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의 대화
엄마는 나를 친부모님에게 데려다주고는 열밤만 자고 다시 오겠다는 뻔한 거짓말을 남기고는 다시는 오지 않았다. 그 후로는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 중요했던 건 다시 오지 않는 엄마의 행방이 아니라.... 난생처음 면접한 친부모라는 사람들의 정체였다.
내 친부모라는 사람들과 마주했다. 당연히 생경할 수밖에 없지만 그 분위기는 정말이지.... 이상했다. 내 엄마는 멀뚱하게 날 이웃집에서 놀러 온 아이처럼 대했고 아빠는 별말이 없이 시무룩했었던 것 같고 흥미롭게도 내겐 난대 없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오빠와 언니가 있었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언니는 날 볼 때마다 찬바람이 불었고 초등학교 3~4학년쯤으로 보이는 오빠는 동생이 생겼다는 기쁨에 처음엔 나에게 초콜릿 공새를 펼치더니 어느 날부턴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잔인할 정도로 박해졌다. 난 다시 생각했다. 이 상황은 마치.... 드라마에서 본 듯한.... 그랬다! 나는 내 아빠가 밖에서 낳아온 혼외자였던 거다. 결국 드러난 건 내 부모의 정체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정체였던 거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어른들은 왜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지.... 분명히 친부모에게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난 친부모가 아닌 친아빠와 그의 가족에게 맡겨진 것이다.
그렇다면 기왕 일이 이렇게 된 거.... 다시 생각해 본다. 이 사람들 중에서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은 누구일까? 아빠? 내 기억에 남아있는 친아빠의 이미지는 언제나 죄인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하릴없이 멍한 창공에 하얀 담배연기를 뿜어 대던 나약한 모습뿐이다. 나를 눈엣 가시처럼 미워하는 언니와 오빠를 자제시키고 나의 의식주를 담당해 주기에 가장 적합해 보이는 사람은 나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그녀... 그 집안의 안주인, 내 아빠의 아내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아주 착하고 기르기 쉬운 아이가 되어야 했다. 그래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던가? 나는 틈틈이 내 아빠의 아내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애썼다.
"얼~~~ 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내가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모를 각설이 타령을 부르며 어깨춤을 추면 그녀는
"아이고 야좀 보래이~ 쪼만한게~~ 니 그런 건 어데서 배웠노?"
하면서 웃곤 했는데 그 웃음을 볼 때마다 난 조금씩 안도했다. 그녀의 웃음은 철부지 어린아이에겐 일종의 보증 같은 거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얼음판 같은 나날을 보내던 나는 어느 날 미용실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 머리 좀 잘라주이소."
"어데까지 잘를 까예?"
"마.... 단발로 끊어 주이소."
거의 허리까지 내려오던 길고 검은 머리카락은 인정사정 볼 거 없이 숭덩 잘려 땅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미용사 언니가 말했다.
"아이고.... 잘 길렀는데 아깝데이~~"
난 생각했다. 아까운 게 문제가 아니다. 나에게 새로운 일이 닥치려고 한다. 나를 보호해 주리라고 믿었던 내 아빠의 아내가 입안에 물고 있던 뜨거운 감자를 뱉으려 하고 있었다.
노랫말처럼 언제나 슬픔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고 난 다시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 긴 머리를 땋아 줄 이가 없는 곳으로...
아마도 추운 겨울이었을게다. 집을 나설 때 입혀 주던 코트의 단추가 하나하나 채워지는 장면이 기억나는 걸 보니.... 그랬다. 몸도 마음도 추웠던 겨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도 울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어쨌거나 나는 그 가족이 그리는 그림에는 애초에 없었던 이방인이었으니까.... 나만 빠지면 그들은 원래대로 돌아가고 난 두렵고 아득하긴 하지만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니 서울 갈 끼다. 돈이 억수로 많은 부자 할매가 니 키워준단다. 어떻노 좋제?"
이번에도 좋냐고 묻는다. 좋을 리가 있냐고 되묻고 싶다.
"부자요? 그럼 집안에 정원도 있고 테니스장 같은 것도 있어요?"
이번에도 난 아무렇지 않은 듯, 오히려 기대라도 된다는 듯 드라마에서 얼핏 본 부잣집을 떠올리며 물었고 어른들은
"하모! 있제! 있제!"
라며 라고 안심시키곤 날 그 부잣집으로 데리고 갔다. 언제나 그렇듯 어른들의 말은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과장이다. 내가 맡겨진 부잣집엔 정원은 있었고 테니스장은 없었다.
그렇게 새로운 삶 안에서 적응하며 버티며 아동기와 사춘기와 대학시절을 거쳤다.
언제나 유용했던 착한 아이 콘셉트와 생각하는 버릇은 새로운 곳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결코 세상은 녹록한 곳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며 성인을 맞이했다.
생각할 시간이 많아진 요즈음 난 가끔 대여섯 살 때의 나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곤 한다. 그때의 나와 미처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하기 위해서다.
내가 친부모라고 믿었던 분들의 슬하에 있을 때 나는 다분히 감정적이었다. 내 감정이 가장 중요한 철부지... 그리고 내가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아닌 기껏해야 환영받지 못하는 혼외자라는 걸 알게 된 다음부터는 살아남기 위해 생각하는 버릇이 들었다. 이것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대화하면서 이끌어낸 일종의 중간 결론.... 이제와 돌이켜 보면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안타까운 일들은 어쩌면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 겪었어야 할 일들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을 견뎌낸 내가 나는 그다지 싫지 않다. 그리고 지금은 사랑하려고 노력 중이다.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빨강머리 앤은 이렇게 얘기했다.
“Tomorrow is always fresh, with no mistakes in it yet.”
("내일은 아직 아무 실수도 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날이니까요.")
오늘도 그렇게 내 양팔로 나를 끌어안으며 속삭인다. 참 잘했어! 잘 견뎠어! 내일은 또 새로운 너의 날이 될 거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