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도 심장은 뛰었다. 그러나 설레는 두근 거림이 아니라 빈맥(頻脈)이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오는 극도의 불안감으로 매일매일이 고비였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심장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가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그렇잖아도 예민한 대장은 급기야 하루에 대 여섯 번씩 나를 화장실로 호출했고 몸속 수분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만을 남겨두고는 수시로 방광의 문을 두드렸다. 도무지 정상적인 게 없었다. 그 혼돈의 시간 동안 나를 버티게 해 준 힘은 덕후 세포가 공급해 주는 도파민과 세로토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재료들을 이용해 먼지 쌓여 있던 나의 꿈을 다시 꺼내어 반짝반짝 닦았고 꼴랑 경제적 이득 하나로 울며 겨자 먹기로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그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처치한 CPR. 이제야 나는 숨을 쉰다.
뇌는 의외로 아둔해서 착각이라는 걸 한다. 호감이 가는 이성과 있을 때 심박수를 많이 뛰게 하는 공포영화 같은걸 함께 보면 뇌가 상대방을 좋아해서 심장이 뛰는 거라고 착각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것처럼 타성에 젖어 힘없이 축 늘어져 있던 심장이 하이라이트라는 아이돌을 에너지 삼아 요동치기 시작하자 나의 뇌는 도파민과 세로토닌을 분비해 주었고 이것은 곧 마치 10대 시절로 되돌아라도 간 양 꿈에 대한 열정을 떠올려 주는 선순환이 되었다. 덕분에 묻어두었던 오랜 꿈도 어쩌면 해낼 수도 있겠구나라는 희망도 생기기 시작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늦은 게 아닐까 지레 겁먹고 시도도 하지 않으려던 내게 유리천장을 깰 도구가 손에 쥐어진 셈이다.
나는 나의 연예인을 응원한다.그리고 나를 응원한다.
나는 오늘도 운동을 하러 간다. 직장을 그만두고 일주일이면 5일 이상 꾸준히 운동을 한다. 세월만큼 켜켜이 묵은 지방들을 태우고 있다. 당연히 나의 운동 메이트는 하이라이트의 음악이다. 주로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운동을 하는데 운동을 하다가 힘이 들어서 이제 그만할까 생각하다가도 다음에 이어지는 하이라이트의 또 다른 뮤직비디오를 보면 이상하게 새롭게 힘이 솟아 또 3~4분을 견뎌낸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50~60분이 지나 있다. 지치지 않게 나를 응원해 주는 나의 연예인, 하이라이트를 나는 응원한다. 그들도 나도 언제까지나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난 알고 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도 속절없이 시들었던 것처럼 하이라이트에 대한 덕후세포의 활동도 곧 사그라들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두려운 건 그들에 대한 두근거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열정이 바닥나는 것. 바로 그것이다. 내가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때, 어떠한 것에도 심장이 반응하지 않을 때 그런 때를 상상하면 가슴이 쓸쓸해진다.
그래서 나는 아이돌의 덕후라고 부끄럼 없이 말할 수 있다. 아직 포기하지 않았고 아직도 짱짱하고 또렷하며 의욕적이라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나는 불혹에 내 꿈을 위해 내 심장이 더 뜨겁게 뛰도록 놔둘 생각이다. 그리고 기꺼이 덕후의 삶을 살아내려고 한다. 가슴이 반응하는 한... 열정이 끓어오르는 한...