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사이에서 T로 일하기

by 수키니피그

호의가 반복되면 권리인 줄 안다(?)

얼마 전 '부당거래'라는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봤다. 그 영화엔 이제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 이 영화에서 사용된 말이라는 걸 잘 모르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호의가 반복되면 권리인 줄 알아요!" 극 중 검사로 분한 류승범이 흥분해서 내뱉는 말이다.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어떤 워딩으로 표현해야 할지 몰랐던 개념인데 이 영화에서 대사로 한방에 정리해 버렸달까?

나는 글을 쓰는 직업을 하고 싶어서 직장을 내려놓고 지금은 하루의 절반은 글을 쓰고 절반은 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다. 일을 하면서 계속 확신하게 되는 게 하나 있는데 나랑 일하는 다른 사람들이 꽤나 감정적인 사람들이라는 거다. 그들이 MBTI의 F성향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나와 비교했을 때 보다 더 감정에 충실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든다.

사사건건이 나로선 의아한 것들...

"(짜증 섞인 말투로) 아우~~~ 더워!! 왜 이렇게 더운 거야? 미쳐 버리겠네!"

위의 대사를 읊으신 분의 애칭(?)을 대충... 뭐...'투덜이 그녀'라고 하자! 투덜이 그녀는 업장에 출근을 하는 순간 첫마디를 투덜로 시작한다. 매번 그런다고는 할 수없지만 종종 빈번히 그렇다. 여름은... 덥다. 여름이니까. 그래서 업장에 빵빵하게 에어컨을 틀지 않는가? 안 그래도 고단한 일과의 시작을 굳이 투덜대는 불평을 들으며 시작해야 하는 나는 뭔가? 싶다. 그것도 종종 빈번히....

우리 매장의 책임자는 또 어떠한가? 이 매니저 양반은 남자다. 매우 여린 감성을 지닌 남자다. 마침 투덜이 그녀와 친하다. 아마도 감정적인 공감대가 많아 빠르게 친해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가끔 감정싸움을 한다. 보통은 투덜이 그녀의 투덜을 받아 주던 여린 감성의 매니저 양반의 섭섭함이 극이 달했을 때 일이 터진다. 일로 만난 사이는 필요이상으로 친해 버리면 이런 일이 생긴다. 기대하게 되고 기대가 무너지면 섭섭해지고 화도 나고... 그럴 때 우리 여린 감성을 지니신 매니저 양반은 투덜이 그녀와 내가 있는 앞에서 그만.... 울어 버린다. 나는 너무 당황스럽지만 그런가 보다 한다... 이젠 익숙하다...

그렇지만 둘은 또 금세 화해하고 둘이 재밌다. 가만 보면 일로 만난 사이인지 친목계원인지 알 수 없다. 그러든가 말든가... 이제는 포기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번씩 나를 화나게 하는 사건들이 생긴다. 예를 들어 매니저 양반은 내가 일을 하다가 다쳐 아파할 때는 놀라울 정도로 뚱하게 아랑곳도 않다가 투덜이 그녀의 바지에 국물이라도 튀는 날엔.

"아니!!! 괜찮아요? 바지?" 하며 투덜이 그녀의 바지와 그녀의 표정을 살핀다. 도무지 뭐.... 이건 마치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기분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 어린 플레이어가 파트타임으로 등판했다. 20대 초반의 알바... 아직은 사회초년생. 어쩔 수 없다. 처음인 사람들은 어리바리하다. 근데.... 투덜이 그녀 앞에선 한없이 여린 감성이신 매니저 양반은 그 어린 사회초년생에게 제법 가혹하다. (다행히 심하진 않다.)하지만 이럴 수가!! 이 어린 초년생 알바가 'F'인가 보다. 실수를 하고 지적을 받을 때면 기가죽고 시무룩해지기가 측은 할 정도다. 그래서 한 번은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사주며 힘내라고 얘기해 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 어린 알바는 어떠한 짙은 감성의 밤을 보내는 건지 매번 지각이다. 종종 빈번히 늦잠을 자느라 지각인데 심지어 해고당하던 날엔 4시간을 늦었다. 그런 알바가 종종걸음으로 출근하면서 소심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인사를 건네면 매니저 양반과 투덜이 그녀는 인사도 받지 않는다. 나만, 오직 나만 어린 알바의 인사를 받아 주곤 했었는데......... 일을 그만두던 그 마지막 날....(그렇다 무려 4시간을 늦은 그날이다.) 그 어린 사회초년생 알바가 나에게 짜증을 내는 거다! 이게 뭐지? 갑자기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거 같다. 내가... 만만 한 건가? 정녕 그런 건가? 내가 보인 호의가 이렇게 돌아온다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허탈하고 억울한 감정이 몰려온다. 'T'도 감정이 있다.

'아... 호의가 반복되면 권리인 줄 안다더니.....' 그냥 딱 그런 경우라는 생각이 들자 결국 그 어린 알바에게 불쾌한 감정을 여실히 드러내 보이고야 말았다. 나 또한 감정적인 사람이 어떻고 저떻고를 논할 자격 없는 고작 소문자 't' 인척 하는 대문자 'F' 였던 거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겪으며 내가 깨닫는 것은 결국 누구도 타인을 판단할 권리는 없다는 거다.

일로 만난 사이에서 능률과 효율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적인 것들은 다툼이나 오해만을 일으키는 소모적인 것이라고 판단하던 내가 그 감정이라는 덫에 걸려 결국 내 인성의 민낯을 드러내지 않았는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감히 말할 수 없고 내가 언젠가는 그 입장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는 이유다. 더불어 내가 누군가에게 소위 '호의'라는 것을 보일 때 그 사람에게 지속적이고 한결같을 수 없다면 그건 결국 '위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신기하게도 이 세상 모든 군상들의 갈등과 상황과 희로애락과 심리를 완벽히 파악하고 있는 성경엔 오늘도 여지없이 나를 위한 말씀이 있다.


어찌하여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생각지 못하느냐?
마태복음 7장 3절


부디 내일은 남의 단점에 집중하거나 영향받지 않고 나의 어리석음부터 돌아보는 내가 되길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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