
새해가 밝아도 아버지의 병세는 나아질 줄 몰랐고 엄마의 근심 어린 표정이 짙어지던 어느 날 나는 엄마를 시장에서 잃고 심사숙고 끝에 연어가 돌아오듯 기억을 되짚어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혼자서...(인생은 혼자다) 의기양양하게 집 대문을 넘어 들어온 뒤 잠시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가 대문을 열고 들어 오는 순간 나는 은근히 짜릿했다.
"아이고 니 여 우예 찾아왔노? 한참을 찾았네!" 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엄마를 보며 '짜잔 나 여기 있지롱! 혼자서 집도 찾아올 줄 안다고! 나 다 컸지? 나 겁나 똑똑하지?'라고 생각하며 생글생글 웃었던 기억인데 확실치는 않다. 전 글에서도 언급했듯 어느 정도의 기억 보정은 어쩔 수 없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게다. 어느 날 아침 내 방에서 놀고 있던 나를 엄마가 급하게 찾더니 회색빛으로 질려서는 내게 말했다.
"느그 아부지...와 이라노.... 니... 함 가봐라......"
아버지는 엄마가 아침식사로 준비한 죽을 채 한 숟가락도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던 거였다. 5살 꼬마가 처음 마주한 죽음. 엄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었고... 난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 보다 엄마가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통곡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 함께 울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제 엄마랑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개신교 장례를 치르고 엄마의 종교인 가톨릭 방식으로 추도식을 또 한 번 하고 아버지의 종교인 불교식으로 49제를 지냈다. 종교 대 통합에 가까운 혼란스러운 장례행사를 치르며 5살짜리 꼬마는 그동안 미처 몰랐던 몇 가지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나의 부모님이 친부모가 아니었다는 것과 실은 친부모가 나의 소재를 알고 있었다는 것. 그 말인즉슨 원하면 언제든 데려갈 수도 있었지만 찾지 않은 것이라는 것이었다.
"엄마! 엄마는 왜 내 친구들 엄마보다 늙었어?"
동네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온 날 내가 엄마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엄마가 니를 늦게 낳아서 그런 거 아이가." 엄마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여전히 개운치 않았었는데 그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내 엄마와 아버지는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불러도 될 만큼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셨고 감사하게도 천둥벌거숭이 핏덩이를 맡아 친딸처럼 길러주신 거였다. 그러나 5살짜리 꼬마가 고마움을 느낄 세도 없이 새로운 국면은 닥치고야 말았으니.....
"니.... 친엄마한테 보내 주꾸마...어떻노? 좋나? 좋제?"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염원이 절절한 엄마의 질문에 나는 그저 "친엄마도 나처럼 예쁘겠지?" 하면서 웃었다. 싫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감정을 숨기는 버릇이 생긴 건... 불행을 들키고 싶지 않아 짓는 웃음과 넉살이 슬픔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강산이 서너 번쯤 바뀐 지금, 그때를 떠올리면 한 편의 영화처럼 아득하고 어떨 땐 남의 일이었던 듯 담담해져 있는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 신기해하기도 한다. 그렇게 그때의 상황을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게 된 어느 날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감사하게도 핏덩이였던 나를 거두어 주셨던 나의 엄마가(내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라고 불렀던) 나를 시장에서 실수로 잃어버리신 걸까? 아니면 고의로 손을 놓으신 걸까?
적지 않은 연세, 기울어질 데로 기운 가세,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아버지의 병세...(뜻하지 않게 라임이 맞아 버렸...) 더욱이 남의 핏줄이었던 5살 꼬마는 어찌 되었건 내가 봐도 처치 곤란한 존재. 그래서 나를 하필 경찰서 앞에 두었던 걸까? 그때 시장에서의 일에 대해 은근슬쩍 떠 보고도 싶지만 아니 대놓고 물어볼 용기도 있지만 지금 내 곁에 엄마는 없다. 진실을 알고 싶지만 증거도 증인도 없는 판에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추측과 망상이 있을 뿐이다. 그뿐이다. 허긴 그뿐이면 어떠랴 그때의 진실이 지금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전무하다. 엄마는 나를 친부모님에게 데려다주고는 열밤만 자고 다시 오겠다는 뻔한 거짓말을 남기고는 다시는 오지 않았다. 그 후로는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 중요했던 건 다시 오지 않는 엄마의 행방이 아니라.... 난생처음 면접한 친부모라는 사람들의 정체였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