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일 년 정도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한집살이를 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함부로 함께 사는 건 영 아니다 싶던 어느 날 친구는 표정이 엉망이 되어서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귀가했다. 직장에서 힘든 일을 겪었다며 볼멘소리를 했는데 글쎄 나는 하필 그때 재밌는 예능을 보고 있었다. 친구의 기분이 꾸물한 이유를 가만히 듣자 하니 힘든 일인 건 알겠는데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 응... 너 참 힘들었겠다...."라는 영혼 없이 하나마나한 말을 뱉은 뒤 보고 있던 티브이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근데 친구가 휙! 방을 나가 버리는 거다. 순간 뭔가 잘못 됐음을 직감했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훗날 친구가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 무심히 티브이로 눈을 돌리던 나를 보면서 '아! 쟤랑은 고민이나 속 깊은 얘기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차 싶었다. 나도 그 일이 찜찜하게 남아있었지만 친구 역시 그 일을 가슴에 묻어두고 있었구나... 그날 사과했고 다행히 지금도 그 친구와 잘 지내고 있다.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나는 어떤 인간인가? 이토록 냉정하고 이토록 타인에게 무심한 나는 사회적 공감이 결여된 사람인가? 자책도 했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진 지금 내 성향이 논리와 객관성을 중시하는 사고형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된 후 나조차 이해가 안 갔던 그때의 내가 조금씩 풀어헤쳐지기 시작했다. 나는 누군가가 고민을 얘기하거나 갈등을 호소하면 그것을 해결해 줄 방도를 찾는다. 그것이 나로서는 가장 적극적인 공감의 방법이다. 나에게 "아이고 그랬어? 얼마나 슬펐어? 얼마나 아파? 힘들었겠구나 힘내!" 같은 말은 립서비스에 불과하다.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 할 수 있다고들 한다. 당연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판단하기에 나는 나를 별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왜일까? 내가 남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미숙했던 것처럼 나 스스로의 감정을 대하는 태도도 그러했으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나의 감정을 돌보지 않았고 해결책만 찾아 헤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과거의 나로부터 지금의 나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해부해 보기로 했다. 이 연재가 끝나 갈 때쯤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있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