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덕후생활 2

알고리즘, 덕후에 이르게 하는 방향지시등

by 수키니피그

계기란 예기치 않게.


그들의 덕후가 된 건 별 관련성도 없어 보이는 예기치 않은 계기로부터 시작한다.

어느새 몇 년 전이다.

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애청하는 편이다. 아니, 안테나의 수장 유희열이 심사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꼭 챙겨 본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이기도 하지만 그의 심사평에서는 음악에 대한 전문성과 사람을 보는 뛰어난 안목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유희열의 덕후는 아니다.

어느 날 나는 유희열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싱어게인'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다가 '이승윤'이라는 매력적인 가수를 발견한다. 그는 단숨에 화제로 떠올랐고 당연히 그날 부로 유튜브는 이승윤에 대한 영상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승윤의 동영상을 클릭하는 순간 알고리즘이란 녀석은 재빠르게 내가 흥미 있어할 법한 영상들을 줄줄이 쏟아 내면서 떡밥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고리즘은 이승윤이 '천재 이승국'이라는 유튜버의 친동생이라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나는 천재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이승국의 말발에 홀려 그의 영상을 훑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승국이나 이승윤의 덕후는 아니다.) 이윽고 이승국이 '윤두준'의 열성팬이라는 썸네일에 다 달았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현혹될 것을 이미 알아버린 것도 같다.


현혹, 단 한 번으로 족한 마성


13년 차 아이돌 하이라이트의 리더 윤두준은 하이라이트를 잘 모르는 사람도 '윤두준, 심장이 두준 두준'이라는 신종 관용어는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국민 남친돌이자 연기자이기도 했으니 나는 당연히 그의 영상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볼수록 매력적인 그의 영상 중간중간에 자꾸 고양이 탈을 쓴 썸네일이 걸리적거리는 것이 아닌가? '부뚜막 고양이 양요섭 노래 모음 zip' 복면가왕을 보지 않는 나는 여러 번 부뚜막 고양이 영상을 스킵했다. 그런데 이 알고리즘이란 녀석은 끈질기게 날 설득했다. "부뚜냥 영상 한 번만 봐주라 딱 한 번이야. 나 믿고 한 번만 봐바바." 난 결국 녀석의 설득에 못 이겨 영상을 클릭하기에 이르렀고 복면가왕 8연승 가왕이자 하이라이트의 메인 보컬 '양요섭'의 노래 실력에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양요섭이 저렇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었어!?" 그렇게 나는 떡밥을 덥석 물어버린 것이고 이내 현혹되고 말았다.

흔히 사람들이 많이 빠지는 함정 중 하나가 '딱 한 번인데 뭐 어때'라는 착각이라고 했던가? 나는 이 단 한 번의 클릭으로 양요섭, 윤두준뿐만 아니라 '하이라이트'의 팬이 되었고 그들을 향한 덕질을 시작했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의 덕질은 요란하지는 않다. 다만, 뭉근하고 진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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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유리천장'


"그 나이에 무슨 아이돌 덕질이람? 창피하다 창피해. 네가 과 선배에 대한 짝사랑에 세상 온갖 시름을 다 떠안고 열병을 할 때 걔네들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초딩이었다고!!" 놀랍게도 이런 일갈을 한 장본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내가 나에게 퍼부은 비난! 아주 잠깐이었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또 이렇게 한계를 그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랜 시간 타성이 되어버린 내가 만든 유리천장.

'적당히 딱 그 정도 분수껏 욕먹지 않게 튀지 말고 살자'가 삶의 태도였던 나에게 불혹에 찾아온 덕후의 삶은 분수에 맞지 않는 튀는 행동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덕후의 삶을 살아내려고 하는 것은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을 때 사랑 외에 다른 일에도 의욕적이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람에 대한 열정은 일에 대한 바로미터나 다름없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래서 나는 그 힘으로 내 정수리를 누르고 있던, 그리고 나를 분수 껏 안주하게 했던 천장, 그중에서 첫 번째로 직장을 때려치우기로 결심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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